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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Now On...
꿈꾸는 인큐베이터 박완서 동생의 전화 목소리는 속사포처럼 빨랐다. 충분히 상냥했고 응석이 깔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답할 틈을 전혀 주지 않았기 때문인지 명령조로 들렸다. "그럼 언니 부탁해, 어머머 큰일 났다. 오늘 직원조횐데 또 교장 눈총 맞으면서 들어가게 생겼네. 언니 지금 통탄통탄 하고 있지? 날 옆으로 끌어들인 거 말야. 그렇지만 때는 이미 늦었구. 우리 언니의 요 꿀맛을 안 이상 악착같이 붙어다닐테니까. 약올르지롱." 제 할 소리 다하고 농지거리까지 하고 나서 가타부타 이쪽의 사정 따위는 들을 척도 안하고 전화는 찰카닥 끊겼다. 동생의 용건은 제 자식 슬기 유치원에서 재롱잔치..
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양귀자 두 명의 일꾼은 아침 여덟 시가 지나서 들이닥쳤다. 일의 시작은 때려 부스는 것부터였다. 두 사람이 덤벼들어서 함부로 두들겨 깨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는 그 요란한 소리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망치질 한 번에 여기저기로 튕겨나가는 타일 조각과 콘크리트 파편 때문에라도 더 이상은 그곳에 있을 수 없었다. 목욕탕과 잇대어 있는 주방도 어수선하기론 마찬가지였다. 목욕탕에서 옮겨 온 세간살이가 옹색한 부엌을 더욱 비좁게 만들고 있었다. 그 속에서 아내는 인부들 점심상에 내놓을 푸성귀를 다듬고 있었다. ..
빈집 신경숙 빈 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눈물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꼭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모― 기형도, [빈집] 전문 스페인은 언제 가시우? 밤이 되면서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을 흠뻑 맞아 눈사람이 되어 스튜디오 경비실을 막 지나려는 그를 보며, 아니 그의 어깨에 걸린 기타를 보며, 늙은 경비원이 습관처럼 물었다. 봄이 오면.... 자신이 생각해도 어..
과도기 한설야 1 창선이는 사 년 만에 옛 땅으로 돌아왔다. 돌아왔다니보다 몰려왔다. 되놈의 등쌀에 간도에서도 살 수 없게 된 때에 한낱 광명과 같이 생각혀지고 두덮어 놓고 발끝이 향하여진 곳은 예 살던 이 땅이었다. 그러나 두만강 얼음을 타고 이 땅에 밟아 들어 보아도 제서 생각던 바와는 아주 딴판이다――밭 하루 갈이 논 두어 마지기 살 돈만 벌었으면 흥타령을 부르며 고향으로 가겠는데――이렇게 생각던 터인데 막상 돌아와 보니 자기를 반겨 맞는 곳이라고는 없었다...
눈처럼 하얀 강보에 갓 태어난 아기가 꼭꼭 싸여 있다. 자궁은 어떤 장소보다 비좁고 따뜻한 곳이었을 테니, 갑자기 한계 없이 넓어진 공간에 소스라칠까봐 간호사가 힘주어 몸을 감싸준 것이다.이제 처음 허파로 숨쉬기 시작한 사람. 자신이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방금 무엇이 시작됐는지 모르는 사람. 갓 태어난 새와 강아지보다 무력한, 어린 짐승들 중에서 가장 어린 짐승.피를 너무 흘려 창백해진 여자가 그 아기의 울고 있는 얼굴을 본다. 당황하며 강보째로 아기를 받아 안는다. 그 울음을 멎게 하는 법을 아직 모르는 사람. 믿을 수 없는 고통을 방금까지 겪은 사람. 아기가 별안간 울음을 멈춘다. 어떤 냄새 때문일 것이다. 또는 둘이 아직 연결되어 있다. 보지 못하는 아기의 검은 눈이 여자의 얼굴 쪽을ㅡ목소리가 ..
1845년의 3월 말경, 나는 도끼 한 자루를 빌려 들고 월든 호숫가의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호수 가까이에 집 한 채를 지을 생각으로 곧게 뻣은 한창때의 백송나무들을 재목감으로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빌리지 않고 어떤 일을 시작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이웃들로 하여금 당신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은 너그러운 처사하고 할 수 있으리라. 도끼 임자는 나에게 도끼를 건네주면서, 자기가 너무나도 애지중지하는 물건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도끼를 빌려 올 때보다 더 잘 들게 해서 돌려주었다. 내가 일하던 곳은 소나무가 우거진 기분 좋은 언덕배기였는데 나무들 사이로 호수가 보였고, 어린 소나무와 호두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술속의 작은 빈터도 보였다. 호수의 얼음은 군데..
서론 부분이라 가난한 시골 사람들에 대하여 쓰고 있다. 시 한 줄을 장식하기 위하여 꿈을 꾼 것이 아니다. 내가 월든 호수에 사는 것보다 신과 천국에 더 가까이 갈 수는 없다. 나는 나의 호수의 돌 깔린 기슭이며 그 위를 스쳐가는 산들바람이다. 내 손바닥에는 호수의 물과 모래가 담겨 있으며, 호수의 가장 깊은 곳은 내 생각 드높은 곳에 떠 있다. 1. 숲 생활의 경제학 이 글을 쓸 무렵 나는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 마을 근처에 있는 월든 호숫가의 숲속에 집 한 채를 손수 지어 홀로 살고 있었다. 그곳은 가장 가까운 이윳과도 1마을쯤 떨어진 곳이었으며, 나는 순전히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2년 2개월 동안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문명 생활의 일원으로 돌아와 있다. 내가 어떤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