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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내셔널갤러리2 ....펌입니다

오렌지 향기 2007. 12. 13. 01:04

 VELAZQUEZ, Diego
The Rokeby Venus
<Full title: The Toilet of Venus ('The Rokeby Venus')>
1647-51
122.5 x 177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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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평론가의 주의를 끄는 점이 있다. 그냥 현실의 여자처럼 그려진 비너스 - 허리가 길어서 혹시 척추뼈가 하나 더 있는 여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받고 있는 -와는 어울리지 않게 현실의 아이같이 생긴 큐피드가 거울을 비춰주고 있는 이치에 맞지 않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렇게 큐피드가 거울을 들고 비너스의 화장을 돕고 있는 그림은 부셰의 그림, 밀레의 그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비너스는 육체적 아름다움 이라는 추상명사이며 육체적 사랑의 의인화인 큐피드, 허상을 뜻하는 거울로만 이 그림을 판단한다면 '육체적 아름다움, 육체적 사랑 이런 것들은 모두 허상이다'라는 뜻이 된다. 이런 그림들은 곧 '정신적인 사랑, 신에 대한 사랑이 값지고 영원한 것'임을 역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거울을 들고 있는 큐피드는 허상, 헛된 육체적 사랑을 뜻하지만 거울만을 나타낸 경우에는 때로 '자기의 발견'을 상징하여 '현명' 또는 '시각'의 지물이 되기도 한다.

 

 

HOLBEIN the Younger, Hans
The Ambassadors
<Full title: 'Jean de Dinteville and Georges de Selve ('The Ambassadors')'>
1533
207 x 209.5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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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대사>라는 이 그림의 주인공은 서로 대립되는 개념의 직업과 역할을 맡고 있다. 두 살차이의 이들은 서로 아는 사이로서 한 사람은 정치적 임무를 띤 대사이고 다른 사람은 종교적 임무를 띤 대사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임무를 띠고 영국행 배를 기다린던 중에 네덜란드에서 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정치와 종교, 세상과 천상. 이 대립되는 가치 사이에서 둘은 번민하고 있으며 이들의 파견의 성과는 결국 둘 중 하나로 결정될 일이다.

줄이 풀려 버린 악기는 땅을 나타내는 아래쪽에, 하늘을 나타내는 천문 관측기구와 구별하여 그려 놓았다. 천상과 지상으로 이분화되어 그려진 것은 기독교의 이원적 세계관이 서양인들의 사고에 그대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착잡한 심정의 영국행이니 그 아래 죽음의 그림자가 왜곡된 해골상으로 짙게 드려져 있고 화면의 왼쪽 뒤에 커튼 틈으로 예수님의 구원이 빠끔히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을 수록한 우리나라 화집에는 대개 이 십자가 부분이 잘려나간채 인쇄되어 있다. 편집자가 이 내용을 몰랐기 때문에 무시해 버린 결과라고 생각된다.

두개골은 서양 그림에 꽤 광범위하게 나온다. 그런데 해골이 기괴하게 보이도록, 또는 무엇인지 잘 몰라보게 하려고 이상하게 왜곡시켜 그린 것이 아니라 정확히 작도한, 매우 치밀하게 계산하여 그린 완벽하게 변형시킨 두개골 그림이다. 이런 식의 그림 그리기는 당시 여러 화가들에 의하여 다양하게 시도되었다. 이런 그림을 보노라면 서양의 화가들에 있어 그림은 도취의 대상이 아니라 탐구의 대상이었고 사색의 도장이었으며 그들만의 재능을 도구로 하는 유희의 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CLAUDE
Landscape with the Marriage of Isaac and Rebecca
1648
152.3 x 200.6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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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화는 르네상스 시대에도 이미 고유한 그림 양식이었는데 1600년경에 이르자 로마에서는 매우 특이한 풍경화가 등장하였다.

화가는 바깥에서 간단한 스케치를 마치고 아틀리에에 돌아와 이미 그려 놓았던 자연의 일부들을 모아 짜맞추었다. 그러한 풍경은 대개 낙원처럼 보여야 했다. 그 장면은 곧 이상적인 풍경이었다.

화가는 그러한 풍경화에 곧잘 성서나 신화에 등장하는 장면을 그려 넣었는데 물론 이 같은 장면들은 아주 작게 그렸고 주요 주제는 역시 풍경 그 자체였다.

프랑스의 클로드 갈레, 일명 로랭은 로마에 살면서 많은 풍경화를 그렸다. '이삭과 레베카의 결혼식'은 나무로 둘러싸인 호수가 있는 드넓은 풍경을 보여준다. 멀리 산이 있고 왼쪽으로는 과거 영광의 흔적인 폐허가 그려져 있다.

풍경화는 로마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많은 화가가 유럽 도처, 특히 프랑스와 네델란드에서 고유한 풍경화를 발전시켜 나갔다.

 

PIERO di Cosimo
The Fight between the Lapiths and the Centaurs
probably 1500-15
71 x 26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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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피타이족은 테살리아 지방의 강의 신 페네이오스의 자손들이다. 테살리아의 영웅 페이리토스가 자신의 결혼식 날 타살리아 지방의 다른 유력자들과 함께 켄타우로스들을 초대했는데 이것이 말썽의 발단이 되었다.

