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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바닷가 여행 (A Trip to Coast).....엘리스 먼로 본문

느낌표!!!!!!/책 읽어 주는 女子

어떤 바닷가 여행 (A Trip to Coast).....엘리스 먼로

오렌지 향기 2014. 3. 12. 21:14

 

 

 

지도에는  블랙 호스(Black Horse)로 표시되어 있으나 달랑 가게 하나와 여염집 세 채에 오래된 공동묘지와 불타 버린 교회에 속했던 말 대여점뿐인 마을.

여름철은 찜통처럼 덥고 길가에는 그늘 한 자락 없으며 인근에 개울 하나 없다.

여염집들과 가게를 지은 벽돌은 퇴색하여 불그죽죽하고, 모양을 낸답시고 회색이나 흰색 벽돌을 굴뚝과 창가에 빙 둘러 대강대강 박아놓은 게 고작이었다.

그 너머 들판에는 밀크위드며 미역취며 자줏빛 꽃송이가 커다란 엉겅퀴들이 무성하다.

머스코카 호와 북부 숲으로 가는 도중에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알아챌지 모른다.

이 부근에 이르면 무성하던 나무들이 드문드문해서 살풍경하고, 점점 줄어가는 들판에는 마모되어 팔꿈치처럼 생긴 바위가 보이고, 짙푸른 느릅나무와 단풍나무가

조화를 이룬 수풀은 온데간데없이 오종종한 자작나무와 미루나무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삭막하고, 길 끄트머리에 서 있는 가문비나무와 소나무는 오후의 열기에

지친 나머지 다 쓰러질 듯이 눈에 띄게 한쪽으로 기운 모습이 마치 유령들이 뒤로 물러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메이는 상자들을 한가득 쌓아둔 가게 안쪽 커다란 방에 누워 있었다.

그곳은 위층이 찜통처럼 푹푹 찌는 여름이면 메이가 자는 방이었다.

헤이즐은 앞방 체스터필드 소파에서 자면서 오밤중까지 라디오를 틀어놓았다.

메이의 할머니는 더우나 추우나 위층에서 잤다.

커다란 가구들이 다 차지하다시피 하고 옛날 사진들이 걸려 있는 좁디좁은 그 방에서는 열을 받아 노글노글해진 오일클로스 냄새와 노파의 털양말 냄새가 났다.

오늘처럼 일찍 일어난 적이 거의 없는 메이로서는 몇 시쯤 되었는 가능하기가 어려웠다.

 

메이가 잠에서 깬 여느 때 아침은 대개 발치 끝 방바닥에 햇살 한 자락이 쨍쨍하게 내리비치고, 농부들의 우유 트럭이 덜컹덜컹 고속도로를 지나고,

할머니가 손님 맞으랴 풍로에 올려놓은 커피포트와 두툼한 베이컨 굽는 팬을 살피랴 가게와 주방을 정신없이 오가는 무렵이었다.

메이가 자고 있는 낡은 소파겸용 침대(쿠션에서는 아직도 곰팡내와 솔잎 냄새가 흐릿하게 났다)를 지나칠 때면 할머니는 자동 기계처럼 홑이불을 홱 낚아채며 말하곤

했다.

 

"일어나라, 어서 일어나.   눈 뜨자마자 저녁 먹을 게야?  손님이 기름 넣어달란다."

 

그래도 메이가 일어나지 않고 홑이불을 꼭 끌어당기며 짜증 난 목소리로 중얼거리면, 노파는 바가지에 찬물을 떠 와 손녀딸의 발에 뿌리곤 했다.

그제야 메이는 펄쩍 뛰듯이 일어나 얼굴을 뒤덮은 갈기 같은 긴 머리를 뒤로 넘겼다.

잠기가 남아 찌무룩하기는 해도 신경질은 내지 않았다.

할머니가 정한 규칙은 스콜이나 배앓이처럼 모질지만 지나가게 마련이라고 믿는 아이였다.

메이는 입던 옷 위에 소매 없는 나이트가운을 걸친 채 잠을 잤다.

열한 살 된 메이는 한창 수줍음를 탈 때라 엉덩이에 예방 주사를 맞는 것도 기를 쓰고 마다했고, 옷을 갈아입을 때 헤이즐이나 할머니가 불쑥 방에 들어올라치면 고래

고래 악을 써댔다.

두 사람이 그러는건 자기들 재밌자고 자신의 사생활을 우스갯거리로 삼기 때문이라고 메이는 생각했다.

밖으로 나가 손님 차에 기름을 넣고 돌아올 때 쯤이면 으레 잠이 확 깼고 배가 고팠다.

아침으로 마멀레이드와 땅콩버터를 바르고 베이컨을 넣은 토스트를 네댓 개씩 먹곤 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메이가 눈을 떴을 때는 방에 빛이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보드상자에 인쇄된 글자가 겨우 보일까말까 할 만큼 희붐했다.

하인즈 토마토 수프, 골든 밸리 살구 잼 따위의 상표를 읽고 그 글자를 셋으로 나누는 은밀한 의식을 행했다.

우수리 없이 딱 맞아떨어지면 그날은 운이 좋은 날이라고 여겼다.

그 의식을 치르면서 메이는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누군가가 마당에서 움직이는 기척이 났다.

야릇한 불안감이 발바닥부터 온몸을 휘감아 베이로 하여금 발가락을 오그라뜨리고 소파 끝에 닿도록 다리를 쭉뻗게 했다.

