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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Now On...
김광섭 시 모음 본문
* 나의 초상 - 김광섭
나를 금매지라 부르던
할머니가 나의 초롱을 만들어
불당(佛堂)에 달고 가셨다
꿈에 그 초롱이 와서
들여다 보니
무지개가 나려와
촛불에 타서 재가 소보록했다
* 고혼(孤魂) - 김광섭
콧구멍을 막고
병풍 뒤에
하얀 석고처럼 누웠다
외롭다 울던 소리
다 버리고
기슭을 여이는
배를 탔음인가
때의 집에 살다가
`구정물'을 토하고
먼저 가는 사람아
길손들이 모여
고인 눈물을
마음에 담아
찬 가슴을 덥히라
아 그대 창에 해가 떴다
새벽에 감은 눈이니
다시 한 번 보고 가렴
누군지 몰라도 자연아
고이 받아 섬기고
신의 밝음을 얻어
영생을 보게 하라
* 고향 - 김광섭
타향 삼십 년
실향 이십 년
오십 년의 밀회와 구름다리
하늘 높이에 그 저편
땅 깊이 꺼지는 곳
봄바람이
꽃 핀 언덕을
들고 갔다가
그냥 돌아서니
참새들이 어리둥절해서
헷갈려 숲 속에 숨어 버렸다
동산대(東山臺)를 지키는 늙은 돌배나무는
성황당에나 선 듯 의젓하게
싱싱한 바다 냄새를 풍기며
늦다고 욕지거리하는
애들의 콧등에서
땀방울을 식혀 준다
바다에는 낯선 바위들이 서서
고기 새끼처럼 옆에 붙어 헴치던
나를 보고 놀라서
육지에 기어오르다가
지친 거북이처럼 육중하게 둥둥 떠 있다
이런 고향이야 가슴과 손바닥인데
빼앗아서 무엇에다 쓰나
차라리 푸줏간에서
쇠고기나 한두 근 훔쳐다
불고기나 맛있게 해 먹을 일이지
* 겨울날 - 김광섭
마당에서 봄과 여름에 정든 얼굴들이
하나하나 사라져 갔다
그렇게 명성이 높던 오동잎도 다 떨어지고
저무는 가을 하늘에 인가(人家)의 정서를 품던
굴뚝 보얀 연기도
찬바람에 그만 무색해졌다
그런 늦가을에 김장 걱정을 하면서 집을 팔게 되어
다가오는 겨울이 더 외롭고 무서웠다
이삿짐을 따라 비탈길을 총총히 걸어
두만강 건너는 이사꾼처럼 회색 하늘 속으로
들어가 식솔들이 저녁상에 둘러 앉으니
어머님 한 분만 오시잖아서 별안간 앞니가
무너진 듯 허전해서 눈 둘 곳이 없었다
낯선 사람들이 축대에 검정 포장을 치고
초롱을 달고 가던 이튿날 목 없는 아침이
달겨들어 영원한 이별인데
말 한 마디 못하고 갈라진 어머니시다!
가신 뒤에 보니 세월 속에 묻혀 있는 형제들 공동의 부엌까지
무너져 낙엽들이 모일 데가 없어졌다
사람이 사는 것이 남의 피부를 안고 지내는 것이니
찬바람이 항상 인간과 더불어 있어서
사람이 과일 하나만큼 익기도 어려워
겨울 바람에 휘몰리는 낙엽들이 더 많아진다
고난의 잔에 얼음을 녹이며 찾는 것은
그 슬픔이 아니요 겨울 하늘에 푸른빛을 띤 봄이다
그 봄을 바라고 겨울 안에서 뱅뱅 돌며
자리를 끌고 한 치 한 치 태양의 둘레를
지구와 같이 굴러가면서
눈과 얼음에 덮인 대지(大地)의 하루를 넘어서는 해 질 무렵
천장에서 왕거미가 내리고
구석에서 귀또리가 어정어정 기어 나온다
어느 날 목 없는 아침이 또 왈칵 달려들면
이런 친구들에게 눈짓 한 번 못하고
친구들의 손 한 번 바로 잡지도 못하고 가리라
* 마음 - 김광섭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리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뜨고
숲은 말없이 물결을 재우느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 시인 - 김광섭
꽃은 피는 대로 보고
사랑은 주신 대로 부르다가
세상에 가득한 물건조차
한 아름 팍 안아보지 못해서
전신을 다 담아도
한 편에 2천원 아니면 3천원
가치와 값이 다르건만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천직(天職).
