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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31일 토요일 히브리서 9장 11절 ~ 22절 <피로 세운 언약> | 본문
<묵상>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 : 14)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굳이 피를 흘리며 고통 받는 죽음을 맞이하셔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다면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역할을 묵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구약시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사는 참으로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특히 속죄제는 죄를 짓고, 무수히 반복해서 죽이거나 거짓말하거나 등등의 많은 죄를 범하는 백성들을 위해서 반드시 드려야만 하는 제사였는데 사무엘처럼 제사장으로 예수님께서 오시리라고 성경에서는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면서 고통스럽게 제단에 올린 짐승들 처럼 죽어갔을 때 그 피를 보고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명하시려던 하나님은 그 뜻을 돌이키신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과의 관계로 들어갈 수 없도록 예수님의 중보자 역할은 중요했습니다.
이 땅에서 죄를 짓지 않고 사신 예수님은 불쌍한 백성들의 병을 고쳐주고, 목숨도 살려주고, 배고플땐 빵도 먹여주시다가 십자가의 죽음을 피하지 않으셨으니 하나님은 예수님 한 분의 죽음으로 모든 인류의 죄 많음을 눈 감아 주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죽은 다음에 천국으로 나아가는 백성이 될 수 있는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로운 신분을 얻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 저에게 '용서하라'고 속삭이시고, 용서하도록 이끌어주신 자상하신 나의 주님이십니다.
형제를 용서하지 못할만큼 미워하는지 조차 깨닫지 못하던 저에게는 막상 용서할 때는 용서의 '이응'도 발음이 되지 않을 정도로 강퍅한 죄인이었습니다.
저보다 저를 더 잘 아시고, 저의 어떤 죄가 저를 구원하지 못할지를 잘 아셔서 저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직접 말씀을 해주신 주님을 저는 믿는다고만 고백하면 되는 상황에 처한 저에게는 그저 감사와 눈물만 올려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사장적 역할을 묵상하는 것은 다분히 신학적인 차원에서의 개념이라 다다가기 어렵지만 저에게 "네가 반드시 용서해야만 너는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목소리를 들려주신 주님을 기억하는 저에게는 친근하고 다정한 아버지 그 자체이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11절 ~ 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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