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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Now On...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우리의 믿음을 행할 때 나의 가족 친척 이웃에게 끼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첫째, 고난 받는 이웃이나 가족 친척을 내가 기도로 돕고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둘째, 믿지 않는 내 주변의 사람들의 영혼구원이 이루어집니다.손을 사용하지 못하는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 사진만 잔뜩 보여주기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그 음식을 먹여주어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오늘 성경에서 예로 든 사람은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이었습니다.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이해하기 어려운 명령에 순종했습니다.만약 하나님의 명령을 제멋대로 해석해서 양을 바쳤다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약 2:1)사람을 차별한다는 의미는 현재까지도 인류에게서 이루어지지 않는 무척 구체적인 덕목입니다.예수님도 차별을 받으셨기에 이 문제는 지금도 영적으로 예민한 주제입니다.현재의 우리 상황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차별의 희생양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람은 우대하고, 소박한 차림은 천대했던 당시의 상황은 많이 나아진 것 같지만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지금도 엄연하게 차별이 존재합니다.영적으로는 내가 죄인되었을 때 나를 주님 앞으로 불러주시고, 죄를 용서해주신 것에 감사한다면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생각하고 그들에게 그 사랑을 베풀고 돌려드리는 겸손한 ..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주일날 교회에 와서 예배는 드리되 돌아가면 가정에서는 욕설과 폭력을 휘두르는 어른도 있습니다.아이들은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며 교회를 싫어하게 됩니다.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어른의 행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교회를 다니더니 사람이 달라졌다는 소리는 들어야 맞는 것 같습니다.말씀을 듣고 실천하라는 야고보의 오늘 말씀은 교회 밖의 세계에서 내가 행하는 말과 행동이 삶의 현장에도 이어졌는지 돌아보게 됩니다.최소한 내 삶이 변화되려면 하나님 말씀에 내 가슴이 반응을 하고, 내 영혼에 빛이 들어와야 가능한 줄 믿습니다.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시련이 우리에게 왔을 때 우리는 첫번째 반응이 남 탓을 합니다.두번째는 시련을 넘기기 위한 유혹이 다가옵니다.세번째는 하나님 탓을 합니다. 시련이 시련이 되는 이유는 나의 욕심 때문임을 깨닫게 됩니다.악의 유혹이 다가올 때 나의 욕심이 만나면 유혹의 손을 잡게 되고 시련이 시작되는 것입니다.더 빠른 길이 있었고, 고통을 잊기 위한 쉬운 방법이 있었고,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이 우리는 행동합니다.하지만 시련을 견디면 하나님은 '생명'이라는 면류관을 씌워주시는데 견딜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 깨닫게 됩니다.저는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하나님을 읽다가 가슴을..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2-3)야고보는 예수님의 친형제였습니다.예수님의 죽음을 보고나서야 예수님을 믿게 된 야고보는 실천하는 믿음을 주장했던 사도였습니다.오늘 말씀은 성도는 이 땅을 사는 동안 나그네의 신분으로 산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어렵지 않을 수도 있는 말씀입니다.성도는 궁을 나온 왕자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궁을 버리고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고생을 하지만 언젠가는 화려한 궁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배고픔도 추위도 참으며 견딜 수 있습니다.인생을 나그네에 비유한다면 성도는 고난을 통해 인내를 배우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게 하는 믿음의 과정이니 당연히 고난도 따른..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이스라엘 연합군들은 베냐민 지파와 화친조약을 맺으면서도 자신들의 딸은 베냐민 지파에게 절대 줄 수 없다고 맹세했고, 길르앗 처녀들 수 백명 납치해도 모자라자 실로 축제에 나오는 여자들을 납치해서 아내로 삼으라고 장로들이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이 때에는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각기 자기 소견대로 행했다고 했는데 왕은 없었지만 하나님은 계셨는데 왜 하나님께 묻지는 않았는지 의문입니다.왕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잘못은 없다는 식의 논리로 형식만 붙드는 껍데기 신앙을 그들은 하나님께서 용납하신다고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자신들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악행을 저지르는 이스라엘 연합군들의 논리..
"그들이 야베스 길르앗 주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백 명을 얻었으니 이는 아직 남자와 동침한 일이 없어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라 그들을 실로 진영으로 데려오니 이 곳은 가나안 땅이더라"(삿 21:12)무차별 학살을 자행하는 바람에 베냐민 지파가 600여 명만 남자 멸절 위기에 놓인 베냐민 지파를 놓고 이스라엘 공동체는 위기를 깨달았습니다.그런데 그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님께 회개하며 구하는 것이 아니라 미스바 총회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길르앗 야베스 족을 죽이고 그 곳 처녀 400명을 사로잡아 베냐민 지파에게 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입니다.마치 가나안 족속들이 그런 것처럼 몹시 잔인하고, 베냐민을 살리기 위하여 야베스를 죽이는 또 다른 악행을 저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게 됩니다.하나님 앞..
"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은 모두 다 불살랐더라"(삿 20:48)오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베냐민 지파의 멸망을 보게 됩니다.600여 명만 남고 모두 죽게 되는 베냐민 지파는 두 번의 승리를 통해서 자만에 빠져 있었고 회개하지 않았던 이유입니다.두 번의 승리가 마치 자신들이 의로움을 증명한다는 듯이 승리에 도취되어 있었던 베냐민 지파는 아마도 하나님은 자기들 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베냐민 지파의 멸망의 결정적인 원인은 승리에 도취되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본분을 잊고 마치 가나안 사람들 처럼 변해서 동족을 잔인하게 학살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하나님은 이것을 간과하지 않으셨습니다.분노에 눈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