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묵상>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
(눅 23:46)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순교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순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반드시 일어나야 할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순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우리를 용서하시는 걸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면 십자가의 수고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다면 예수님의 죽음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실 때 온 우주는 깜짝 놀라며 그 소리가 온 우주에 진동했을
것입니다.
그 진동이 지금도 느껴질 듯 합니다.
다 이루었다니요....어느 인간이 그런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눅 24:44)
성경은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서 읽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관적인 성향이 매우 강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영적인 것을 접하기가 힘듭니다.
주관적인 성향의 사람은 성경을 어떻게 읽든지 감동을 받지를 못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는 우리의 생각, 개념, 느낌, 마음, 즉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활짝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의 죽음은 누군가 환상을 보았겠지, 더구나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집단 환상에
빠진 것이라 이해하기 쉽습니다.
워치만 니 목사님은 <성경을 상고하라> 책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음과 영혼이 하나님을 향해 활짝 열리면 그 사람의 감수성은 고도로 개발이 됩니다.
성령님이 가까이 지날 때마다 날카롭고도 심오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영적으로 섬세하고 민감한 사람은 최소한 다음 두 가지를 알게 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가운데서 계시하시고자 하는 강조점이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알 것이며,
둘째로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사실 속에서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과 나머지 사실 가운데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 말씀의 섬세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기게 하려면 내적으로 지극히 유순하고 민감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말씀의 전체 윤곽뿐 아니라, 가장 세미한 점까지도 포착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