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Now On...
죽음을 기억하면 현재를 누릴 수 있다 / 애니 딜라드의 자연의 지혜중에서 본문
메멘토 모리 : 죽음을 기억하면 현재를 누릴 수 있다
What else is going on right this minute while ground water creeps under my feet?
내 발밑에서 지하수가 새어나오고 있는 이 순간 다른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을까?
The galaxy is careening in a slow, muffled widening.
은하수가 서서히 감싸듯 넓어지며 기울고 있다.
If a million solar systems are born every hour, then surely hundreds burst into being as I shift my weight to the other elbow.
만약 매 시간당 백만 개의 태양계가 탄생한다면, 내가 다른 팔꿈치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동안 분명 수백 개가 터지면서 생겨날 것이다.
The sun's surface is now exploding; other stars implode and vanish, heavy and black, out of sight.
태양 표면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다른 별들도 컴컴하고 묵직하게 폭발하여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다.
Meteorites are arcing to earth invisibly all day long.
보이지는 않으나 별들은 하루 종일 지구 둘레에 원호를 그린다.
On the planet the winds are blowing: the polar easterlies, the westerlies, the northeast and southeast trades.
극동풍, 서풍, 북동풍, 남동풍이 서로 교류하고 있다.
Somewhere, someone under full sail is becalmed, in the horse latitudes, in the dolddrums; in the northland, a trapper is maddened, crazed, by the eerie scent of the chinook, the sweater, a wind that can melt two feet of snow in a day.
한창 항해 중이전 누군가가 무풍대의 어딘가에서 침울하게 돛배를 멈추고 있다. 북녘 땅에서는 하루에 1미터 높이의 눈을 녹이는 따뜻하고 촉촉한 남쪽 바람이 내뿜는 기이한 향기 때문에 사냥꾼이 미칠지경이다.
The pampero blows, and the tramontane, and the Boro, sirocco, levanter, mistral.
아르헨티나의 남서풍인 팜페로가 불고 있다. 트라몬타네라는 이름의 북풍도, 사하라에서 북아프리카까지 부는 지중해의 시로코 바람도, 동쪽에서 서쪽 지중해까지 불어오는 레반테 바람도,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미스트랄 바람도 불고 있다.
Lick a finger: feel the now. 손가락에 침을 발라 들어서 지금 느껴 보라.
Spring is seeping north, towards me and away from me, at sixteen miles a day.
봄이 하루에 25킬로미터의 속도로 북쪽으로부터 다가온다. 나를 향해 다가오기도 하고 또 내게서 멀어지기도 한다.
Caribou straggle across the tundra from the spruce-fir forests of the south, first the pregnant does, hurried, then the old and unmated does, then suddenly a massing of bucks, and finally the diseased and injured, one by one.
순록이 길을 벗어나 남쪽 전나무 숲에서 나와 툰드라 지역을 통과하고 있다. 처음엔 새끼 밴 놈이 길을 벗어나 급히 가더니, 이어 늙고 짝없는 놈이 지나가고, 그다음엔 수사슴 한 무리가 홀연 지나가고, 마지막으로 병들고 상처 입은 놈이 한 마리씩 지나가고 있다.
Somewhere, people in airplanes are watching the sun set and peering down at clustered house lights, stricken.
어디선가 비행기를 타고 가던 사람들이 일몰을 바라본 뒤, 밀집해 있는 주택들이 내뿜는 고통에 잠긴 불빛들을 내려다본다.
In the montana in Peru, on the rain-forested slopes of the Andes, a woman kneels in a dust clearing before a dark shelter of overlapping broad leaves; between her breasts hangs a cross of smooth sticks she peeled with her teeth and lashed with twistings of vine.