재채기가 나오려 할 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것 같은 기분을 온몸으로 느꼈다.  되도록 조용히 일어나 꺼끌꺼끌하고 푹푹 빠지는 모래밭을 걷는 듯이 느껴지는,

빈 상자들이 쌓여 있는 뒷방을 살금살금 가로질러 울퉁불퉁한 리놀륨이 깔린 주방으로 갔다.   헤이즐에게 물려 입은 낡은 면나이트 가운이 메이가 움직일 때마다

뒤가 크게 부풀어 올라 유령처럼 소리 없이 뒤따르고 있었다.

 

 

주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싱크대 언저리의 선반에서 시계만이 어김없이 째깍거렸다.   늘 물이 똑똑 떨어지는 한쪽 수도꼭지 밑에 몇 겹으로 접어 대놓은 행주도

여전했다.   노랗게 영글어가는 토마토와 할머니가 틀니를 닦을 때 쓰는 가루 치약통에 가려 시계 글자판이 잘 보이지 않았다.

6시 20분전이었다.   메이는 방충문 쪽으로 갔다.   빵 상자를 지나칠 때 저절로 뻗어나간 손에 잡힌 시나몬 빵 두어개를  살펴보지도 않고 먹기 시작했다.

빵이 조금 팍팍했다.

하루 이맘때의 뒷마당은 이상하게도 음습했다.   글판은 어스레했고, 수풀이 덥수룩이 자라 곳곳에 거미줄이 쳐져 있는 울타리를 따라 새들이 줄줄이 앉아 있었다.

하늘은 연하고 서늘하고 부드러운 햇살로 이랑졌고 가장자리는 조개껍데기 안쪽처럼 발그스레했다.   할머니도 헤이즐도 이 광경을 못 보고 아직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메이는 뿌둣했다.   오늘은 아직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은 광경.  그 순결함에 메이는 흠칫했다.   그런 하늘을 가로지른 한줄기 새벽빛 같은, 자유와 위험을

알리는 미묘한 조짐을 느꼈던 것이다.  장작더미가 있는 집 모퉁이에서 귀에 거슬리는 메마르고 작은 소리가 들렸다.

 

"거기 누구야?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메이가 한입 물고 있던 시나몬 빵을 꿀떡 삼키고 소리쳤다.

할머니가 앞치마에 불쏘시개 몇 개를 감싸들고 모퉁이를 돌아 나오면서 성난 목소리로 혼자 투덜댔다.   할머니를 본 메이는 사실 놀란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으로

부터 과거와 미래까지 통틀러 자신의 삶 전체로 엷게 퍼져 나가는 듯한 기이한 허탈감에 사로잡혔다.   할머니는 자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벌써 가 있을 것 같았고,

자신이 알아낸 것이 무엇이든 먼저 알고 있거나 시답잖다는 것을 밝혀 보일 것 같았다.

 

"누군가 마당에 있는 것 같아서요."

메이가 변명하듯 말했다.

 

노파는 나무토막처럼 우두커니 서서 메이를 바라보더니 앞서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할머니가 이렇게 일찍 일어나신 줄은 몰랐어요.  왜 이리 일찍 일어나셨어요?"

노파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 듣고도 내키지 않으면 원ㄹ해 대답을 하지 않는 노파는 풍로에 불을 피우고 일할 준비를 했다.   그날 노파는 날염 원피스를 입고

닿아빠지고 지저분한 파란 앞치마를 허리에 둘렀다.   거기에다 옛날에 노파의 남편 것이었던, 단추는 다 떨어지고 올이 나가고 빛은 바랠대로 바랜 스웨터를

걸치고 즈크화를 신었다.   단정하게 잡아매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노파가 걸친 옷들은 헐렁헐렁했다.   임신 4개월째인 여자처럼 봉긋한 배를 제외하고는 몸피가

납작하고 가냘픈 탓에 옷이 몸에 달라붙으려야 달라붙을데가 없었다.   살이라고는 없는 다리는 뻐마디가 다 드러나서 우툴두툴했고 가뭇한 팔에는 힘줄이 툭 불거져

채찍처럼 꼬여 있었다.   머리통이 몸집에 비해 큰 데다 머리카락이 착 달라붙은 노파의 모습은 영양실조에 걸리 영악한 어린애 같았다.

"가라 더 자거라."

메이는 자러 가는 대신 주방의 거울 앞으로 가서 머리를 빗고 안말이가 되는지 손가락으로 똘똘 말아보았다.   유니파커의 사촌이 오늘 날이 오늘이란 게 기억났던

것이다.   할머니 몰래 헤이즐의 컬러를 가져와 머리를 말 수 있으면 좋으련만.

 

노파는 헤이즐이 자고 있는 앞방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커피포트에 남아 있던 것을 쏟아버리고 물과 커피를 새로 넣었다.   아이스박스에서 우유 주전자를 꺼내

상하지 않았는지 냄새를 맡아보고 설탕 그릇에서 개미 두 마리를 숟가락으로 건져냈다.   그런 다음 담배를 마는 작은 기계로 담배를 한 대 말고 나서 탁자에 앉아 어제 신문을 읽었다.   커피가 끓자 물을 끼없어 불을 끄고 방이 낮처럼 환해졌을 때에야 비로소 노파는 메이에게 말했다.

"마시고 싶거든 네 컵을 가져오너라."

아직 어리니 커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