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Now On...
Pilgrim at Tinker Creek / Untying the Knot / Annie Dillard 본문
5 계절에도 시작과 끝이 있을까
Untying the Knot / 풀리지 않는 매듭
Yesterday I set out to catch the new season, and instead I found an old snakeskin.
어제 나는 새로운 계절을 느끼러 나갔다가 대신 오래된 뱀 허물을 발견했다.
I was in the sunny February woods by the quarry; the snakesin was lying in a heap of leaves right next to an aquarium someone had thrown away.
채석장 옆에 있는 2월의 햇살 좋은 숲에서였다. 누군가가 버려두고 간 수족관 바로 옆에 쌓인 낙엽 더미에 뱀 허물이 놓여 있었다.
I don't know why that someone hauled the aquarium deep into the woods to get rid of it; it had only one broken glass side.
왜 숲 깊숙한 곳에까지 와서 수족관을 버려두고 갔을까? 단지 한쪽 유리가 부서졌을 뿐인데.
The snake found it handy, I imagine; snakes like to rub against something rigid to help them out of their skins, and the broken aquarium looked like the nearest likely object.
내가 보기에 뱀은 그 수족관이 유용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뱀은 허물을 벗을 때 딱딱한 물체에 대고 몸을 문지르는 것을 좋아하는데, 부서진 수족관은 이 부근에서 눈에 띄는 가장 그럴싸한 물건이었다.
Together the snakeskin and the aquarium made an interesting scene on the forest floor.
수족관과 뱀 허물이 함께 놓인 모습은 숲의 평지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했다.
It looked like an exhibit at a trial---circumstantial evidence---of a wild scene, as though a snake had burst through the broken side of the aquarium, burst through his ugly old skin, and disappeared, perhaps straight up in the air, in a rush of freedom and beauty.
그것은 마치 야생이라는 이름의 재판정에서 정황증거로서 제시된 것 같았다. 뱀의 수족관의 부서진 면을 통해 비어져 나온 뒤, 이전에 자신이 썼던 흉한 껍질을 벗어던지고는 솟구치는 자유와 아름다움 속에서 공기 중으로 곧장 사라진 듯이 보였다.
The snakeskin had unkeeled scales, so it belonged to a nonpoisonous snake.
뱀 허물의 비늘이 눕이 않았던 것으로 보아 독을 품은 뱀은 아닌 모양이었다.
It was roughly five feet long by the yardstick, but I'm not sure because it was very wrinkled and dry, and every time I tried to stretch it flat it broke.
뱀 허물은 대략 150센티미터 정도 길이였다. 하지만 너무 주름 지고 말라 있어서 내가 그 허물을 평평하게 펴 보려고 할 때마다 바스러졌기 때문에 어림한 길이가 정확한지는 자신이 없다.
I ended up with seven or eight pieces of it all over the kitchen table in a fine film of forest dust.
결국 나는 부엌 식탁 위에 미세한 엷은 막 같은 숲의 먼지를 일으키며 뱀 허물을 일곱 내지 여덟 개로 토막내고 말았다.
The point I want to make about the snakeskin is that, when I found it, it was whole and tied in a knot.
그 허물은 내가 처음 발견했을 때 온전한 상태로 매듭지어져 있었다.
Now there have been stories told, even by reputalbe scientists, of snakes that have deliberately tied themselves in a knot to prevent larger snakes from trying to swallow them---but I couldn't imagine any way that throwing itself into a half hitch would help a snake trying to escape its skin.
더 큰 뱀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일부러 매듭을 짓는 뱀들에 대해 여러 유명한 생물학자들이 많은 이야기들을 해 왔다. 하지만 나는 자기 몸을 반쯤 잡아매는 것이 껍질을 벗으려는 뱀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상상할 수 없다.
Still, ever cautious, I figured that one of the neighborhood boys could possibly have tied it in a knot in the fall, for some whimsical boyish reason, and left it there, where it dried and gathered dust.
아직도 나는, 이웃에 사는 어떤 소년이 사내아이 특유의 심술로 가을에 허물을 묶어 거기다 두어서, 허물이 습기를 잃은 채 먼지를 날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So I carried the skin along thoughtlessly as I walked, snagging it sure enough on a low branch and ripping it in two for the first of many times.
그래서 나는 걷다가 아무 생각 없이 그 뱀 허물을 가지고 와서 낮은 나뭇가지 위에 걸친 뒤, 단번에 그것을 둘로 찢었다.