페루 산악 지대에 있는 비탈진 안데스 산의 열대우림 한가운데 먼지 나는 빈터에서, 넓은 나뭇잎들을 겹쳐 만든 컴컴한 임시 거처를 앞에 두고 한 여인이 무릎을 꿇고 있다. 그녀의 양가슴에는 손수 이빨로 벗겨 낸 뒤 포도 덩굴을 엮어서 묶은 매끄러운 나무십자가가 매달려 있다.
Along estuary banks of tidal rivers all over the world, snails in black clusers like currants are gliding up and down the stems of reed and sedge, migrating every moment with the dip and swing of tides.
조수 간만이 있는 세상 도처의 넓은 강어귀 둑길을 따라, 달팽이들이 검은 무리를 이루어 갈대와 사초 줄기를 따라 위로 아래로 물살처럼 미끄러진다. 달팽이들은 조수의 찰랑이는 진폭에 맞추어 매 순간 움직인다.
Behind me, Tinker Mountain, and to my left, Dead Man Mountain, are eroding one thousandth of an inch a year.
내 등 뒤로 보이는 팅커 산과 내 왼쪽에 있는 데드맨 산은 1년에 1,000분의 2센티미터씩 부식되고 있다.
The tomcat that used to wake me is dead; he was long since grist for an earthworms's casting, and is now the clear sap of a Pittsburgh sycamore, or the honeydew of aphids sucked from that sycamore's high twigs and sprayed in sticky drops on a stranger's car.
나를 깨우곤 했던 그 수고양이는 이제 죽고 없다. 그 고양이는 새끼 지렁이들의 먹이가 된 지 오래다. 아마도 지금쯤은 피츠버그에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의 맑은 수액이 되었거나 혹은 그 나무의 높은 가지에 사는 진딧물이 빨아들여 낯선 이의 차 위에 찐득찐득하게 뿌려놓은 단물이 되어 있으리라.
A steer across the road stumbles into the creek to dring; he blinks; he laps; a floating leaf in the current catches against his hock and wrenches away.
길을 가로질러 가던 황소가 물을 마시려고 비틀거리며 냇가로 향한다. 눈을 껌벅이면서 물을 꿀꺽꿀꺽 마시고 있다. 냇물에 떠내려가던 잎사귀 하나가 뒷다리 무릎께에 붙자 황소는 몸을 비틀어 그것을 떼어 냈다.
The giant water bug I saw is dead, long dead, and its moist gut and rigid casing are both, like the empty skin of the frog it sucked, dissolved, spread, still spreading right now, in the steer's capillaries, in the windblown smatter of clouds overhead, in the Sargasso Sea.
내가 목격했던 물장군도 죽은 지 로애다. 그 물장군의 축축한 내장과 딱딱한 껍질은 자신이 삼켰던 개구리의 텅 빈 껍질과 마찬가지로 해체되어 퍼져 갔다. 황소의 모세관으로 바람이 불어 잘게 부서진 머리 위 구름 속으로, 사르가소 바다의 깊은 물속으로 여전히 퍼져가고 있다.
The mockingbird that dropped furled from a roof.......but this is no time to count my dead.
지붕에서 날개를 접은 채 떨어졌던 그 앵무새는......하지만 내가 보아 왔던 죽음들을 일일이 헤아릴 시간이 없다.
That is night work. 그것은 밤에나 할 일이다.
The dead are staring, underground, their sleeping heels in the air.
죽은 존재들이 지하에서 우리를 응시하며, 그들이 자는 잠이 공기 중에서 우리를 쫓아온다.
The sharks I saw are roving up and down the coast.
내가 본 상어들은 해안의 위아래로 뛰놀고 있다.
If the sharks cease roving, if they still their twist and rest for a moment, they die.
상어는 떠도는 것을 그만두면, 즉 몸부림을 멈추고 잠시 동안 머물러 있으면 죽어버린다.
They need new water pushed into their gills; they need dance.
상어는 새 물을 자신들의 아가미로 밀어 넣어야 한다. 상어는 춤을 춰야 한다.
