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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14일 토요일 마가복음 6 장 14 절 ~ 29 절 <예수님은 누구신가?> 본문
요한의 머리를 벤 살로메 / 1639-1640년/ 귀도 레니
<묵상>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헤롯은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막 6 : 15-16)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앞길을 알려준 탁월한 선지자였습니다.
옛언약에 속한 선지자 중 가장 큰 자라고 여겨지던 그의 죽음은 명성에 비해 허망했습니다.
속되게 표현하면 여인의 춤값에 죽임을 당한 자이니 얼마나 허무한 죽음인지 모르겠습니다.
도덕이나 진리가 혼탁하고 어두운 시대에는 이러한 허무한 죽음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예수님 또한 그러한 죽음의 희생자인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죽음을 비교할 때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헤롯 왕과 빌라도를 비교하게 됩니다.
헤롯은 자신의 생일 날 춤을 멋지게 춘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에게 나라의 절반이라도 줄터이니 소원을 말해보라고 했다가 정작 헤로디아의 사주를 받은 살로메가 요한의 목을 베어서 쟁반에 담아 달라고 하자 뜨끔했었습니다.
그는 요한을 선지자라 생각하고 적당히 보호하고 있었던 입장이었는데 많은 유력자들이 보는 앞에서 선언한 자신의 말의 체면을 차리느라 요한의 목을 베었던 것입니다.
빌라도도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내리고 싶지 않았지만 민란이 날까 두려워 자신의 죄는 없는 것 처럼 위장을 하면서 대중의 지지를 받기 위하여 예수님의 십자가형을 선언하고 마는 것이지요.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이나 왜 이렇게 허망한 죽음을 예배하셨을까요?
요한이나 예수님이나 권력자들은 살려두고 싶었으나 그들이 추종하는 것은 체면이나 대중의 지지와 인기가 그들에게는 최고의 가치였기 때문에 진리는 한 순간에 짓밟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내가 만약 그 당시에 권력자였더라면 요한이나 예수님을 살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노력을 했을까요?
진리에 대해서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고, 예배도 드리고, 찬양도 부르지만 내가 깊이 깊이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나도 사회 지배층의 관념에 따라 행동했을 것입니다.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내 속에 들어와서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있지 않으면 나의 진리도 내가 팔아먹기 좋은 상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죄성은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일까요.....
에효...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대한민국이 우한처럼 변해가는 이 순간에도 우리 가족, 나 하나의 안위만 걱정하는 저의 이기심이 봄날 밝은 햇빛에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마가복음 6 장 14 절 ~ 29 절>
14.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15.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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