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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4일 금요일 여호수아 20 장 1 절 ~ 9 절 <도피성> 본문

매일성경

2019년 10월 4일 금요일 여호수아 20 장 1 절 ~ 9 절 <도피성>

오렌지 향기 2019. 10. 4. 06:50





도피성



<묵상>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수 20:9)



도피성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정상참작'입니다.

살인은 반드시 죽어야만하는 그 당시의 이스라엘 율법상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었습니다.

살인은 살인자를 죽이거나 속죄를 통하여 무죄한 피를 제거하는 두 가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필요한 살인이 있을 수 있었지요.

인간의 불완전함은 용서를 스스로 할 수 없어서 복수의 악순환을 가져 오기 때문에 도피성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완벽하신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불완전한 인간들과 우발적인 사건들을 용납하셨을까요?

아마도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우리의 불완전함을 이미 아시고 피난처인 예수님이 안계시면 우리는 모두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려고 도피성을 만들게 하신 것 같습니다.

도피성으로 도피한 죄인은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이 도피한 사람의 죄를 뒤집어쓰고 죽는다는 개념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죄를 대신 진다는 대속의 개념은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를 했지만 그것을 이해해주고, 품어주는 율법을 넘어선 무엇인가 필요한데 그것이 인간이 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흠이 많은 존재인 것 같습니다.

자신을 만들어준 부모에게도 대드는 인간들이 어찌 하나님께는 순종하겠습니까.

몇 년만 예배 안드리고 교회를 안나오면 세상 사람들과 똑같아질 수밖에 없는 우리 믿는 사람들도 정말이지 종이 한 장 차이 밖에 나지 않는 우리의 믿음인데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우리는 성경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누군가가 제가 무심결에 한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믿음을 포기했을 수도 있고, 낙태가 죄가 아닌 이 세상에서 생명은 가볍게 죄책감 없이 죽임을 당하는 세상에서 죄가 없는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죄를 간직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잘 먹고, 잘 살고, 더군다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잘 지내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여호수아 20 장 1 절 ~ 9 절>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3.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의 보복자를 할 곳이니라
  4. 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성읍에 받아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게 하고
  5. 의 보복자가 그의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에 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음이라
 
 
  1.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2. 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헤브론
  3. 여리고 동쪽 요단 저쪽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
  4.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의 보복자의 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