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쪽을 향한 방은 제단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쓸 것이라 이들은 레위의 후손 중 사독의 자손으로서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 수종드는 자니라 하고
- 그가 또 그 뜰을 측량하니 길이는 백 척이요 너비는 백 척이라 네모 반듯하며 제단은 성전 앞에 있더라
-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 현관에 이르러 그 문의 좌우 벽을 측량하니 너비는 이쪽도 다섯 척이요 저쪽도 다섯 척이며 두께는 문 이쪽도 세 척이요 문 저쪽도 세 척이며
- 그 현관의 너비는 스무 척이요 길이는 열한 척이며 문간으로 올라가는 층계가 있고 문 벽 곁에는 기둥이 있는데 하나는 이쪽에 있고 다른 하나는 저쪽에 있더라
<묵상>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사랑을 베풀지라"(겔 39:25)
혹시 나의 이름 석자를 걸고 무슨 일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사업을 하든, 공부를 하든 나의 이름을 위하여 일한다는 것은 나의 훌륭하신 조상들의 이름들의 연계선상에서 나를 편입시켜서 대단한 결심으로 일을 한다는 의미가 들어있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신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예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셨던 언약을 기억하시고 신실하게 응답하실 뿐만 아니라 열심을 내셔서 온 족속에게 사랑을 베푸실 것이라고 또 다른 언약을 주시는 것입니다.
에스겔 40장에서 보여지는 성전은 솔로몬의 성전보다 더 크다고 합니다.
성전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실재적으로 임재하신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물적인 증거입니다.
에스겔의 환상속에서의 성전은 후에 이스라엘이 회복 되어서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하게 임하는 거룩한 성전의 역할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제사장적인 사역을 상상하게 합니다.
에스겔에서 보여지는 환상들은 너무나 강한데 비해 성전의 모습은 너무나 실제적이기도 합니다.
이것 때문에 에스겔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성전을 교회라고 인식하므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들의 교회는 완전해지지 않을까요?
하지만 지금의 교회가 완벽하진 않을지라도 우리에게 성령하나님을 주신 이유는 예수님의 재림때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전에 성령을 물 붓듯 부으셔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록"(벧후 3:13)우리를 격려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생각할수록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계신 것은 성전에 하나님의 뜻을 두시고 믿음의 분량을 채워가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시라는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열심을 내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