늙어서까지 아껴서
어릿궂은 눈물의 사랑을 노래하는
젊음에서 늙음까지 장거리의 고독!
컬컬하면 술 한 잔 더 마시고
터덜터덜 가는 사람.
신이 안 나면 보는 척도 안 하다가
쌀알만한 빛이라도 영원처럼 품고
나무와 같이 서면 나무가 되고
돌과 같이 앉으면 돌이 되고
흐르는 냇물에 흘러서
자국은 있는데
타는 놀에 가고 없다.
* 비 갠 여름 아침 - 김광섭
비가 갠 날
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내려와서
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녹음의 종이가 되어
금붕어가 시를 쓴다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리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뜨고
숲은 말없이 물결을 재우느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 시인 - 김광섭
꽃은 피는 대로 보고
사랑은 주신 대로 부르다가
세상에 가득한 물건조차
한 아름 팍 안아보지 못해서
전신을 다 담아도
한 편에 2천원 아니면 3천원
가치와 값이 다르건만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천직(天職).
늙어서까지 아껴서
어릿궂은 눈물의 사랑을 노래하는
젊음에서 늙음까지 장거리의 고독!
컬컬하면 술 한 잔 더 마시고
터덜터덜 가는 사람.
신이 안 나면 보는 척도 안 하다가
쌀알만한 빛이라도 영원처럼 품고
나무와 같이 서면 나무가 되고
돌과 같이 앉으면 돌이 되고
흐르는 냇물에 흘러서
자국은 있는데
타는 놀에 가고 없다.
* 비 갠 여름 아침 - 김광섭
비가 갠 날
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내려와서
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녹음의 종이가 되어
금붕어가 시를 쓴다
* 거리(距離) - 김광섭
나는 여기 벽이다
너는 거기 꽃이다
너와의 사이에
얼음 고개가 생겼다
아지랑이 꿈꾸면
고개는 사라진다
기다리면 먼 봄
꽃이 그리워
꽃집에 갔더니
꽃이 따라와서 상 위에 앉았다
봄도 같이 따라왔다
거리란 없는 것이다
있다 해도 봄이면 풀려서 없어진다
가거나 오거나
거리는 기다림이다
* 가을 - 김광섭
여름 하늘이 밀리면서 훤해지는
가을 높은 하늘에서
흰 빛깔이 내리니
젊음과 꿈의 푸른빛이
멀리 건너편으로 날린다
천지 허전하여
귀뚜라미 마루 밑으로 기어들고
가뭄에 시달린 가마귀들 빈 밭에 모여서 운다
서풍 찬 바람에 나무 잎새들이 힘없이 진다
장미 꽃잎이 우시시 지는 소리에 가슴이 울린다
피는 꽃보다 지는 꽃을 따라가는 것이 더 많다
갈대와 같이 조용히 생각하는 철
돌도 생각에 잠든 빛
산이 익어서
산마다 단풍이 들며 단풍이 빨갛게 타서
풀지 못한 염원의 제석(祭石) 위에
피를 흘리며 딩군다
기러기가 갈갈 울며 고향 하늘을 향해 간다
따라 못 가는 서러움
꽃보다 짙은 단풍의 강토
싸늘한 바람과 가냘픈 햇빛에
뉘우치며 혼자 생각는 가을
잊어버린 노래가
구름에 흘러가는
병든 향수의 길
서러운 세월이 가고서도 서러운 세월이 겹쳐서
인간 천년의 꿈이
한 마리 산새만도 못하다!
* 가는 길 - 김광섭
내 홀로 지킨 딴 하늘에서
받아들인 슬픔이라 새길까 하여
지나가는 불꽃을 잡건만
어둠이 따라서며 재가 떨어진다
바람에 날려 한 많은
이 한 줌 재마저 사라지면
외론 길에서 벗하던
한 줄기 눈물조차 돌아올 길 없으리
산에 가득히…… 들에 펴듯이……
꽃은 피는가…… 잎은 푸른가……
옛 꿈의 가지 가지에 달려
찬사를 기다려 듣고 지려는가
비인 듯 그 하늘 기울어진 곳을 가다가
그만 낯선 것에 부딪쳐
소리 없이 열리는 문으로
가는 것을 나도 모르게 나는 가고 있다
* 빈손 - 김광섭
-아파트 9층에서
하늘과 살기 위해
창에 가서
커어튼을 걷으면
오월의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든다
나는 인간성외(人間城外)에 산다
밥은 혼자 먹어도
일은 혼자 못한다
하늘끝으로 보이리
꿈이 서린 곳으로 보이리
바람이 이는 곳으로 보이리
해가 지는 곳으로 보이리
달 뜨는 곳으로 보이리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내일이 보이리
낮이 순간처럼 지나가다가
못잊어 돌아온 저녁
사랑과 그리움
더 있노라
옛얼굴 별을 찾아
어둠 속을 허우적이는
나는 빈 손
* 인생 - 김광섭
너무 크고 많은 것을 혼자 가지려고 하면
인생은 불행과 무자비한 칠십년 전쟁입니다.
