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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6일 월요일 창세기 4 장 1 절 ~ 26 절 <가인의 후예> 본문
가인과 아벨 / 1888년 / 윌리엄 부게로
<묵상>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창 4:25)
3장에서 아담과 하와 사이를 갈라 놓았던 죄는 4장에서는 형제를 죽이는 죄로 업그레이드됩니다.
죄는 마치 세포분열처럼 마구마구 번식하는 것 같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일은 선악과라는 과일을 따 먹는 것에 비하면 훨씬 무거운 죄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게다가 가인은 거짓말까지 하나님께 늘어놓는 대범함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아벨의 예물은 받으셨고, 가인의 예물은 받지 않으셨을까요?
성경의 내용으로서는 확실치 않지만 추측하기로 아벨은 아마도 자신의 양 떼 가운데서 최상품의 흠 없는 것을 골라서 마음에 정성을 다해서 드렸던 것 같습니다.
가인은 아마도 아벨 보다는 정성이 부족했거나 세심하지 못하게 예물을 준비하면서 오늘날의 우리처럼 반복되는 예배에 무심하게 구겨진 돈을 성금함에 넣는 심정처럼 별 생각없이 행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 심중을 아시고, 그 마음을 다 아시므로 가인의 속마음을 다 아셨던 것입니다.
아벨을 질투로 인하여 죽임으로 인해 가인은 '표'를 받게 되는데 그것이 정확히 어떤 '표'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인이 받은 '표'는 아마도 눈에 띄는 어떤 낙인같은 것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 표는 가인이 볼 때마다 자신의 죄를 상기시키고, 타인이 볼 때 하나님께 죄값을 받은 죄인을 함부로 죽이지 못하는 힘을 발휘하는 증표였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가인은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가인의 후손 중에 라멕은 두 아내를 맞이한 것도 모자라 사람을 거침없이 죽일 수 있는 대담함을 보여줍니다.
아다와 씰라가 그의 아내였는데 아담과 하와처럼 일부일처제의 관습을 이미 벗어나서 마음대로 하나님의 선한 뜻을 범한 라멕은 자신이 한 군데 상처를 받으면 한 사나이를 죽이고, 한 번 맞기라도 하면 소년을 죽이며 자신을 다치게 한 자에 대해서는 일흔일곱 배로 복수하겠다고 서슴없이 외치는 섬뜩한 사람이었습니다.
죄는 어느 사이에 깊이깊이 사람들을 잠식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정도는 죄도 아닌 지경까지 금새 다다른 죄의 번식과 성장을 보게 됩니다.
요즘의 세상에서 부모가 아이를 쉽게 죽이는 뉴스를 자주 접하는 것 처럼 죄는 점점 무섭게 대담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잠식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가인 처럼 예물을 드릴 때, 혹은 예배를 드릴 때 내 마음 속에서 최상의 것으로 준비해서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무심결에, 바빠서, 혹은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구겨진 지폐를 성금함에 넣는 무심함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자주 있는 일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에 가인처럼 하나님께서 나의 예물을 받지 않으신다면 가차없이 하나님께 따지고 덤빌 가인의 모습은 제 속에도 있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창세기 4 장 1 절 ~ 26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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