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냐 네가 앗수르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함 같이 또한 애굽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라
- 네가 두 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거기서도 나가리니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로 말미암아 형통하지 못할 것임이라
<묵상>
이사야66장 2절에서는 "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어떻게 마음이 가난해 질 수 있을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넘쳐나고 신용카드가 모든 것을 가능케해 주는 시대에 말입니다.
어떤 사람의 돈을 쓰는 방식은 영적인 현주소를 측정할 수 있는 바로미터인 것 같습니다.
혹시 돈 문제가 나의 영적인 사각지대가 아닌지 점검해 볼 문제입니다.
문명이 발달한 현대시대에는 물질이 현대인이 가장 포기하기 힘든 죄악의 고리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심령을 변화시키셔서 우리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순종하기를 기대하십니다.
오늘도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렘 1:5)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부르실 때 주저하였습니다.
놀라고 불안해서 모세 처럼 자신의 사명을 완곡하게 거절하였습니다.
나이 20세였던 예레미야는 놀랍고 떨려서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렘1:6)하면서 거절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택정을 받았다고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은 시편에서도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시편 139:13에 보면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라고 표현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오래전부터 택정하셨음을 드러냅니다.
신약에서도 에베소서 1장 3-4절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을 어떤 뜻을 가지고 미리 택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빠져 나오고 싶어하면서 간신히 견뎌낸 선지자였습니다.
그에게 용기를 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 뿐이었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 너를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렘 1:18).
예레미야는 40년 동안 온갖 핍박, 구타, 격리, 감옥살이를 견뎌야 했습니다.
그가 전한 메세지는 미개한 바벨론 사람들이 하나님의 묵인하에 유다를 점령하려고 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같은 타국의 힘과 결탁하면 옳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만을 믿으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아름답게 시적으로 현실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악몽 같은 현실을 실감나게 이야기합니다.
그토록 선지자의 사명을 불안해하는 예레미야였지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예레미야는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라고 선포할만큼 말씀으로 불타올랐던 선지자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었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자세히 예레미야를 읽다가 보면 하나님과 다투거나, 비난투로 이야기 하거나 감정이 폭발하는 다혈질의 예레미야를 만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끄덕도 하지 않으시고 더 많은 것을 예레미야에게 약속하셨고 끊없이 예레미야를 몰고 가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예레미야를 잘 읽어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