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Now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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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은 꽃
/양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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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귀신사에 있었다. 나는 그를 귀신사(歸神寺)에서 만났다.
십오 년 만이었다. 물론 나는 그 십오 년의 세월을 첫눈에 걷어 내지는 못하였다.
그가 먼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이 돌연한 만남이 십오 년의 시간을 경과한 후에 비로소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확인되지 않았을 터였다. 그랬다면, 만약 그와 나 두 사람 중의 어느 누구도 세월의 두께를 젖히고 상대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우리는 서로 스쳐 지나갔을 것이었다. 하늘 향해 키를 겨누고 서서 연초록 잎을 피워 올리고 있는 껑충한 미루나무나 하염없이 쳐다보다가, 시들어 가는 진달래 잎사귀나 한 번 더 만져 보고, 나는 그만 돌아섰을 것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이 소설은 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한 거인의 목소리를 채집하는 행운을 영원히 놓쳐 버릴 수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행여 하고 갔다가 역시 하고 돌아오는 허망함을 어떻게 가누었을지 생각만 해도 막막한 일이었다. 어쩌면 그는 내가 거기에 가야만 했던 까닭을 미리 알고 먼저 그곳에 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 같으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비웃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말해 버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태도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말해 버렸다. 귀신사에서 나는, 그렇게 말해 버리는 법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날 오전, 서울역의 혼잡한 광장에 홀로 남겨졌을 때부터 나는 이 여행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러나 좀 더 사실대로 말하자면 후회가 시작된 시간은 그보다 한참 먼저였다. 기차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다소 부지런을 떨었던 아침, 내가 없어도 아무 이상 없이 잘 돌아가게끔 챙겨 뒤야 할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앞에 두고 느꼈던 전날 밤의 한숨, 그보다 더 앞으로 시간을 돌리면 기차표를 에매하러 나갔던 날의 몽롱함과 회의까지를 다 후회의 페이지에 삽입시켜야 정확할 터였다.하지만 후회 잘하는 사람일수록 늘 그렇듯이 포기도 쉽게 하지를 못하고 결국 나는 예매한 기차표의 시각에 정확히 맞추어 서울역 광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사이 이 여행을 포기해도 미련 없을 만한 어떤 좋은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표는 잊지 않고 가져 왔지?」
나를 광장에까지 실어다 주고 돌아가면서 남편이 남긴 말은 이게 다였다. 잘 다녀오라거나 그저 머리나 식히고 오는 셈치라는 말쯤은 해줄 만도 한데 그는 그저 내 지독한 건망증만이 염려스럽다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 태연히 차를 돌렸다. 남편의 태연한 그 얼굴이, 광장에 밀집해 있는 자동차 사이를 빠져 나가 눈부신 봄 햇살 속의 거리로 섞여 가는 그 태연한 뒷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던가.
나는 억울하였다. 다른 이들은 모두 신나는 휴가를 떠나는데 오직 나에게만 처치 곤란한 일거리가 잔뜩 주어져 내몰린 기분이었다. 이건 정말 부당하다. 억울하다. 그 한순간의 억울함은 이 여행의 후회를 넘어서서 내 생애 전부를 후회하기에도 충분한 양이었다. 내 생애 전부를 실어 내기 위해 늘 내 이름자 밑에 괄호로 닫혀져 묶여 있는 ‘소설가’라는 호칭을 원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슴에 얹혀진 바위 하나를 들어내는 방법이 꼭 이래야 한다는 것은 원래 내 방식이 아니었다. 잘 감긴 타래에서 술술 실이 풀리듯 그렇게 글이 풀려 나오지 않는다 해서 훌쩍 어디로 떠나곤 하는 버릇에는 애시당초 길들여 있지 않은 사람이 바로 나였다. 글이 써지지 않아서, 혹은 좋은 글을 찾아서 여행을 떠난다는 동업자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들의 허공에 들린 발을 염려하곤 했었다. 여행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삶의 필요에 의한 것이며, 단지 소설만을 위해서 일상을 저버리고 떠나는 일은 마치 죽기 위해서 산다는 말처럼 부정하기 어려운 허장성세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나중에 하나의 여행이 온전하게 소설로 담겨져 나오는 수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 또한 삶의 필요가 먼저였고, 소설은 의외의 부산물인 경우에 불과했다. 성실하게 삶을 더듬다 보면 운 좋게 주어지는 그럼 부산물. 그러나 이번 여행은 삶의 여러 관계들로 야기된 피할 수 없는 길 떠남이 아니었다.
