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묵상>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눅 17:2)
재능이 많거나 뛰어나서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 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 무엇을 넣으셨는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유용한 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무엇을 추구하시는지, 무슨 뜻을 가지셨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어떠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손상시키면 안됩니다.
언제나 우리가 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리나"(눅 17:21)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눅 17:33)
예수님은 어디를 가시든지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분명하십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읽으면 예수님이 어떻게 행하셨는지 알 수 있으므로 우리는 그렇게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아주 비참하게 죽게 부르셨습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십자가의 죽음은 비참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는 어떨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의 마음이 상하는 곳으로 인도하신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제 경우는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부르신 것 처럼 저에게도 그 어떤 부르심의 댓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에 내 고집을 포기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다가오심은 참으로 제게는 당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내가 나의 자존심의 죽음을 인정했을 때, 내가 아무 것도 아닌 먼지와 같은 존재임을 실감했을 때 하나님은 나의 속으로 들어오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