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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7일 수요일 에스겔 4 장 1 절 ~ 17 절 <예루살렘 포위> 본문
<묵상>
"너 인자야 토판을 가져다가 그것을 네 앞에 놓고 한 성읍 곧 예루살렘을 그 위에 그리고 그 성읍을 에워싸되 그것을 향하여 사다리를 세우고 그것을 향하여 흙으로 언덕을 쌓고 그것을 향하여 진을 치고 그것을 향하여 공성퇴를 둘러 세우고 또 철판을 가져다가 나의 성을 사이에 두어 철벽을 삼고 성을 포위하는 것처럼 에워싸라 이것이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리라"(겔 4:1-3)
이스라엘이 포위를 당하고 망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음을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모형을 만들어 보여주십니다.
도망갈 수도 없게 포위되면 양식이 떨어져서 결국은 죽게 될 것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말로 선포하라고 하셨다가 행위로 보여주라고 명하시는 하나님은 어떻게든 머지않은 장래에 닥칠 난국을 깨닫게 하시려고 하십니다.
하지만 불과 몇 초 뒤에 생길일도 상상하지 못하는 우리 인간은 우매하기 그지없습니다.
심판을 알리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네 가지 상징적인 행위를 하도록 에스겔을 사용하십니다.
백성들의 관심을 집중시켜서 그 의미를 깨우치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렇게 특별한 방법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실 수 없다고 생각하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에스겔은 순종합니다.
옆으로 누워 몇 개월씩 지내고, 인분에 떡을 구워먹고, 줄로 몸을 동여매고, 머리를 삭발하고 등등 선지자로서 더럽고 최악의 행동을 해야하는 에스겔은 아마도 이러한 일들을 하기가 아주 싫었을 것입니다.
다니엘과 베드로도 하나님께서 부정한 것을 먹으라고 말씀하실 때 거리끼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요구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선지자들은 자신의 재산이나, 가족이나, 행복을 포기하기까지 하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제가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인도하시거나 이해할 수 없는 곳으로 가게 하시거나 에스겔 처럼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도 싫은 일을 체험해야 한다면 얼마나 어려울까를 생각해봅니다.
그럴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존재를 뛰어넘어 계신 전지전능하신 분임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우리는 그저 눈에 보이는 한계 내에서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꿩을 사육하는 사람이 꿩에게 작은 챙이 달린 모자를 꿩 머리에 씌워놓았더니 꿩을 방목해도 절대 날아가지 않고 방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꿩은 챙으로 눈 위를 가리면 절대로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고 땅으로 걸어다닌답니다.
인간인 우리도 늘 생각할 수 있는 범주안에서 빙빙 돌며 살다가 죽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네 입을 크게 열라 네 입을 채우리라"말씀하시는데도 절대 크게 벌리기가 어렵습니다.
또 성경에는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니라"하는데도 우리는 영적인 것을 크게 욕심 부리지 않으며 삽니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우리의 사고의 범주 안에서 쳇바퀴 돌 듯 살다가 죽는 가련한 인생인 것 같습니다.
오늘 저는 제 생각의 한계를 뛰어넘는, 제가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꿈을 이룰 수 있는 생각과 노력과 인내를 주십사 간구하는 하루가 되기를 빕니다.
<에스겔 4 장 1 절 ~ 17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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