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또 너를 일컬어 찾은 바 된 자요 버림 받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
<묵상>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58:9)
죄악으로 어두워져 있는 우리에게도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부를 때에는 언제든지 응답하시겠다는 친절하시고 섬세하신 하나님을 오늘 아침 만나에서는 만납니다.
일이 잘못되었을 때 우리는 쉽게 상대방을 탓하고, 법적으로 해결하려 하고, 초조해하면서 안절부절하지 못합니다.
급할 때 많은 실수를 하게 되는 우리는 두려움과 낙담으로 다른 사람을 원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때일수록 먼저 하나님을 부르짖고 찾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내가 응답하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사 59:1)
어떤 재미교포 사업가가 사업이 자꾸 망해서 도저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자 결국에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기도를 처음으로 했습니다.
하나님께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하나님의 백성인데 도와주셔야지 왜 안도와주십니까 하면서 원망했더니 하나님께서 '네가 누구냐 난 너를 모른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교포 사업가는 너무 의아해서 왜 저를 모르시냐고 우리 아버지는 어느 교회 장로였고, 우리 어머니는 어느 교회 권사셨고 얼마나 열심히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셨는지 자신은 모태 신앙으로서 교회를 얼마나 열심히 다녔는지를 설명하자 그래도 하나님은 모르겠다고 하시더랍니다.
생각해보니 그 사업가는 교회에 발만 들였지 성경을 읽은 적도, 기도를 해 본 적도 없던 자신을 깨닫고 무릎 꿇고 회개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도와주시지 않는 하나님을 탓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먼저 돌아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하십니다.
도와주시지 않으실 때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60:1)
주님을 만나고 지금의 삶은 마치 제가 동굴 속에 있다가 주님의 손에 잡혀서 동굴 밖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지금은 빛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제 모습은 그저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표현할 때 빛이라고 표현합니다.
주님께서 주님을 향한 사람들에게 빛을 보내주셔서 그 빛을 발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도 빛을 발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빕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사 61:10)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인내하는 동안은 고통스럽고 괴롭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몸 안에 있으므로 죽을만큼 괴로운 상태를 참고 견뎌야 합니다.
그러한 견딤을 주님은 동정심을 가지고 보고 계시며 완전한 구원의 약속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참고 인내하는 그동안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겸손하고 경건하게 하나님 안에서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은 마치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처럼 설레고 사랑스럽고, 기분 좋은 두려움까지 은혜롭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 61:1-3)
작년에 본 영화 <부산행>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들이 탄 부산행 열차는 죽음으로 가는 열차였습니다.
영화가 무서운 게 아니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미친듯이 달려가는 우리의 운명이 더 무서웠습니다.
제속에 있는 좀비같은 근성도 무서웠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물어뜯고 싶고, 화가 나면 동물처럼 무서워지는 그 근성이 나를 좀비처럼 변하게 할 수 있다는 무서움이 엄습했지요.
그 영화를 통해서 제가 느낀 것은우리는 죽음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바쁘게 살다가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살게된 우리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살아서 죽음으로 달려가고 있으면서 돈과 욕심과 자식을 위한 모든 일에 몸을 내던지고 살면서 죽음은 더 빨리 종착역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이 죽음의 바이러스를 이기는 백신을 맞은 것입니다.
아무리 현실이 무섭다할지라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순간 그 확실한 백신은 우리의 영혼을 바꾸어놓고 우리와 머나먼 단어인 것 같은 영광이라는 단어와 거룩이라는 단어를 하나님을 향해 되뇌이면서 우리는 바뀌게 되고, 육신이 더러운 죽음을 피하지 못할지언정 죽는 순간까지 바라볼 하늘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