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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6일 주일 요한복음 11 : 17-27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본문

매일성경

2022년 2월 6일 주일 요한복음 11 : 17-27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오렌지 향기 2022. 2. 6. 06:00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 / 1461년 / Nicolas Froment

<묵상>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5-27)

나사로가 죽은 지 3일 후에 베다니에 도착하신 예수님은 아마도 일부러 시간을 지체하신 것 같습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더운 날씨는 죽은 지 3일이면 부패가 진행이 되는데 이미 장례도 치른 후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기대와 소망이 끝난 허망한 상태에서 부활을 가져다 주심으로써 살아계신 생명의 근원이심을 보여주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와 마르다 중에서 마르다는 예수님이 이곳에 계셨다면 자기 오빠 나사로가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 확신에 찬 말을 합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오신 분을 믿었기에 할 수 있었던 말이었고 마르다의 믿음도 대단한 믿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미 죽어서 관에 묻힌 오빠 나사로를 살려내실 정도로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미처 몰랐습니다.

마르다가 한 말 중에 마음에 걸리는 말은 '그때 예수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텐데...'입니다.

우리가 곧잘 하는 말 중 '그때 어떠어떠했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텐데....' 미련이 많은 한탄과 후회와 아쉬움이 담겨 있는 이 말은 예수님의 능력을 모르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부활은 죽음에서 살아난 생명이고 삶이기 때문에 견고한 관념이나 종교의 한 형태가 아닙니다.

바로 현실로 눈 앞에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은 역사상 아무 곳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생명과 부활을 관장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사람을 직접 살렸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죽음과 질병 앞에서 비관하고, 두려움에 떠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주신 예수님의 능력은 이토록 놀랍습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지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영생을 얻게 됩니다.

< 요한복음 11 : 17 - 27 >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베다니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마르다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마르다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