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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7일 수요일 마태복음 27 장 11 절 ~ 26 절 <빌라도의 법정> 본문
손을 씻는 빌라도와 예수님 / 1308-11년 / 두오모
<묵상>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마 27:23)
빌라도라는 인물을 살펴보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의 빌라도 총독은 사도신경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그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재판해 놓고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어봄으로써 메시아로서의 예수님보다 정치적인 모반의 우두머리임을 강조함으로써 유대지도자들과 종교지도자들에게 로마정부의 전복을 시도한 혁명가였다는 혐의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유대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정치적인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에 군중들의 기대감은 분노로 바뀌면서 차라리 '바라바'라는 민족주의적 지도자를 살려주는 것이 유대인들을 위해서는 미래에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한 것이 얄팍한 군중들의 심리였던 것 같습니다.
빌라도는 이러한 군중심리의 변화를 목격하면서 골치아픈 일에 끼어들기 싫다는 이유로 손을 씻음으로써 개입하지 않는 것 처럼 위선을 부립니다.
만약 빌라도가 자기가 본 그대로 판결을 내렸다면 예수님은 죽임을 당할만한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했어야 옳은 것인데 군중들의 분노섞인 음성에 민란이 날까 두려워한 빌라도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군중을 두려워한 빌라도의 나약한 모습이지만 예수님을 고문하도록 명하고 결국 죽도록 한 것은 빌라도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정말로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처형 당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면 그는 권위를 내세워서라도 '죽일 이유가 없다'고 판결을 내려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지켜보는 백성들은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마 27:25)라는 말씀 처럼 그대로 민족 전체가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가담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피는 과연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게 돌아가서 1948년이 될 때까지 예루살렘 멸망을 겪고, 그 후로 나라가 회복되기까지의 방황과 고난, 나치 치하에서 대학살 같은 처참한 죗값을 치뤘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입술로 말한 저주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오늘 본문에서 똑똑히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소란 속에서도 아무런 말 한 마디가 없으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작정을 하신 예수님은 급변하는 군중들의 심리를 가만히 지켜 보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설교를 듣고, 성경을 풀이할 때는 감동도 받았던 그들인데 누구 하나 나서서 죄가 없다 말 한 마디 못하는 군중들의 심리는 그 죄를 대속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더욱더 성취시키는 방향으로 상황은 흘러간 것입니다.
이렇게 고통을 당하신 예수님은 바로 이렇게 죄가 많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하여 참고, 인내하고, 말 없이 십자가를 받아 들이셔서 죽기까지 참아내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7 장 11 절 ~ 26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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