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묵상>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의 교육 지침서로 쓰일만큼 그리스도인들의 기본 교육서로 훌륭합니다.
오늘 만나에서는 주님의 일을 받았을 때 하겠다고 먼저 대답하고도 행하지 않은 첫째 아들과,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행한 둘째 아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가장 많이 보이는 모습이 첫째 아들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혹은 사역에 대해 여러 계획을 세웠을 때 우리는 망설이게 됩니다.
여러 분주한 일상사에 치우쳐서 마음 속에 여러가지 핑계거리를 만듭니다.
주님의 일 보다는 세상의 일이 우선이 되어 모든 일을 계획합니다.
그러다보니 주일예배만 참석하면 그마저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붙들어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가는 길은 곳곳에 웅덩이가 파여져 있어서 우리의 영적인 상태는 점점 황폐해져 가기 마련입니다.
주님께 붙들리려면 모든 예배를 사모하고 성경말씀도 하루에 한 번 씩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여야 우리의 심령이 세상 것들에 침범을 당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영부영하다보면 우리는 세상사람과 똑같이 변하고 구원의 확신마저도 빼앗기게 됩니다.
둘째 아들은 포도원에 가서 일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결국은 주님의 일을 행합니다.
표리부동한 것 보다는 차라리 둘째를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봅니다.
모세의 자리를 차지한 유대인들은 회당에 설치되어 있던 돌좌석에서 권위를 나타내고 뽐내면서 천국에 들어갈 자리라도 확보한 양 의기양양해서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유대인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행위로 하나님을 따르지 않으면 그 사람을 무엇으로 그리스도인이라 구별하겠습니까.
요즘은 교회를 나가지 않고 인터넷으로 예배를 보고, 이 교회 저 교회 맛을 보면서 다니는 사람도 많습니다.
교회의 우두머리인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순복하지 않고 자신의 입맛대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어찌 그리스도의 도를 행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지식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넘어서서 판단하고, 정죄하는 동안 자신의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서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도신경에도 나와 있는 것 처럼 성령을 믿으며, 교회와 성도의 교제 속에서 축복을 받는 것을 믿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마 24:42)
깨어 있으라!
잠들기 전까지 기도로 영을 채우면 영이 깨어있는 상태가 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주일예배로는 도저히 깨어 있는 상태가 되지 못합니다.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철야, 주일예배와 자신이 틈틈이 드리는 기도로 깨어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 24:44)
마지막으로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십니다.
등불을 꺼트리지 않고 신랑을 맞이하기 위하여 준비한 처녀들 처럼, 새벽에 일찍 가야할 곳이 있어서 목욕도 미리하고 옷도 대충 입은채로 자다가 가야할 사람처럼, 가방을 등에 맨 채 내려야할 역을 놓칠까봐 깊이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자는 것 처럼 준비가 되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집에 손님이 내일이나 모레 사이에 온다고 하면 미리 청소하고 음식까지 준비하고 정확한 도착시간을 모른다는 사실에 짜증을 내면서 우리는 기다립니다.
그런 것 처럼 언제인지 모르지만 곧 들이닥칠 종말을 위해서 늘 준비되어 있고 싶습니다.
떠나려는 준비가 된 사람은 지나치게 좋은 재물과 부동산이 오히려 걸림돌이 됩니다.
지나치게 영악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투자를 하면 떠날 준비가 되지를 않습니다.
새털처럼 가볍게 떠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