망설임과 후회가 그처럼 질겼던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거기에서 연유되고 있었을 것이다. 소설이 제대로 씌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여행을 도모하고 실천하다니. 게다가 단 한 시간이라도 죽을 듯이 아껴서 써대도 겨우 마감 날짜를 지킬까 말까 한 이 화급한 날들 중의 하루나 이틀을 온전하게 내던져 버리다니.
이 도박은 말하자면 벌써 몇 달째 그랬듯이 이번 달 역시 마감 날짜를 그냥 지나치고 말리라는 뚜렷한 징표로서 제시된 것에 다름 아니었다.
소설은, 확률이 높건 낮건 간에, 결코 도박일 수 없는 것이므로.
여행에 대한 미심쩍음이 이리도 깊었던 탓에 창가 좌석에 앉아 스치는 바깥 풍경을 내다보는 심정도 썩 밝지는 않았다. 소설을 위한 여행이 아니었다면 동네에서도 보고 또 본 저 흐드러진 진달래며 개나리, 그리고 연둣빛 새순들한테 얼마나 많은 감홍을 쏟아 넣었을까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했다.
기차가 서울역을 벗어나 달린 지 오 분도 채 되지 않아서 의자를 마주 돌려놓고 먹을 준비를 하는 건너편 여자들의 거칠 것 없는 웃음소리도 내게는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거의 내 나이쯤으로 보이는 여자들은 아마도 한 동네 단짝들인 모양이었다. 모처럼 집을 빠져 나왔을 여자들은 이른 점심인지 늦은 아침인지 모를 식사를 하면서 거침없이 웃고 떠들었다. 나는 그들의 거침없는 웃음을 훔쳐보며 더욱 창가 쪽으로 바싹 당겨 앉았다. 기차 안 어디를 둘러보아도 나처럼 모호한 표정의 승객은 없었다. 모호하기는커녕 일상을 벗어난 사람들의 표정은 그 여행의 목적과는 관계없이 지극히 선명한 굴곡을 나타내고 있었다. 나는 거침없고 선명한 승객들한테 자꾸 주눅이 들고 있었다.
미로에 빠졌으면 처음 길을 잃었던 자리에서부터 차근차근 출구를 찾아보는 것이 옳았을 터였다. 시작과 끝을, 삶의 처음과 마지막을 그토록이나 성실하게 더듬어 가는 것으로 미로를 벗어나긴 틀린 것이었을까. 운 좋게 부산물을 획득하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 것은 너무 이른 절망이 아니었을까. 좌표가 사라졌다고는 해도 좌표가 있던 자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닌데 왜 그렇게도 맥이 풀려 버렸을까. 그 맥풀림에 대처하는 것조차 나는 왜 그리 조급했던 것일까.
한 시인의 말처럼 어차피 고통은 이 세상을 사는 인간들이 지불하는 월세 같은 것일진대, 견디어 누르고 있으면 제 압력으로 솟아나오는 뿌리 하나쯤은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이제는 그런 것들까지 폐기 처분되는 시대라고 믿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정말은 그 믿음이 두려웠던 것일까, 나는. 생전 안하던 짓을 하고 있는 자의 가슴속으로는 온갖 의문이 스며들고, 그 의혹의 무게까지 덧붙여진 가슴의 바위는 참으로 처치곤란이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다. 이럴 때는 무엇이든 읽을 것이 있어 글자 속으로 들어가 버리면 시간을 죽이기가 훨씬 수월 할 텐데도 내겐 인쇄된 그 무엇도 가진 것이 없었다. 나는 일부러 책 따위는 들고 가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차가 수원을 지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읽을 것을 학대한 스스로를 질책했다. 책 대신으로 은근히 기댄 것은 가없는 풍경을 담아내는 기차의 넓은 창이었다. 나는 표를 예매하면서 근래에 드문 명료한 목소리로 창가 좌석을 요구했었다. 하지만 직통으로 얼굴을 쪼아대는 4월의 햇볕과 만난 것은 기차가 서울을 벗어나고 이내였다. 그것은 벌써 몸에 닿으면 감미롭고 마냥 훈훈하던 첫봄의 순수한 햇살이 아니었다. 견딜 만큼 견딘다 해도 결국 오 분이 채 되지 않아 때묻은 커튼으로 손이 갈 만큼 성가신 존재였다. 창의 배반은 당장에 읽을 것에 대한 갈증을 불러왔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처럼 모든 일에 있어 제3의 대안 같은 것은 준비해 본 적이 없는 한심한 인간이었다.