이 세계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닙니다.
신은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
낮에는 해뜨고 밤에는 별이 총총한
더 없이 큰
이 우주를 그냥 보라고 내 주었습니다.
* 고독 - 김광섭
내
하나의 생존자로 태어나 여기 누워 있나니
한 간 무덤 그 너머는 무한한 기류의 파동도 있어
바다 깊은 그곳 어느 고요한 바위 아래
내
고단한 고기와도 같다.
맑은 성 아름다운 꿈은 멀고
그리운 세계의 단편은 아즐타.
오랜 세기의 지층만이 나를 이끌고 있다.
신경도 없는 밤
시계야 기이타.
너마저 자려무나.
나는 여기 벽이다
너는 거기 꽃이다
너와의 사이에
얼음 고개가 생겼다
아지랑이 꿈꾸면
고개는 사라진다
기다리면 먼 봄
꽃이 그리워
꽃집에 갔더니
꽃이 따라와서 상 위에 앉았다
봄도 같이 따라왔다
거리란 없는 것이다
있다 해도 봄이면 풀려서 없어진다
가거나 오거나
거리는 기다림이다
* 가을 - 김광섭
여름 하늘이 밀리면서 훤해지는
가을 높은 하늘에서
흰 빛깔이 내리니
젊음과 꿈의 푸른빛이
멀리 건너편으로 날린다
천지 허전하여
귀뚜라미 마루 밑으로 기어들고
가뭄에 시달린 가마귀들 빈 밭에 모여서 운다
서풍 찬 바람에 나무 잎새들이 힘없이 진다
장미 꽃잎이 우시시 지는 소리에 가슴이 울린다
피는 꽃보다 지는 꽃을 따라가는 것이 더 많다
갈대와 같이 조용히 생각하는 철
돌도 생각에 잠든 빛
산이 익어서
산마다 단풍이 들며 단풍이 빨갛게 타서
풀지 못한 염원의 제석(祭石) 위에
피를 흘리며 딩군다
기러기가 갈갈 울며 고향 하늘을 향해 간다
따라 못 가는 서러움
꽃보다 짙은 단풍의 강토
싸늘한 바람과 가냘픈 햇빛에
뉘우치며 혼자 생각는 가을
잊어버린 노래가
구름에 흘러가는
병든 향수의 길
서러운 세월이 가고서도 서러운 세월이 겹쳐서
인간 천년의 꿈이
한 마리 산새만도 못하다!
* 가는 길 - 김광섭
내 홀로 지킨 딴 하늘에서
받아들인 슬픔이라 새길까 하여
지나가는 불꽃을 잡건만
어둠이 따라서며 재가 떨어진다
바람에 날려 한 많은
이 한 줌 재마저 사라지면
외론 길에서 벗하던
한 줄기 눈물조차 돌아올 길 없으리
산에 가득히…… 들에 펴듯이……
꽃은 피는가…… 잎은 푸른가……
옛 꿈의 가지 가지에 달려
찬사를 기다려 듣고 지려는가
비인 듯 그 하늘 기울어진 곳을 가다가
그만 낯선 것에 부딪쳐
소리 없이 열리는 문으로
가는 것을 나도 모르게 나는 가고 있다
* 빈손 - 김광섭
-아파트 9층에서
하늘과 살기 위해
창에 가서
커어튼을 걷으면
오월의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든다
나는 인간성외(人間城外)에 산다
밥은 혼자 먹어도
일은 혼자 못한다
하늘끝으로 보이리
꿈이 서린 곳으로 보이리
바람이 이는 곳으로 보이리
해가 지는 곳으로 보이리
달 뜨는 곳으로 보이리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내일이 보이리
낮이 순간처럼 지나가다가
못잊어 돌아온 저녁
사랑과 그리움
더 있노라
옛얼굴 별을 찾아
어둠 속을 허우적이는
나는 빈 손
* 인생 - 김광섭
너무 크고 많은 것을 혼자 가지려고 하면
인생은 불행과 무자비한 칠십년 전쟁입니다.