Somewhere east of me, on another continent, it is sunset, and starlings in breathtaking bands are winding high in the sky to their evening roost.
동쪽 어딘가의 다른 대륙에서 해가 저물고 있다. 놀랄 만큼 찌르레기들이 떼 지어 하늘 높이 휘돌아 자신들의 밤 보금자리로 가고 있다.
Under the water just around the bend downstream, the coot feels with its foot in the creek, rolling its round red eyes.
굽이치는 강 하류 주변의 물밑에서는 검둥오리가 냇가에 발을 담그고는 붉고 둥근 눈알을 굴리고 있다.
In the house a spider slumbers at her wheel like a spinster curled in a corner all day long.
집 안에서는 거미가, 마치 하루 종일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할미처럼 자기 수레에서 잠을 자고 있다.
The mantis egg cases are tied to the mock-orange hedge; within each case, within each egg, cells elongate, narrow, and split; cells bubble and curve inward, aligh, harden or hollow or stretch.
사마귀 알집들은 덤불 울타리에 붙어 있고 그 알집들 속의 알 하나하나 안에서는 세포가 늘었다 줄었다 분열하기를 반복한다. 세포는 안에서 거품을 내며 곡선을 이룬 뒤 정렬하여 딱딱해지거나 텅 비거나 혹은 펴진다.
The Polyphemus moth, its wings crushed to its back, crawls down the driveway, crawls down the driveway, crawls.....
날개가 꺽여 등에 달라붙은 폴리페무스나방은 아래쪽 차도로 기어가고 있다. 기어서 차도로 간다. 기어서.....
The snake whose skin I tossed away, whose homemade, personal skin is now tangled at the county dump----that snake in the woods by the quarry stirs now, quickens now, prodded under the leaf mold by sunlight, by the probing root of May apple, the bud of blooddroot.
내가 던져 버린 허물의 주인인 뱀, 지금쯤 지역 쓰레기장에는 그가 손수 만든 허물이 굴러다니고 있을 것이다. 채석장 근처 숲에 있던 뱀은 지금쯤 몸을 바삐 움직이면서 길을 재촉하고 있을 것이다. 부엽토 밑으로 파고드는 햇빛과 5월의 사과나무의 탐색하는 듯한 뿌리와 양귀비의 싹에 자극받아서 말이다.
And where are you now? 그런데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I stand. All the blood in my body crashes to my feet and instantly heaves to my head, so I blind and blush, as a tree blasts into leaf spouting water hurled up from roots.
나는 서 있다. 몸 안의 피가 발로 후드득 몰려갔다가 급히 머리 위로 치솟는다. 그래서 나는 눈앞이 아득하고 얼굴이 붉어진다. 마치 나무가 뿌리에서부터 길어 올린 물을 잎으로 내보내듯이.
What happens to me?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I stand before the sycamore dazed; I gaze at its giant trunk.
나는 어리둥절한 채 플라타너스 나무 앞에 서서 그 거대한 몸통을 바라본다.
Big trees stir memories. You stand in their dimness, where the very light is blue, staring unfocused at the thickest part of the trunk as though it were a long, dim tunnel----: the Squirrel Hill tunnel.
큰 나무는 기억을 휘젓는다. 당신은 푸르른 기억의 어려풋함 속에 서서 나무 몸통의 가장 두꺼운 부분을 초점 없이 응시하고 있다. 마치 그 두꺼운 나무 몸통이 길고 어두운, 스쿼럴 언덕에 있는 터널이기라도 한 것처럼.
You're gone. The egg-shaped patch of light at the end of the blackened tunnel swells and looms; the sing of tire tread over brick reaches an ear-splitting crescendo; the light breaks over the hood, smack, and full on your face.
어두워진 터널 끝에서 달걀 모양으로 생긴 빛 조각이 부풀더니 갑자기 크게 확대된다. 타이어가 벽돌에 부딪히며 내는 노랫소리가 귀를 찢을 듯이 커지고 있다. 빛이 자동차 후드에 정면으로 와 부서진 뒤 당신의 얼굴을 완전히 비춘다.