가뜩이나 성질이 포악하고 음탕한 켄타우로스들은 술을 마시자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취기가 돈 에우리토스라는 켄타우로스가 갑자기 신부 히포다메이아에게 달려들더니 머리채를 낚아채고 달아나려 했다. 이 행동에 자극을 받은 다른 켄타우로스들도 손님으로 온 여인들을 하나씩 꿰찼다.

잔치 자리는 일순간에 아수라장이 돼버렸다. 페이리토스의 절친한 친구이자 위대한 영웅인 테세우스가 가만히 앉아서 이 모습을 보고 있을 수 는 없었다.

테세우스는 번개같이 신부를 도로 빼앗았다. 이에 격분한 에우리토스가 테세우스에게 달려들었으나 테세우스가 옆에 있던 술잔을 던져 정통으로 맞추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르네상스기 이탈리아 화가인 피에로 디 코지모가 그린 이 그림은 인물들이 다소 우화적으로 표현돼 있기는 하나 격렬한 싸움판의 인상을 아주 생생히 전달해주는 작품이다. 오른쪽의 머리채가 잡히고 푸른 옷이 찢겨 맨몸이 드러난 여인이 신부 히포다메이아다. 품위고 체면이고 다 사라져버렸다.

화가는 전경의 죽어가는 사내 켄타우로스를 껴안고 슬퍼하는 여자 켄타우로스를 통해 싸움의 잔인함과 함께 진한 휴머니즘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바로 르네상스가 되살린 휴머니즘이다.

 

 

 

 

LASTMAN, Pieter
Juno discovering Jupiter with Io
1618
54.3 x 77.8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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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의 신 제우스가 얼마나 자기 중심적이고 무책임한 난봉꾼인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제우스는 강의신 이나코스의 딸 이오에게 반했다. 언제나 그랬듯 그는 처녀에게 다가가 자기와 사랑을 나누자고 졸랐다. 두려움에 싸인 이오는 뒤도 안돌아보고 달아났다. 그러나 제우스는 술수를 부려 이오에게 어둠의 장막을 내렸고 앞을 못 보게 된 이오는 제우스에게 붙잡혔다.

제우스는 이오와 사랑을 나누기 전에 검은 구름을 피워올렸다. 헤라의 눈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그림 왼편으로 이 구름을 수상히 여긴 헤라 여신이 자신의 신조 공작새가 끄는 수레를 타고 내려온다. 그 바람에 땅에서 올라오던 구림이 헤라의 좌우로 갈라지고 있다.

오른편 아랫부분에서 앞만 살짝 가린 채 놀란 표정을 짓는 벌거숭이가 바로 제우스 신이다. 제우스 옆에는 암소가 한마리 있고 사랑의 신 에로스와 붉은 가면을 쓴 '사기'가 천으로 황급히 암소를 가리려 한다.

 

 

 

TITIAN
The Death of Actaeon
about 1565-76
178.4 x 198.1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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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과 님프 키레네의 아들 아리스타이오스와 카드모스의 딸인 아우토노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반인반마의 현자 케이론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사냥을 잘하였다. 이아손과 헤라클레스 등과 함께 아르고호를 타고 콜키스로 가서 황금 양모를 찾는 모험에도 참여하였다.

하루는 사냥개 50마리를 이끌고 키타이론의 산속에서 사냥을 하다가 순결의 상징인 처녀신 아르테미스가 목욕하는 광경을 엿보게 되었다. 순결에 상처를 입은 아르테미스는 화가 나 사슴으로 변하게 하였는데, 결국 자신의 사냥개에게 쫓기다가 물려 죽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자신의 사냥 솜씨가 사냥의 신이기도 한 아르테미스보다 낫다고 뽐내다가 노여움을 사서 죽었다고도 하고, 여신을 아내로 삼으려고 넘보다가 죽었다고도 한다.

티치아노는 그 순간을 특유의 빠른 호흡으로 거칠게 묘사했다. 아르테미스 여신은 사냥의 여신답게 활을 쏘고 있고 사슴으로 변해가는 악타이온은 달려드는 개들한테 밀려 넘어지고 있다. 

 

 

 TIEPOLO, Giovanni Domenico
The Procession of the Trojan Horse into Troy
about 1760
38.8 x 66.7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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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를 티에폴로가 그렸다. 힘겹게 목마를 앞뒤로 끌고 미는 사람들은 앞으로 닥칠 자신들의 운명을 알고 있을지...

 

 

 CORREGGIO
The School of Love
Full title: 'Venus with Mercury and Cupid ('The School of Love')'
about 1525
155.6 x 91.4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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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의 신들 특히 에로스의 교육은 고전 연구의 부흥을 상징하는 인기 주제였다.

서양 미술사에서 에로스가 적극적으로 광범위하게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헬레니즘 시기부터이다. 에로스는 올림포스 12신과는 달리 하위신격이었으므로 그 전에는 그리 중요한 표현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사랑과 예술 같은 인간의 감성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대상이 더욱 크게 조명받기 시작하면서 에로스도 소년상에서 아동상으로 바뀌었다.

