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고 무섭게 다그치셨지만 1년 6개월을 기다리셨습니다.
회개의 시간을 주셨지만 끝내 심판의 시간이 다가오자 예루살렘은 포위되고 함락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녹슨 가마를 올려놓고 고기를 끓이라고 명하십니다.
녹슨 가마는 예루살렘을 의미합니다.
고기 덩어리들은 예루살렘 주민들을 가리키는데 그것을 장작을 많이 넣고 끓이는 것은 포위 당하고 처참하게 죽어가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다 끓이고 난 후에 고기들을 끄집어내는 것은 이스라엘 주민들이 사방으로 흩어질 것을 예표합니다.
그 후로도 가마솥의 녹과 찌꺼기가 녹을때까지 끓이는 것은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에도 오랫동안 심판이 계속될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에스겔의 아내를 죽게 하신 하나님은 애도하지 못하게 명하십니다.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성소는 너희 세력의 영광이요 너희 눈의 기쁨이요 너희 마음에 아낌이 되거니와 내가 더럽힐 것이며 너희의 버려 둔 자녀를 칼에 엎드러지게 할지라 "(겔 24:21)
눈의 기쁨이요 마음에 아낌이 되는 사랑하는 아내를 죽게하고도 울지도 못하는 고통과 아픔을 겪는 에스겔을 통하여 자신들의 처지를 바라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자식이나 배우자의 죽음 앞에서 울지도 못하고 장사 지내지도 못하는 슬픔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동물도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 앞에 애도를 표하는데 인간인 우리가 그것을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엄청난 분노 앞에서 고통을 몸소체험하는 것입니다.
그 밖에 여러나라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을 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만드시고 우리에 대한 목적을 가지셨는데 그러한 목적을 이해하는지 아니면 그와 반대되는 욕심과 불경건함과 도덕적인 문란함 속에서 살았는지가 그들이 받을 진노의 댓가가 되지 않았을까요?
비록 하나님은 믿지 않는 나라들이라 할지라도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시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그 진노의 댓가로 심판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폭력과 우상숭배와 도덕적인 문란함 속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부귀와 영화가 끝나는데 대해 하나님을 비로소 인식할 것 같습니다.
이러할 때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하나님을 알고 , 성경을 알고 , 하나님을 믿었던 족속이 행하는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행위를 더더욱 심판을 하실 것 같습니다.
나의 자식이 가출을 해서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범죄를 저질렀다면 부모가 잘 가르치려고 행했던 여러 훈계와 교훈을 무시한 자식에 대해 더 많이 화가 나는 것과 똑같은 이치지요.
부모없이 자라난 아이들의 행위와 똑같은 행동으로 죄를 지은 자식이라면 마땅히 벌을 받아야 되지 않을까요?
오늘 만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봅니다.
그들에 대한 더 큰 진노를 표현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사랑하는 자식이기 때문에 그 분노를 어찌 다 표현하지 못하는 고통에 찬 분노를 느낍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성경을 안다는 것에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되새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