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Now On...
2019년 4월 15일 월요일 마태복음 26 장 57절 ~ 75 절 <예수님의 시인, 베드로의 부인> 본문
베드로의 부인 / 칼 하인리히 블로흐 Carl Heinrich Bloch(1834~1890)
<묵상>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마 26 : 58)
예수님이 잡혀가는 일이 발생했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하였으므로 어찌하지도 못하고 예수님이 잡혀가는 모습을 애가 타는 모습으로 바라보며 따라가기는 가는데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가는 모습입니다.
자신에게 어떤 해라도 미칠까봐 걱정이 되어서 예수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서 군중 속에 숨어서 따라가는 베드로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인간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죽음까지도 마다않고 자신의 연인을 따라가는 일들이 종종 있어서 소설에 나오기도 하고 영화에 나오기도 하지요. 하지만 베드로는 자신있게 예수님을 따라가지는 못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덜 사랑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움도 없을 정도로 사랑한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는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은 그의 두려움이 예수님을 부인하게끔 그의 입술이 스스로 저주를 부르고나서 통곡을 하게 되는 베드로에게 인간적으로 동감을 하게 됩니다.
그토록 예수님과 가까이 따라다니던 베드로는 왜 그렇게 멀찌감치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졌을까요?
예수님을 잡으러 군인들이 왔을때는 칼로 군인들을 위협하며 반항하던 베드로가 막상 예수님이 잡혀가자 갑자기 겁을 먹은 모습으로 멀찍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모습이 비겁하고, 초라하고, 불쌍하고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에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바람에 그 후에 예수님을 뵙고 나서는 정말로 뜨거운 예수의 사람이 되어버린 베드로를 크게 선교에 사용하시려고 남겨두신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실 때 양 옆에 같이 매달린 사람은 어쩌면 그토록 따르던 제자들이었다면 마지막 가시는 길이 덜 고통스럽고, 덜 외로운 예수님의 모습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베드로는 그렇게 예수님을 사랑했으면서도 예수님처럼 목숨을 내어주는 만큼의 사랑은 결코 아니었기에 예수님의 사랑은 진실로 생명을 주는 사랑이었지만 베드로의 사랑은 '멀찍이' 바라보는 정도의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서도 목숨을 내어주기가 쉽지 않은데 하물며 인류전체의 죄를 대속하시겠다는 예수님의 사랑에는 아무도 갚을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에 토를 달 수도 없고, 그저 이까짓 배신을 쉽게 하는 베드로같은 우리들을 위해 모땀시 그 귀한 사랑을 주시는지 감사와 찬양을 황송함으로 아무리 올려드려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26 장 57절 ~ 75 절>
57. 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58.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59.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 60. 거짓 증인이 많이 왔으나 얻지 못하더니 후에 두 사람이 와서 |
|
'매일성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년 4월 17일 수요일 마태복음 27 장 11 절 ~ 26 절 <빌라도의 법정> (0) | 2019.04.17 |
---|---|
2019년 4월 16일 화요일 마태복음 27 장 1 절 ~ 10 절 <가룟 유다의 죽음> (0) | 2019.04.16 |
2019년 4월 13일 토요일 마태복음 26 장 17 절 ~ 35 절 <마지막 만찬> (0) | 2019.04.13 |
2019년 4월 12일 금요일 마태복음 26 장 1 절 ~ 16 절 <음모, 헌신, 배신> (0) | 2019.04.12 |
2019년 4월 11일 목요일 마태복음 25 장 31 절 ~ 46 절 <심판의 기준> (0) | 2019.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