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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22일 토요일 요한복음 6:60-71 <떠나는 자와 따르는 자> 본문
최후의 만찬 / 칼 블로흐 / 19세기 말
<묵상>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요 6:65-66)
오늘 비로소 예수님의 제자가 열 두명인 이유를 알게 됩니다.
그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될 것처럼 따라 다녔습니다.
물론 나중에 남겨진 열 두 제자라고 해서 다 믿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떠난 이유는 아버지께서 오게 하지 않았는데 자기 야망을 위해 따르는 자도 있다고 말씀하신 탓입니다.
예수님께서 다 떠나고 열 두명만 남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 라는 질문을 하시는 것이 슬프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가지 말라고 붙잡는 것 같기도 하고, 간다면 붙잡지 않겠다는 체념이 담긴 말씀인 것 같아서 가슴이 아픕니다.
남은 열 두 제자 안에 예수님을 죽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가룟 유다가 섞여있는 것을 예수님은 아셨을텐데도 사람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아시는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걷기 위하여 모른척 하신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자살로 인생을 끝낸다고 생각을 하니 그 인생이 불쌍하고 참담한 느낌을 줍니다.
은전 30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는 그 돈으로 부귀영화를 누린 것도 아니고 허망하기 그지 없습니다.
겨우 '열두 명'만 남은 제자들 중에서 베드로는 용기있게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를 두고 가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그 고백이 후에 순교할 죽음까지 알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오늘날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에는 베드로 조차도 철저한 자기 희생을 각오하는 의미를 알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여러가지를 깨닫게 합니다.
불완전한지만 "너도 가려느냐?"는 물음에 자신은 없으나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붙잡으려는 용기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에게 닥치는 어떠한 고난도 후에 받을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바울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 요한복음 6 : 60 - 71 >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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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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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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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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