You have achieved the past. 당신은 과거를 얻어 냈다.
Eskimo shamans bound with sealskin thongs on the igloo floor used to leave their bodies, their skins, and swim "musclenaked" like a flensed seal through the rock of continents, in order to placate an ald woman who lived on the sea floor and sent or withheld game.
When he fulfilled this excruciating mission, the Eskimo shaman would awake, returned to his skin exhausted from the dark ardors of flailing peeled through rock, and find himself in a lighted igloo, at a sort of party, among dear faces.
해저에 살면서 사냥감을 보내 주거나 저장하던 한 늙은 여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에스키모의 샤먼은 물개 가죽 끈으로 자신을 이글루 바닥에 비끄러맨 뒤 몸과 가죽을 뒤에 남겨 두고 떠나, 마치 물개가 육지의 바위를 통과하듯이 '근육밖에 남지 않은 상태로 헤엄을 치곤 했다. 몹시 괴로운 이 임무를 완수하고 나서 그 에스키모 샤먼은 바위를 통해 벗겨져 나간 어두운 열정에 휘둘려 지친 상태에서 자신의 육신으로 돌아와 깨어나는데, 그때 그는 불밝힌 이글루 안에서 벌어진 파티에 모인 사랑스러운 얼굴들 사이에 자기 자신도 와 있음을 알게 된다.
In the same way, having bored through a sycamore trunk and tunneled beneath a Pennsylvania mountain, I blink, awed by the yellow light, and find myself in a shady side of town, in a stripped dining room, dancing, years ago.
마찬가지로 나도 그 노란 빛살에 경외감을 느끼면서 플라타너스 나무 몸통을 통과했다. 펜실베니아의 어느 산 아래 터널을 지난 후 눈을 깜박이고 나니, 마을의 후미진 곳에 있던 허름한 식당에서 춤을 추고 있던 수년 전의 내가 보였다.
There is a din of trumpets, upbeat and indistinct, like some movie score for a love scene played on a city balcony; there is an immeasurably distand light glowing from half-remembered faces.....
도시의 발코니에서 연주되던 영화의 러브 테마처럼, 불분명하게 커지는 트럼펫 소리가 들려온다. 반쯤 기억이 나는 얼굴들 위로 한없이 멀리서 불빛이 반짝인다.
I stir. The heave of my shoulders returns me to the present, to the tree, the sycamore, and I yank myself away, shove off and moving, seeking live water.
나는 동요한다. 들썩이는 내 어깨가, 현재로, 그 나무로, 그 플라타너스 나무로 나를 되돌린다. 나는 나를 홱 잡아당겨 떨쳐 내고 움직인다. 살아 있는 물을 찾기 위해.
III
Live water heals memories.
살아 있는 물은 기억을 치유해 준다.
I look up the creek and here it comes, the future, being borne aloft as on a winding succession of laden trays.
개울을 올려다보니 미래가 오고 있다. 접시 가득한 쟁반들의 꾸불꾸불한 행렬처럼 높이 떠받친 미래가 온다.
You may wake and look from the window and breathe the real air, and say, with satisfaction or with longing,
"This is it."
당신은 아침에 눈을 떠, 창을 바라보고 진짜 공기를 들이마시고는 만족을 느끼거나 혹은 무엇인가 갈망하면서 "바로 이거야."라고 말할 수도 있다.
But if you look up the creek, if you look up the creek in any weather, your spirit fills, and you are saying, with an exulting rise of the lungs, "Here it comes!"
하지만 강을 올려다보면, 계절과 상관없이 당신의 정신은 충만해진다. 그러면 당신은 매우 기뻐하며 부푼 허파로 "올 것이 오고 있어!" 라고 말할 것이다.
Here it comes. In the far distance I can see the concrete bridge where the road crosses the creek.