I saw that thick ice still lay on the quarry pond and that the skunk cabbage was already out in the clearings, and then I came home and looked at the skin and its knot.
채석장 연못 위에 아직도 두꺼운 얼음이 얼어 있었고, 공터에 앉은부채 싹이 벌써 올라온 것을 보았다.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뱀 허물과 매듭을 살펴보았다.
The knot had no beginning. 매듭엔 시작되는 부분이 없었다.
Idly I turned it around in my hand, searching for a place to untie; I came to with a start when I realized I must have turned the thing around fully ten times.
나는 풀 수 있는 곳을 찾아보려고 느긋하게 뱀 허물을 돌려 보았다. 열 번은 족히 돌렸다고 느낄 즈음 나는 매듭이 시작된 부분에 닿았다.
Intently, then, I traced the knot's lump around with a finger: it was continuous.
그래서 나는 손가락으로 매듭 덩어리를 열심히 더듬어 갔다. 그런데 끝이 없었다.
I couldn't untie it any more than I could untie a doughnut; it was a loop without beginning or end.
도넛을 풀수 없는 것처럼 그 매듭도 풀리지 않았다. 시작도 끝도 없는 고리 같았다.
These snakes are magic, I thought for a second, and then of course I reasoned what must have happened.
이 뱀들도 수수께끼구나 하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나서 일어났을 일을 추론해 보았다.
The skin had been pulled inside-out like a peeled sock for several inches; then an inch or so of the inside-out part---a piece whose length was coincidentally equal to the diameter of the skin---had somehow been turned right-side out again, making a thick lump whose edges were lost in wrinkles, looking exactly like a knot.
뱀 허물은 벗겨진 양말 모양으로 15센티미터 정도 뒤집혀 있었다. 그리고 안이 바깥으로 나와 있는 부분의 2센티미터 가량(이 길이는 우연히도 뱀 허물의 지름과 똑같은 길이였다.)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다시 바른쪽을 향한 상태에서 두꺼운 고리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 가장자리가 주름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히 매듭처럼 보였던 것이다.
So. I have been thinking about the change of seasons.
나는 계절의 변화에 대해 계속 생각해 왔다.
I don't want to miss spring this year.
올해에는 봄을 놓치고 싶지 않다.
I want to distinguish the last winter frost from the out-of-season one, the frost of spring.
작년 겨울에 서리와 봄의 서리를 구분하고 싶다.
I want to be there on the spot the moment the grass turns green.
풀이 푸르러지는 순간 그 현장에 있고 싶다.
I always miss this radical revolution; I see it the next day from a window, the yard so suddenly green and lush I could envy Nebuchadnezzar down on all fours grass.
나는 언제나 이 본질적인 혁명을 놓친다. 다음 날 창 너머로 바라보니 뜰은 갑자기 싱싱한 초록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저 아래에서 풀을 뜯어먹고 있는 동물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This year I want to stick a net into time and say "now," as men plant flags on the ice and snow and say, "here."
그래서 올해 나는 시간을 그물로 붙잡아 "지금"이라고 말하려 한다. 사람들이 얼음과 눈에 깃발을 꽂으면서 "여기" 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But it occurred to me that I could no more catch spring by the tip of the tail than I could untie the apparent knot in the snakeskin; there are no edges to grasp.
Both are continuous loops.
하지만 내가 뱀 허물에 선명히 남아 있던 매듭을 풀지 못했듯이 봄의 끝자락 또한 잡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붙잡을 끄트머리도 없다. 둘 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리들이니까.
I wonder how long it would take you to notice the regular recurrence of the seasons if you were the first man on earth.
만약 우리가 지구상 최초의 인간이라면 계절의 규칙적인 반복을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궁금하다.
What would it be like to live in open-ended time broken only by days and nights?
그저 낮과 밤에 의해서만 쪼개질 따름인, 끝이 열린 시간 속에 산다는 건 어떤 일일까?
You could say, "it's cold again; it was cold before," but you couldn't make the key connection and say, "it was cold this time last year," because the notion of "year" is precisely the one you lack.
"다시 추워졌어. 전에도 추운 적이 있었지." 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핵심적인 연결을 짓는다거나 "작년 이맘때 추웠지." 라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해(年)' 의 개념이야말로 정확히 우리가 결여하고 있는 그 무엇일 테니까.