이 세계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닙니다.
신은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
낮에는 해뜨고 밤에는 별이 총총한
더 없이 큰
이 우주를 그냥 보라고 내 주었습니다.
* 고독 - 김광섭
내
하나의 생존자로 태어나 여기 누워 있나니
한 간 무덤 그 너머는 무한한 기류의 파동도 있어
바다 깊은 그곳 어느 고요한 바위 아래
내
고단한 고기와도 같다.
맑은 성 아름다운 꿈은 멀고
그리운 세계의 단편은 아즐타.
오랜 세기의 지층만이 나를 이끌고 있다.
신경도 없는 밤
시계야 기이타.
너마저 자려무나.
* 생의 감각 - 김광섭
여명에서 종이 울린다
새벽 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는 것이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지는 때가 있었다
깨진 그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르런 빛은
장마에 황야처럼 넘쳐 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서 있었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 꽃 단상 - 김광섭
꽃은 영감 속에 피며
마음을 따라다닌다
사람이 외로우면
사람과 한방에 같이 살면서 외롭고
사람이 슬프면
사람과 같이 가면서 슬프다
이런 꽃은 꽃 속에 꽃이 있고
사랑이 있고 하늘이 있지만
그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도 않고
누구에게나 그 속을 좀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 행인 - 김광섭
갑자기 가시니
사방이 어두워서
동서남북이 다 없어졌네
저 어진 산 나직한 봉우리를
어머님 계신 지붕으로 알고
먼 절을 하며 가다보니
그 아닌 길을 혼자가고 있었네
어머님 앞에 어물거리던
고향의 낡은 뒤안길
창구미 상송 흰 벌!
남북이 통하면 먼저
뫼시고 가오리 가오리 하던
그 길이 다시 열릴 때
아들 따라 살려고 넘어오신
어머님을 산에 혼자 두고
천지간에 산을 보며
눈물이 나서
어찌 혼자 가오랴
* 산 - 김광섭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댔다가는
해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놓고 먼 산 속으로 간다
산은 날아도 새둥지나 꽃잎 하나 다치지 않고
짐승들의 굴 속에서도
흙 한줌 돌 한 개 들성거리지 않는다
새나 벌레나 짐승들이 놀랄까봐
지구처럼 부동의 자세로 떠간다
그럴 때면 새나 짐승들은
기분좋게 엎데서
사람처럼 날아가는 꿈을 꾼다
산이 날 것을 미리 알고 사람들이 달아나면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가다가도
고달프면 쉬란 듯이 정답게 서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간다
산은 양지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신을 뫼신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도로 험한 봉우리로 기어 올라간다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를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계곡이 된다
산은 한번 신경질을 되게 내야만
고산도 되고 명산도 된다
산은 언제나 기슭에 봄이 먼저 오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여름이 머물고 있어서
한 기슭인데 두 계절을
사이좋게 지니고 산다
* 성북동 비둘기 -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들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 너를 가져가라 - 김광섭
내 가슴에서 너를 가져가라
네 간 자리 아픔 더할지라도
내 가슴에서 너를 가져가라
네 간 곳에 마음 가고
정들고 생각 깊건만
네 옆을 지나 나는 간다
너와 있을 날 길이 믿고
보낸 날 헛되이 돌아보니
눈물 속에서 네가 다시 건너간다
* 저녁에 -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 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하나 나하나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가을이 서럽지 않게 - 김광섭
하늘에서 하루의 빛을 거두어도
가는 길에 쳐다 볼 별이 있으니
떨어지는 잎사귀 아래 묻히기 전에
그대를 찾아 그대 내 사람이리라
긴시간이 아니어도 한 세상이니
그대 손길이면 내 가슴을 만져
생명의 울림을 새롭게 하리라
내게 그 손을 빌리라 영원히 주리라
홀로 한쪽 가슴에 그대를 지니고
한쪽 비인 가슴을 거울삼으리니
패물 같은 사랑들이 지나간 상처를
입술을 대이라 가을이 서럽지 않게...
김광섭
1905-1977
함북 경성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졸업
시집 <동경> <마음> <해바라기> <성북동 비둘기> <반응> 등
1905-1977
함북 경성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졸업
시집 <동경> <마음> <해바라기> <성북동 비둘기> <반응> 등
박항률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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