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묵상>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8,9 -21)
하나님께서는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을 거니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날의 일과를 끝내시고 저녁 산책길을 나선 것이지요.
보통때 같으면 아담과 하와도 동행했을 산책길인데 죄를 지은 아담과 이브는 어디론가 숨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산책을 하시면서 "네가 어디 있느냐?"하시면서 찾으십니다.
보통 인간들이 하나님을 찾고 난리를 치지 않습니까?
요즘의 우리들은 갈급한 상황에 하나님을 많이 부르짖지요.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항상 찾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때 이미 우리를 부르시며 찾으셨는데 우리는 죄를 지었을때 하나님을 찾기는 커녕 숨어버립니다.
아담과 이브는 불순종한 사실 때문에 새롭게 깨달은 것이 그들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입니다.
불순종의 상징인 그들의 옷을 하나님은 벗겨버리지 않으십니다.
구약성경에서 옷을 벗기는 것은 상속권 박탈을 의미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한 아담과 이브의 옷을 벗기기는 커녕 오히려 두 사람의 수치심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가죽옷을 지어주십니다.
아담과 이브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포기하신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왜 가죽옷이었을까요?
가죽옷을 만드시려면 반드시 동물을 죽여야 합니다.
이 사실은 성경 전체에 많이 반복되는 희생 제사로 피를 흘려야만 인간의 죄를 덮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피흘림을 통한 구원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손으로 조잡한 무화과나뭇잎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손수 가죽옷을 만들어주심으로써 그들이 만들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옷으로 그들을 덮어 주기로 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도 만드셨고, 인간이 지은 죄를 덮기 위하여 튼튼한 가죽옷으로 입혀주시는 은혜의 주권자이십니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이브의 후손을 생각하셔서 하나님은 언약의 자손으로 삼으십니다.
보통의 인간이 생각할 때에 내가 만든 인형이 감히 대든다면 인형을 없애버리고 다시 만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하나님 손으로 만드신 인간이 지은 죄를 덮어주시기 위하여 애쓰시면서 인간을 인격적으로 존중해주십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은혜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격적으로 생각하셔서 내려주시는 주권적인 사랑입니다.
주여, 저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혹시 "영주야,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신다면 하나님 앞에 거침없이 달려나가는 제가 되게 하소서.
수치와 교만의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가지 못하는 제가 되지 않기를 빕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옷을 입고 있다면 저에게도 예수님을 아는 가죽옷을 입혀 주소서.
예수님의 보혈이 묻은 옷을 입어야만 하나님께 나갈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