From Now On...
2020년 4월 9일 목요일 마가복음 15 : 1-15 <빌라도의 법정에서> 본문
Christ before Pilate 빌라도 앞에 선 예수님/1437 년 / 한스 물체어 Hans Multscher
<묵상>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막 15:14-15)
예수님이 사형에 처해지려면 원래는 법정에서 판결을 받아야 했습니다.
바라바라고 하는 잘 알려진 유대인 해방 투쟁인사는 민란 선동자이고, 살인자요 강도였는데 이를 풀어주라고 요구하는 백성들이 모여서 폭동이 일어나려는 듯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풀어주라고 모였던 것인데 대제사장들이 바라바를 풀어주라고 외치도록 선동하고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빌라도와 총독은 신경전을 벌입니다.
정치적으로는 바라바는 절대로 풀어주면 안되는 상황이었고, 국경일이나 종교적인 경축일에 죄수들에 대하여 사면을 선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 한 명은 풀어줘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처음에 빌라도는 절대로 바라바는 놓아주면 안된다고 생각을 했었지만 결국은 군중들이 원하는 영웅인 바라바를 놓아줘서 민심을 달래고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의 사형 선고를 받아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었고 원하던 대로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사형시키기에는 결정적인 이유가 부족했고 더구나 십자가형은 노예와 반역자에게만 적용이 되는 잔인하고 오래 걸리는 죽음이었기 때문에 정치적인 이유로 빌라도의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민란을 잠재우기 위하여 빌라도는 자신은 죄가 없다는 듯 손을 씻고는 무죄한 예수님을 희생시켜서라도 기꺼이 백성들도 잠재우고, 대제사장들도 만족을 시키는 방법으로 예수님의 죽음은 확정이 된 것입니다.
십자가형이 확정되자 의례적으로 채찍질을 가해지고 끔찍한 십자가의 길이 시작되는 것을 볼 때 정치적인 목적으로 수많은 잔인한 일들이 자행이 되는 오늘날의 죄악은 여전함을 보게 되고, 종교적인 안목에서 눈과 귀를 차단한 상태의 무지몽매한 극단적인 선택이 얼마나 맹목적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끔찍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영혼이라도 팔아서 피하려고 했을텐데 예수님은 그것마저도 묵묵히 참으셨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사람을 짐승처럼 나무에 매다는 끔찍한 십자가형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영혼구원의 다리가 되어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당연히 십자가를 지셔야 된다고 생각한다든지, 내가 왜 십자가를 지고 살아야하느냐고 반문하면서 안일한 삶을 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성령님께서는 감동을 주셔서 우리 죄많은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을 닮은 숭고함과 고결함을 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우리를 격려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위대한 일을 해내는 숨은 일꾼들이 많이 있음을 믿습니다.
<마가복음 15 : 1-15>
'매일성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년 4월 11일 토요일 마가복음 15 : 33-47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0) | 2020.04.11 |
---|---|
2020년 4월 10일 금요일 마가복음 15 : 16-32 <조롱받는 왕> (0) | 2020.04.10 |
2020년 4월 8일 수요일 마가복음 14:53-72 <불법의 재판정에서> (0) | 2020.04.08 |
2020년 4월 7일 화요일 마가복음 14 : 43-52 <폭력을 대하는 태도> (0) | 2020.04.07 |
2020년 4월 6일 월요일 마가복음 14:32-42 <기도의 이유> (0) | 2020.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