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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9일 화요일 말라기 2 장 17 절 ~ 3 장 15 절 <내게로 돌아오라> 본문
십일조 / 소 피테르 브레헬 / 1617년
<묵상>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말 2:17-3:1)
오늘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에 축복이 없는 것에 대해 호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사장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믿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점점 부패해졌고 , 십일조와 헌물에 대한 무관심과 무성의,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에 대해서 진노하셨습니다.
그런데 100년 전에 학개와 스가랴가 똑같은 죄를 회개하기를 촉구했었습니다.
그러니까 100년 동안 똑같은 죄를 범하면서도 제사장들과 백성들은 그것을 모르고 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지 모르겠다고 그야말로 오리발을 내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수 백번의 배신을 당하고도 매달리는 연인처럼 끊임없이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타락한 사람을 향한 호소가 과연 효과가 있을까요?
지금 시대의 형제나 친한 사람의 타락한 생활을 지적하면 아마도 '너나 잘해!', '남의 일에 참견 마!'라는 소리를 듣겠지요.
같이 죄를 짓고 사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효과가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에는 그 말 속에서 주는 울림이 아주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도 복음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누군가를 가르치면 생각보다 많이 누그러집니다.
하지만 마지못해서 하는 예배나 회개는 안하느니만 못합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율법을 지키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을 돌려드리는 일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배신하는 우리를 끝도 없이 사랑하시고 기다리고 계신 것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말라기 2 장 17 절 ~ 3 장 15 절>
17.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롭혀 드렸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좋게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말라기 3 장 1 절 ~ 15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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