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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3일 수요일 마태복음 23 장 1 절 ~ 12 절 <위선(僞善)> 본문
<묵상>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1-12)
제가 어렸을 때 초등학생 아이들의 꿈은 대통령이나 사장, 조금 조촐한 꿈을 가진 아이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가수나 배우, 운동선수, CEO, 요리사 등등 조금 다양해졌지만 아이들에게 큰 꿈을 강요하는 어른들은 자신의 자식이 꿈이 조촐하면 실망하곤 합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셨던 그 당시에는 유대인들의 꿈은 랍비가 되거나 서기관이 되는게 꿈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회당의 높은 자리에 앉은 유대인들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일침을 가하면서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랍비라 칭하는 높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십니다.
서기관, 바리새인 등 높은 사람들은 회당에 '모세의 자리'라고 불리우는 권위있는 자리에 앉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옷 술을 길게 늘어뜨리고 다니면서 같은 피를 나눈 평범한 유대인들을 동등한 형제로 생각하지 않고 낮추어 보면서 무시하곤 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잘 알기에 마치 선생처럼 평민들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일에 앞장을 섰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해 보니 리더란 높은 자리에서 가르치는게 아니라 함께 아파하고, 함께 뛰는 자리로 내려와서 평범한 자들처럼 자신이 낮아지는 리더라야 훌륭한 리더라고 말씀하시네요. 마치 운동선수들 집단에는 코치와 감독이 있는데 감독은 운동장 바깥에서 선수들을 호명하면서 야단도 치고, 격려도 하지만 코치는 선수들과 함께 훈련에 참여하면서 땀을 같이 흘립니다. 코치는 좋은 리더인 것 같습니다.
이기적인 야망으로 아랫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는 자세는 아랫 사람들이 쉽게 마음을 열고,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리더를 도와서 일이 잘되도록 애쓰는 자세를 만들어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내어주기 위하여 오셨기 때문에 이러한 위선을 다 간파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치실 수 있는 유일한 권리를 가지신 분입니다.
우리에게 권위를 가지고 대하면서 우리를 종처럼 부릴 수 있는 권한은 예수님 말고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돈 많은 CEO 나, 권위가 높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겸손한 자세를 오해한 사람들의 갑질은 오랜동안 관행으로 여겨졌고 최근에 와서야 인터넷을 통해서 일파만파 그들의 오만한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그들이 뻣뻣한 목을 겨우 조아리는 듯하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는 삐뚤어진 갑부의 관행이 깊이 박혀있음을 알게해줍니다.
많이 배웠다는 이유로,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좋은 차를 가졌다는 이유로, 직업이 좋아서 높은 지위를 가졌다는 이유로, 돈이 많은 부자라는 이유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대 받아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지금 시대에서 가장 큰 위선은 교회에서 직분이 있다는 이유나 사회적인 높은 지위로 인하여 교회에서 자신을 알아줘야 하고, 높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의 위선이 제일 큰 문제일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시는 것도 아니고, 더 많이 죄를 사해주시는 것도 아니니 그저 예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다 거룩하지 못한 자들로 버림 받아 마땅한 데 예수님 덕분에 하나님의 아들, 딸이라 칭함을 받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마태복음 23 장 1 절 ~ 12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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