오고 있다. 나는 아주 멀리서도 개울을 가로질러 놓인 콘크리트 다리를 볼 수 있다.
Under that bridge and beyond it the water is flat and silent, blued by distance and stilled by depth.
그 다리 아래와 다리 너머에서는 개울물이 잔잔하게 조용히 흐른다. 개울물은 멀리서 보면 푸른빛이 돌고 깊은 곳은 고요하다.
It is so much sky, a fallen shred caught in the cleft of banks.
개울은 너무나 많은 하늘을 담고 있다. 떨어진 하늘 조각이 강둑의 틈에 박혀 있다.
But it pours. The channel here is straight as an arrow; grace itself is an archer.
때로 개울물은 넘쳐흐르기도 한다. 여기 이 고장의 수로는 화살처럼 곧고, 그것을 쏘아 올린 궁수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Between the dangling wands of bankside willows, beneath the overarching limbs of tulip, walnut, and Osage orange, I see the creek pour down.
달랑거리는 지팡이를 매단 것 같은 강둑 버드나무들 사이로, 그리고 튤립나무와 호두나무와 오세이지오렌지 나무의 지나치게 휜 가지 아래로, 나는 개울물이 넘쳐흐르는 것을 보았다.
It spills toward me streaming over a series of sandstone tiers, down, and down, and down.
강물은 내 쪽으로 쏟아진 뒤 층진 사암층 위로 흘러 넘쳐 아래로 아래로 흘러갔다.
I feel as though I stand at the foot of an infinitely high staircase, down which some exuberant spirit is flinging tennis ball after tennis ball, eternally, and the one thing I want in the world is a tennis ball.
마치 내가 한없이 높은 계단의 아래쪽에 서 있고, 그 밑으로 어떤 원기왕성한 영혼이 끝없이 잇달아 테니스공을 던지고 있는데, 이 테니스공 하나가 이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유일한 것인 듯한 느낌을 받앗다.
There must be something wrong with a creekside person who, all things being equal, chooses to face downstream.
강가에 서면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지일 테니 강 하류나 바라보자고 생각하는 사람은 무언가 잘못되엇다.
It's like fouling your own nest.
그것은 자신의 보금자리를 더럽히는 것과 같다.
For this and a leather couch they pay fifty dollars an hour?
여기에 가죽 소파 하나를 놓으면 사람들은 시간당 50달러를 지불할까?
Tinker Creek doesn't back up, pushed up its own craw, from the Roanoke River; it flows down, easing, from the northern, unseen side of Tinker Mountain.
팅커 냇물은 로어노크 강에서부터 자신의 먹이통을 마련해 두고 흐르지는 않는다. 팅커 냇물은 여기서 보이지 않는 팅커 산의 북쪽에서부터 느긋하게 아래로 흘러내린다.
"Gravity, to Copernicus, is the nostalgia of things to become spheres."
"코페르니쿠스에게 중력은 천체가 된 사물들에 대한 향수이다."
This is a curious, tugged version of the great chain of being.
이것은 존재의 대연쇄 개념을 기이하게 끌어들인 해석이다.
Ease is the way of perfection, letting fall.
평안함은 완성의 방식이요, 떨어지게 내버려두는 것이다.
But, as in the classic version of the great chain, the pure trickle that leaks from the unfathomable heart of Tinker Mountain, this Tinker Creek, widens, taking shape and cleaving banks, weighted with the live and intricate impurities of time, as it descends to me, to where I happen to find myself, in this intermediate spot, halfway between here and there.
하지만 존재의 대연쇄 개념에 대한 고전적 해석에서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팅커 산의 중심에서 새어 나와 맑게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들이었던 이 팅커 냇물이 점점 넓어지면서 형태를 이루고 강둑을 가르며 내게로 내려올 때, 즉 여기와 저기 사이의 이 중간 지점, 내가 나 자신을 발견한 이곳으로 내려올 때, 냇물은 생생하고 복잡한 시간의 불순물들로 채워진다.