사실을 말하면 개표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약국 앞에 붙은 간이 서점을 기웃거리긴 했었다. 읽을 것이 아닌 그저 볼 것, 머리에는 입력되지 않고 단순히 눈에만 머물렀다가 그대로 날아가 버릴 그런 것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나는 읽을 만한 책을 고르지 못하였다.
집에서도 그랬다. 어쩌면 손쉽게 아무 책이나 택해서 손가방 안에 쑥 밀어 넣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짜증으로 이번 여행엔 아예 어떤 책도 동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지도 모른다. 책 속에서 무얼 구할 수 있었다면 왜 여행까지 생각했을 것인가. 그래도 나는 역 귀퉁이의 간이 서점 앞을 그냥 통과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한참을 제목의 숲에서 길을 잃었다. 한참 뒤에 나는 집에서의 다짐을 떠올렸다.
책을 동반하지 말 것. 그 다음에 떠오른 것은 늙은 내 어머니의 푸념 같은 말씀 하나였다.
「쟈는 염생이 띠에다 염생이 달, 염생이 시(時)에 태어났응께 어차피 한평생 종이만 우물거리다 말 거여」
기차 안에서의 세 시간 동안 내가 만난 글자는 홍익회 판매원의 밀차에 담긴 군것질감의 상표와 앞자리 등받이에 새겨진 피로 회복제 광고가 전부였다. 피곤하고 나른할 때 이 물약을 마시면 새 기운이 솟구친다는 광고 문구는 어느 좌석이건 간에 다 흰 천의 등받이에 녹색 잉크로 인쇄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기차 안 이곳저곳에 내가 찾는 글자가 널려 있기는 한 셈이었다. 그것들의 한결같은 내용에 진저리를 치 면서도 내 눈은 글자를 읽고 뜻을 해독하는 짓을 멈추지 못한다. 읽고 또 읽고 다시 읽으며, 나는 마녀의 주술 때문에 춤을 멈출 수 없어 쩔쩔매는 동화 속의 불행한 공주를 떠올린다. 누구, 이 춤을 멈춰 줄 사람은 없나요? 나는 밥을 먹으면서도 춤을 춰야 하고 자면서도 계속해서 춤을 춰야 한답니다. 제발, 이 춤을 멈춰 주세요.결국 나는 눈을 감고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피로 회복제 광고를 외우다가 지쳐 떨어진 나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피로 회복제였다.
나는 거의 한 달 이상 줄곧 피로했다. 물론 피로 회복제 같은 것을 먹어 본 적은 없었다. 도대체가 회복시킬 피로가 뚜렷하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종일 팔다리 휘둘러 일을 하지도 않았고, 자판을 두들겨 가며 원고의 양을 착실하게 늘려 간 것도 결코 아니었다. 너무 멀어지기 전에 단편을 하나 써보겠다고 마음을 다잡기 시작한 한 달 전부터는 두 손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두 손을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날이 하루 이틀 계속되기 시작하면서
나는 지독하게 피로했다. 이런 식으로 시작부터 미로인 글쓰기는 난생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단편소설에 손대 본 지가 벌써 햇수로 3년, 전교조 원년의 그 치열한 투쟁의 한 자락을 그린 단편 〈슬픔도 힘이 된다〉를 한 계간지에 발표한 것이 마지막이었던 셈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처럼 까맣게 소설 작법을 잃어버릴 수는 도저히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에도 나는 쓰고 또 썼었다. 단편이 아니더라도 써야 할 것은 많았다.
규칙적으로 원고를 넘겨야 하는 장편 연재도 쉬임 없이 해왔었다. 문제는 〈슬픔도 힘이 된다〉는 진술이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는 세상의 변화에 있었다.
