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만한 자의 발이 내게 이르지 못하게 하시며 악인들의 손이 나를 쫓아내지 못하게 하소서
- 악을 행하는 자들이 거기서 넘어졌으니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날 수 없으리이다
<묵상>
34편은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고 소제목이 붙어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34:8)
환란에 처한 자신의 처지를 기댈 곳이라고는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던 다윗은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였습니다.
젊은 사자는 기운도 세고, 먹기도 많이 먹겠지만 먹이가 없어서 굶기도 합니다.
아무리 젊은 사자라고 할지라고 굶주린다면 그 힘센 이빨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그 힘센 기운을 어디다 쓰겠습니까?
몸은 늙어가고 쫓기는 신세일지언정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이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다윗을 봅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34:18)
속상해서 울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속상해서 울때는 우리의 심령은 여리고 예민해져서 세상의 모든 눈물과 어두움과 곤란함을 다 이해할 것만 같고 그것들이 모두 저의 일인 것 처럼 타인의 슬픔까지 끌고와서 슬퍼하게 되기도 합니다.
사람을 죽인 냉혈한인 살인자도 길을 걷다가 노숙자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는 순간도 있겠지요.
마음이 상했을 때나 진심으로 통회하는 심정일 때에는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순간에 하나님께 흘리는 눈물과 통회로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이 다가옵니다.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도저히 용서해주면 안될 것 같은 죄를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인간적인 죄를 지은 다윗을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인간은 인간이라서 죄를 용서하지 못하는데 그러한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마음이 아프실 것 같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이 모두 도토리 키 재기 처럼 하나님 시각에서는 비슷해보일 것 같습니다.
우리끼리는 티격태격 서로의 못난 모습을 흉보며 다툴지라도 하나님의 시작에서는 그러한 모습들이 우스울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품에 기대어 감사드리는 하루가 되시기를 빕니다.
"나는 그들이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시 35:13)
다윗의 시편 35편은 강한 어조로 악인들의 멸망을 촉구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 다급한 마음으로 즉각적인 요청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시입니다.
아마도 아주 곤경에 처해 있어서 마음이 다급한 상태에서 부르짖는 내용 같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때에 금식기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그의 기도가 응답되었음을 확신하면서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라고 표현합니다.
금식기도는 마치 금식을 하는 동안의 괴로움과 고통이 하얀 새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빠른 속도로 하늘로 향해 가는 새처럼 금식기도는 효과가 빠른 것 같습니다.
시편 36편은 여호와의 종인 다윗이 쓴 시라고 소제목이 붙어있습니다.
다윗이 자신을 여호와의 종인 다윗이라고 표현한 시편은 36편과 18편 밖에 없습니다.
굳이 그렇게 소제목을 붙인 이유가 있겠지요.
성도를 보호하시고, 인자하심으로 감싸 주시는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 피함으로써 어미 품에 안긴 새처럼 안정과 평화를 누리는 자신의 처지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