Assuming that you hadn't yet noticed any orderly progression of heavenly bodies, how long would you have to live on earth before you could feel with any assurance that any one particular long period of cold would, in fact, end?
천체의 규칙적인 운행을 아직 모른다고 가정하면, 지상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야 특정 기간의 추위가 언제쯤이면 끝나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까?
"While the earth remaineth, seedtime and harvest, and cold and heat, and summer and winter, and day and night shall not cease" :
"지구가 존속되는 한 씨 뿌리고 수확하는 일,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라고
God makes this guarantee very early in Genesis to a people whose fears on this point had perhaps not been completely allayed.
하느님은 창세기 초기에 한 민족에게 보장하셨다. 그러나 그들의 두려움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It must have been fantastically important, at the real geginnings of human culture, to conserve and relay this vital seasonal information, so that the people could anticipate dry or cold seasons, and not huddle on some November rock hoping pathetically that spring was just around the corner.
인간 문화가 시작되던 초창기에는 계절과 관련한 중요한 지식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일이 극히 중요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계절에 관한 지식이 있으면 사람들이 봄이 곧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불쌍하게도 11월의 바위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지 않아도 되고, 또 건조한 계절이나 추운 계절의 도래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We still very much stess the simple fact of four seasons to schoolchildren; even the most modern of modern new teachers, who don't seem to care if their charges can read or write or name two products of Peru, will still muster some seasonal chitchat and set the kids to making paper pumpkins, or tulips, for the walls.
우리는 아직도 초등하교 학생들에게 사계절과 관련된 단순한 사실을 열심히 강조하고 있다. 자신이 담당한 학생이 글을 읽고 쓸 수 있는지, 페루의 특산물 두 가지에 대해 말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가장 앞서 가는 선생님도 여전히 계절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모으고, 아이들에게 종이 호박이나 튤립을 만들어서 게시판에 붙이게 한다.
"The people," wrote Van Gogh in a letter, "are very sensitive to the changing seasons."
"사람들은 변화하는 계절에 매우 민감하다." 라고 반 고흐는 한 편지에서 썻다.
That we are "very sensitive to the changing seasons" is, incidentally, one of the few good reasons to shun travel.
우리가 "변화하는 계절에 매우 민감" 하다는 것은 여행을 피하기 위한 좋은 구실이 되기도 한다.
If I stay at home I preserve the illusion that what is happening on Tinker Creek is the very newest thing, that I'm at the very vanguard and cutting edge of each new season.
집에 머물 때면 나는, 팅커 냇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가장 신선하고 내가 매 새로운 계절의 시작과 끝에 있다는 환상에 젖는다.
I don't want the same season twice in a row; I don't want to know I'm getting last week's weather, used weather, weather broadcast up and down the coast, old-hat weather.
나는 똑같은 계절을 두 번 연속해서 보고 싶지는 않다. 지난주의 날씨, 익숙한 날씨, 해안 주변의 그렇고 그런 날씨, 케케묵은 날씨가 계속되리라는 것을 알고 싶지 않다.
But there's always unseasonable weather.
하지만 계절과 맞지 않는 날씨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What we think of the weather and behavior of life on the planet at any given season is really all a matter of statistical probabilities; at any given point, anything might happen.
어떤 주어진 계절에 일어나는 지구 위의 날씨와 생명 활동에 대해 우리가 가진 생각들은 사실은 모두 통계적인 가능성의 문제이다. 어떤 지점에서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
There is a bit of every season in each season.
각각의 계절에는 모든 계절이 약간씩 들어가 있다.
Green plants---deciduous green leaves---grow everywhere, all winter long, and small shoots come up pale and new in every season.
푸른 나무들, 말하자면 낙엽수의 푸른 잎은 겨우내 어디에서나 자라고 작은 싹은 사계절 내내 창백하지만 새롭게 올라온다.
Leaves die on the tree in May, turn brown, and fall into the creek.
5월에도 잎은 나무에서 죽어, 갈색으로 바래 냇물에 떨어진다.
The calendar, the weather, and the behavior of wild creatures have the slimmest of connections.
달력과 날씨와 야생동물의 행동은 가장 연관성이 약하다.
Everything overlaps smoothly for only a few weeks each season, and then it all tangles up again.
모든 것은 각 계절의 몇 주 동안만 유연하게 겹치다가 다시 모두 엉켜 버린다.
The temperature, of course, lags far behind the calendar seasons, since the earth absorbs and releases heat slowly, like a leviathan breathing.