Look upstream. Just simply turn around; have you no will?
강 상류를 보라.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라. 당신에겐 의지가 없지 않은가?
The future is a spirit, or a distillation of the spirit, heading my way.
미래는 내 길을 인도하는 하나의 정신 내지 그 정신의 증류물이다.
It is north. The future is the light on the water; it comes, mediated, only on the skin of the real and present creek.
미래는 북쪽이다. 미래는 강물에 비치는 빛이다. 미래는 실제로 존재하는 냇물의 표면에서만 나타나고 매개된다.
My eyes can stand no brighter than this; nor can they see without it, if only the undersides of leaves.
내 눈은 이보다 밝은 빛을 견딜 수 없다. 하지만 또, 내 눈은 이 빛 없이는 볼 수 없다. 잎의 뒷면조차 볼 수 없다.
Trees are tough. 나무는 튼튼하다.
They last, taproot and bark, and we soften at their feet.
나무의 원뿌리와 껍질은 오래 지속되며 우리는 나무 아래에서 마음이 누그러진다.
"For we are strangers before thee, and sojourners, as were all our fathers: our days on the earth are as a shadow, and there is none abiding."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그러했듯이 그대, 체류자들 앞에서 이방인들이다. 이 지구상에서 우리가 보내는 나날들은 그림자와 같아서 아무것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We can't take the lightning, the scourge of high places and rare airs.
우리는 공기가 희박한 높은 곳에서 내려치는 채찍 같은 번갯불을 견디지 못한다.
But we can take the light, the reflected light that shines up the valleys on creeks.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냇물 위 계곡을 비추어 주는 반사된 빛이다.
Trees stir memories; live waters heal them.
나무는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반면, 살아 있는 강물은 그 기억을 치유해 준다.
The creek is the mediator, benevolent, impartial, subsuming my shabbiest evils and dissolving them, transforming them into live moles, and shiners, and sycamore leaves.
강물은 인자하고 공평한 매개자이며 나의 가장 누추한 죄악들을 삼키고 용해하여 살아 있는 두더지와 은빛 물고기와 플라타너스 나뭇잎으로 변화시킨다.
It is a place even my faithlessness hasn't offended; it still flashes for me, now and tomorrow, that intricate, innocent face.
강물은 나의 불신앙조차 탓하지 않는다. 강물은 지금 그리고 내일도 여전히 내게 그 복합적이면서 순진한 얼굴을 보여 준다.
It waters and undeserving world, saturating cells with lodes of light.
강물은 가치 없는 세상에 물을 주고 무수한 빛으로 세포를 흠뻑 적신다.
I stand by the creek over rock under trees.
나는 나무 아래에 있는 바위 너머 개울 옆에 서 있다.
It is sheer coincidence that my hunk of the creek is strewn with boulders.
나의 강물에 둥근 돌들이 뿌려져 있는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
I never merited this grace, that when I face upstream I scent the virgin breath of mountains, I feel a spray of mist on my cheeks and lips, I hear a ceaseless splash and susurrus, a sound of water not merely poured smoothly down air to fill a steady pool, but tumbling live about, over, under, around, between, through an intricate speckling of rock.
나는 이런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다. 강 상류를 마주 보았을 때 나는 산의 순결한 숨결을 냄새 맡고, 두 뺨과 입술 위로 퍼져 나가는 안개를 느꼈으며, 귀로는 쉴 새 없이 물 튀기는 소리를 들었다. 물이 부드럽게 아래로 넘쳐흘러 차분히 웅덩이에 고이는 소리뿐 아니라, 바위의 복잡한 반점을 통해 그 사이로, 내 주변, 내 위, 내 아래에 온통 살아서 출렁이는 물소리까지도 나는 들었다.
It is sheer coincidence that upstream from me the creek's bed is ridged in horizontal croppings of sandstone.