세상이 갑자기 텅 비어 버린 듯했다. 써야 할 것이 우글대던 머릿속도 세상을 따라 멍한 혼돈에 빠져 버렸다. 하필이면 이때, 나는 연신 미루고만 있던 단편을 써보겠다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두어 군데에 약속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소련과 동구권의 대변혁이 몰고 온 파장은 그나마 모색되어 오던 이 사회의 새로운 물결, 상식적인 삶의 예감까지 붕괴시키는 데 단단한 몫을 하려는 듯이 보여 졌다. 그쪽세계에 살던 사람들이 007가방을 들고, 이전과는 다른 눈빛으로 공항을 빠져나와 우리의 도시 속으로 합류해 들어오는 모습을 보는 일은 착잡했다. 사회주의는 아직 한 번도 실현되어 본 적이 없다는 사라진 지도자의 말도 그 의미심장함과는 상관없이 역설적이고 허탈한 진술로만 들려왔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들었다는 한 제도적 장치로서의 도덕은 당분간 어느 곳에서도 얼굴을 내밀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제는 맹목적인 질주(疾走)만 남았는가. 그렇다면, 그렇다면. 나는 늘 그렇다면, 에서 멈추었다. 누가 뭐라 말하든, 나로서는, 단편이란 양식의 소설이란 작가의 고백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해 왔었다. 어떤 내용을 담았건 그것은 작가의 고백이거나 기도 같은 것이었다. 멈춘 기도를 잊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했지만, 그 일을 시작하는 일은 너무 버거웠다. 그때부터 나의 피로는 누적되기 시작했다. 나는 번번이 두 손을 늘어뜨리고 기계 앞에서 물러났다. 어쩌다 느닷없는 자신감에 힘입어 다시 기계 앞에 앉아도 첫 문장을 맺기도 전에 이게 아닌데, 라는 마음속의 말이 내 손을 멈춰 버리곤 했다. 이게 아닌데, 이것은 아니다, 라는 것 하나만 분명하고 그 외는 다 오리무중인 나날이 한 달간 계속되었다.
내가 생전 하지 않던 짓을 해보겠다고 여행을 나선 것도 모두 이게 아닌데, 라는 내 속의 외침을 잠재우기 위한 버둥거림의 결과였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어디 먼 곳에라도 가서 그 지긋지긋한 내 속의 외침을 땅속 깊이 파묻어 버리고 혼자만 도망쳐 올 수는 없을까 해서 꾸민 음모였다.
그 일이 가능한 것일까. 실제로는 나는 지금 땅속에 파묻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고 있는 듯싶었다. 나는 두려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정작 땅속에 파묻어 버리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건져 와서 완전한 혼돈에 빠져 버리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버리겠다면서도 다 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고, 이게 아닌데, 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욕심을 포기하지 않는 이 질긴 모순을 나는 차마 바로 볼 수가 없다. 내 속에 들어 있는 것의 정체를 알기 전에는 어떤 문장에도 안심하고 마침표를 찍을 수가 없는 것이다.
거의 이리(裡里)에 다 왔을 때까지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렇다고 수면 속으로 빠져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눈꺼풀을 사이에 두고 나는 여전히 세상 속에 있었다. 한숨 푹 잠속으로 떨어졌다가 일어나면 한결 머리가 맑아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일이 쉽지는 않았다. 한번 빗나가기 시작하면 아무리 쉬운 일도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두 시간이 넘도록 맨 정신으로 기차의 진동을 느끼고 있는 나를, 그래서 나는 이해하기로 하였다.
기차가 이리에 멈추었을 때 나는 가벼운 두통을 느끼면 눈을 떴다. 내릴 사람들이 통로에 줄지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한 손에는 가방을 들었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헝클어진 머리며 꾸깃꾸깃한 옷을 매만지고 있었다. 내릴 사람이 다 내린 다음 이번에 새로운 승객들이 등장했다. 조금씩 허물어져서 지친 표정으로 기차를 내린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새 승객들의 머리는 단정했고 구김살 하나 없는 봄나들이 옷은 화사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묵지근한 기차 안 공기는 새 사람들로 인해 금세 싱싱해졌다.