물론 기온은 달력의 계절보다 훨씬 시간적으로 지체된다. 왜냐하면 마치 거대한 바다짐승이 숨 쉬는 것처럼 지구는 열을 서서히 흡수했다가 서서히 방출하기 때문이다.
Migrating birds head south in what appears to be dire panic, leaving mild weather and fields full of insects and seeds; they reappear as if in all eagerness in January, and poke about morosely in the snow.
철새는 곤충과 씨앗으로 가득 한 들판과 온화한 날씨를 남겨 두고 무시무시한 공포가 지배하는 듯이 보이는 남쪽을 행해 갔다가 굉장히 간절한 모습으로 1월에 다시 나타나 눈 속에서 뚱하니 먹이를 뒤진다.
Several years ago our October woods would have made a dismal colored photograph for a sadist's calendar: a killing frost came before the leaves had even begun to brown; they drooped from every tree like crepe, blackened and limp.
몇 년 전엔가 10월의 우리 마을 숲은 냉소주의자들의 달력 그림에나 쓰일 법한 암울한 색조를 띤 적이 있다. 나뭇잎이 미처 갈색으로 변하기도 전에 낙엽을 해치는 서리가 내렸던 것이다. 모든 나무에서 나뭇잎이 마치 주름 진 비단처럼 축 늘어져 색깔은 거뭇해지고 힘이 하나도 없었다.
It's all a chancy, jumbled affair at best, as things seem to be below the stars.
아무리 잘 봐줘야, 별 아래 있는 존재들이 그렇게 보이듯,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는 불확실한 것들이었다.
Time is the continuous loop, the snakeskin with scales endlessly overlapping without beginning or end, or time is an ascending spiral if you will, like a child's toy Slinky.
시간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리이며, 시작이나 끝도 없이 겹쳐지는 비늘을 지닌 뱀 허물이다. 아니, 시간은 아이들의 장난감 용수철 슬링키처럼, 당신이 원하면 위로 올라가는 나선형의 존재다.
Of course we have no idea which are on the loop is our time, let alone where the loop itself is, so to speak, or down whose lofty flight of stairs the Slinky so uncannily walks.
하지만 물론 우리는 고리에 있는 어떤 원호(圓弧)가 우리의 시간이지 모른다. 고리 자체가 어디에 있는지, 혹은 장난감 슬링키가 누구의 높은 계단 아래로 그렇듯 섬뜩하게 걸어 내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The power we seek, too, seems to be a continuous loop.
우리가 추구하는 권능도 이어지는 고리와 같다.
I have always been sympathetic with the early notion of a divine power that exists in a particular place, or that travels about over the face of the earth as a man might wander---and when he is "there" he is surely not here.
어떤 특정 장소에 존재하고, 인간이 헤매고 다니듯 지구의 표면을 여행하고 다니며, '그곳' 에 있을 때 분명 이곳에는 없는 어떤 성스러운 권능에 대한 초기의 관념에 대해 나는 언제나 공감을 느껴왔다.
You can shake the hand of a man you meet in the woods; but the sprit seems to roll along like the mythical hoop snake with its tail in its mouth.
우리는 숲에서 만나는 사람과 악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혼은 꼬리를 입에 문 신화 속 굴렁쇠 뱀처럼 굴러 간다.
There are no hands to shake or edges to untie.
잡을 손도 없고 고기를 풀 매듭도 없다.
It rolls along the mountain ridges like a fireball, shooting off a spray of sparks at random, and will not be trapped, slowed, grasped, fetched, peeled, or aimed.
영혼은 불덩어리처럼 산등성이를 굴러 가면서 안개 같은 불꽃을 아무렇게나 내뿜는다. 덫에 걸리거나 속력을 늦추거나 누군가의 손에 걸려들거나 껍질이 벗겨지거나 누군가를 노리는 법 없이 말이다.
"As for the wheels, it was cried unto them in my hearing, O wheel."
오 수레바퀴여, 하고 외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This is the hoop of flame that shoots the rapids in the creek or spins across the dizzy meadows; this is the arsonist of the summy woods: catch it if you can.
이것은 팅커 냇가의 여울을 쏜살같이 내려가거나 아찔한 목초지를 가로질러 질주하는 굴렁쇠 모양의 불꽃이다. 이것은 햇살 좋은 숲에 불을 놓는 자다. 잡을 테면 잡아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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