내 쪽에서 볼 때 강의 상류에서, 수평으로 잘린 사암 분수령이 강바닥에 나타난 것도 순전히 우연이다.
I never merited this grace, that when I face upstream I see the light on the water careening towards me, inevitably, freely, down a graded series of berraces like the balanced winged platforms on an infinite, inexhaustible font.
나는 이런 은총을 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 강 상류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내 앞으로 기울어지던 강물 위의 빛줄기를 보았다. 그 빛줄기는 균형잡힌 단처럼 생긴 완만한 언덕 아래로 변함없이 자유롭게 흘러내려 마르지 않는 영원한 샘으로 흐르고 있었다.
"Ho, if you are thirsy, come down to the water ; ho, if you are hungry, come and sit and eat."
"자, 목이 마르면 이리 내려와 물가로 가라. 자, 배가 고프면 와서 먹어라."
This is the present, at last. 결국 이것이 현재다.
I can pat the puppy any time I want.
나는 내가 원하는 어느 때고 강아지를 어루만질 수 있다.
This is the now, this flickering, broken light, this air that the wind of the future presses down my throat, pumping me buoyant and giddy with praise.
이 깜빡임, 부서진 빛, 미래의 바람이 내 목을 내리눌러 펌프질을 해 나를 붕 띄우고 찬미로써 어질어질하게 만드는 이 공기, 이것이 바로 현재다.
My God, I look at the creek.
하나님, 저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It is the answer to Merton's prayer, "Give us time!"
"저희에게 시간을 주소서!" 라고 머튼이 기도한 데 대한 답이 이것이다.
It never stops. If I seek the senses and skill of children, the information of a thousand books, the innocence of puppies, even the insights of my own city past, I do so only, solely, and entirely that I might look well at the creek.
강물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아이들의 감각과 기술, 천 권의 책에 담긴 지식, 강아지들의 순진무구함, 심지어 도시에서 보낸 나 자신의 과거에 대한 통찰을 내가 추구한다 해도, 나는 오직 강물을 바라보기만 할 것이다. 강물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You con't run down the present, pursue it with baited hooks and nets.
현재를 뒤쫓지 말 것이며 미끼를 단 낚싯바늘과 그물을 가지고 현재를 낚으려 들지도 마라.
You wait for it, empty-handed, and you are filled.
당신은 빈손으로 현재를 기다려야 한다.
You'll have fish left over. The creek is the one great giver.
그러면 채워질 것이다. 양손에 넘치도록 물고기를 받을 것이다. 강물은 크게 베푸는 존재다.
It is, by definition, Christmas, the incarnation.
정의하면 강물은 성탄절, 즉 신의 강생이다.
This old rock planet gets the present for a present on its birthday every day.
이 오래된 바위 행성은 매일 매일 현재에게 생일 선물을 준다.
Here is the word from a subatomic physicist: "Everything that has already happened is particles, everything in the future is waves."
양자와 원자를 연구하는 한 물리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 일어난 모든 것은 분자이며, 미래 속에 잇는 모든 것은 파도이다."
Let me twist his meaning. Here it comes.
이 말의 의미를 비틀어 보면 다음과 같다.
The particles are broken; the waves are translucent, laving, roiling with beauty like sharks.
분자들은 부서지지만, 파도는 반투명하게 씻어 내며 상어 떼처럼 아름답게 휘젓고 다닌다.
The present is the wave that explodes over my head, flinging the air with particles at the height of its breathless unroll; it is the live water and light that bears from undisclosed sources the freshest news, renewed and renewing, world without end.
현재는 내 머리 위에서 폭발하는 파도이며, 공기 중에 분자를 숨도 못 쉴 정도의 높이로 던져 펼친다. 현재는 아직 출처가 밝혀지지 않은 가장 신선한 소식, 끝없이 새롭고 또 새로워지고 있는 소식을 담고 있는 살아 있는 물, 살아 있는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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