에로스는 영원한 조연이다. 하지만 주연보다 더 빛나는 조연으로써 에로스는 남녀의 머리 위를 벌처럼 붕붕 배회하거나 주변에서 노니는 역할을 했다.

 

 

 BOUCHER
Pan and Syrinx
1759
32.4 x 41.9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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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사에서 에로스가 적극적으로 광범위하게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헬레니즘 시기부터이다. 에로스는 올림포스 12신과는 달리 하위신격이었으므로 그 전에는 그리 중요한 표현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사랑과 예술 같은 인간의 감성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대상이 더욱 크게 조명받기 시작하면서 에로스도 소년상에서 아동상으로 바뀌었다.

에로스는 영원한 조연이다. 하지만 주연보다 더 빛나는 조연으로써 에로스c 남녀의 머리 위를 벌처럼 붕붕 배회하거나 주변에서 노니는 역할을 했다.

시링크스는 아르카디아의 산에 살면서 순결을 상징하는 처녀신 아르테미스를 본받았다고 한다.

어느 날 목신 판이 쫓아오자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라돈강까지 달아났는데, 강물에 막혀 더 이상 도망치지 못하고 판에게 잡히려는 순간, 강의 님프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바꿔 달라고 간청하여 갈대로 변신하였다.

시링크스를 놓치고 아쉬워하던 판은 갈대가 바람과 어울려 내는 소리에 반하여, 몇 개의 갈대줄기를 밀랍으로 이어 붙여 피리를 만들었다. 이것이 판파이프의 유래가 되었으며, 그래서 판파이프를 시링크스라고도 한다.

 Robert CAMPIN
A Man
about 1435
40.7 x 28.1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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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랄만큼 '현대적'이며 오늘날의 인물과 다를바 없는 그림이다.

선명한 명암 - 코 아래의 그림자를 보라 - 은 강한 빛을 비추었다는 것을 말해주며 터번의 주름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인물의 작은 이중턱도 명확하고 입과 눈도 잘 어울려 있어 강렬한 인상을 전해준다.

이 작품은 색의 조합을 용이하게 해주는 유채 템페라를 사용한 초기작에 속한다. 아마도 이 그림은 광학을 이용하여 만든 작품일 것이라 추측된다.
 

 

 

 Paulo UCCELLO
The Battle of San Romano
about 1438-40
181.6 x 32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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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5∼1440년에 그려진 3편 연작의 목재에 템페라화이다. 이 그림은 그 중 제1막 《니콜로 다 톨렌티노가 피렌체군을 이끌다 Niccolo da Tolentino Leads the Florentine Forces》이다.

산로마노 전투는 십자군 원정이 계속되던 13세기경에 상업권을 두고 발발한 피렌체와 시에나의 전쟁으로 1432년 피렌체가 승리하였다.

메디치(Medici)의 코시모는 산로마노 전투에서 피렌체군의 승리를 기념하는 그림을 우첼로에게 의뢰하였다. 우첼로는 철저히 코시모의 취미와 취향에 따라 전쟁 그림에는 어울리지 않는 장미 정원이나 토끼사냥 장면을 삽입하였다. 또 피렌체 직물산업의 특산품이며 피렌체 시민들의 자부심의 상징인 모자를 토렌티노와 코티뇰라의 머리 위에 그려 넣었다. 3점의 그림은 메디치가의 궁전을 장식했으나 뒤에 각기 파리와 런던으로 옮겨져 보관되었다.

역동적인 흰 말를 탄 지휘관 토렌티노가 중앙에서 피렌체군을 이끌고 시에나군을 공격한다. 뒤에는 솔로몬의 매듭을 상징하는 문장의 깃발이 펄럭인다. 전쟁터와 언덕 사이에는 꼼꼼하게 그려진 장미 울타리가 있다. 멀리 언덕 위에는 작지만 선명하게 표현된 병사들이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우첼로는 피렌체 출신으로 조각가 로렌초 기베르티(Lorenzo Ghiberti)의 제자였다. 우첼로는 당시 물체의 모양과 위치를 선에 의해 투시적으로 표현하는 '선원근법(1점 소실 원근법)'의 기하학적 연구에 몰두하였다.

기하학적 원근법을 적극적으로 적용한 우첼로의 대표작이다. 그림 속의 토렌티노은 창 대신 지휘봉을 들고, 투구 대신 모자를 쓰고 있다. 이 모자는 우첼로의 원근법을 적용한 모자이다. 멀리 언덕 위의 물체는 원근법을 사용하여 작게 그렸으나, 또 원근법과는 어긋나게 병사와 말을 지나치게 선명하게 그렸다. 바닥에는 부러진 창을 인위적으로 늘어놓았으며 말과 바닥의 색깔, 장미꽃 울타리, 토끼사냥 등 사실적이지 못하고 장식적인 요소들이 삽입되었다. 
 

 

 

No.15 in D flat major : Sostenuto 피아노, 마르타 아르헤리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