나는 여태도 창을 가리고 있는 때묻은 커튼을 젖히고 밖을 내다보았다. 바깥을 보기 전에는 미처 모르고 있었는데 기차는 이미 출발을 하고 있었다. 마치 거짓말처럼 사람들이, 역사가 슬금슬금 뒷걸음 치고 있는 것이었다. 역 구내의 모든 풍경들은 뒷걸음으로 사라지고 나는 얼굴을 창에 박으면서까지 물러나는 것들을 쳐다보았다. 달려오는데도 오히려 뒤로 물러서는 푸른 작업복의 안전 요원, 기척도 없이 멀어지는 만개한 목련들. 한껏 벌어진 목련꽃은
가벼운 한숨 한 자락에도 호르륵 이파리를 떨 굴 것처럼 위태위태하게 보였다. 목련에 비하면 쇠락의 조짐이 엿보이는 샛노란 꽃다발 사이로 뾰족한 잎사귀들을 다 내밀고 있는 역 울타리의 개나리 덤불이 한결 당당했다.
역 구내를 거의 빠져 나오면서는 개나리 덤불 사이로 히끗히끗 개구멍들이 보였다. 그 구멍으로 개만 드나들었던가. 아마 나도 먼 옛날의 어느 하루쯤 저 구멍으로 들어왔거나 나갔거나 했을 수도 있다.
나는 눈을 똑바로 뜨고 철로변의 풍경들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햇볕은 아직 짱짱했지만 얼굴로 쏟아지던 것에서는 다소 비껴갔다. 설령 얼굴로 쏟아진다 해도 여기서부터는 때묻은 커튼과 타협을 할 수가 없었다. 이 길을 통해 나는 세상에 나왔었다. 한때의 기억들은 모두 이 길의 언저리에서 만들어졌다.
추억은 그것의 생성 장소에서 회상해야 가장 선명한 법이다. 똑같은 장소를 두고 단지 시간만 달리해서 한 인간의 몸과 정신이 투영되는 일은 언제라도 의미심장한 것이다.
그때 나는 거기에 있었고 지금 다시 나는 여기에 있다. 그 사이로 수천수만 번의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갔다. 덧없는 물거품에 옷은 또 얼마나 많이 적셨던가.
그때 내 발부리에 부어졌던 그 파도는 어디로 흘러갔을까. 지금, 이 자리에서 자기를 내다보는 나는 또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돌아갈 길이 없는 시간, 나는 창 유리에 이마를 부비며 문득 돌아갈 길도 모른 채 가고 있는 스스로의 존재가 한순간 포말이 되어 공중으로 흩뿌려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나는 흡입당해지고 잇다. 나는 우주 속으로 버려 진다…….
흡입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결국 도시를 떠나 버린 한 시인이 있었다. 문단에 시인이라는 이름을 얹을 때부터 나는 그를 알게 되었다. 내 딸이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 녹음기가 내장된 커다란 앵무새 인형을 사다 준 이도 바로 그 시인이었다. 어떤 말이든 입을 달싹이며 그대로 따라하는 초록 앵무새는 딸뿐만이 아니라 가끔 나도 가지고 놀았다. 시인도 우리 집에 놀러오면 초록 앵무새와 놀았다. 앵무새는 두 마디 이상은 따라할 수 없게 만들어져 있었다. 난 너를 사랑해, 라고 말하면 난 너를, 까지만 따라 하고 나머지 말은 기계 속으로 흡입되어지고 말았다.
우리 놀음은 앵무새가 「사랑해」까지도 발음할 수 있게 하는 것에 관심이 모아져 있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았다. 여간 빠르지 않고선 번번이
「사랑해」는 금속의 기계 어딘가로 흡수되어 분해되고 말았다. 설령 아,이,우,에,오를 되풀이 연습해서 입술운동을 실컷 한 다음에 「난 너를 사랑해」를 최대한도로 빨리 발음하는 데 성공했다 해도 허사이긴 마찬가지였다. 명확한 발음이 아니면 문장 정체가 다 녹음되었어도 재생된 소리는 제멋대로 깨어진 채였다. 날랄해, 날리레, 이런 식으로 되돌아오는 「난 너를 사랑해」는 흡사 얼레리 꼴레리 하며 조롱하는 소리로 들렸다.
그렇게 소리가 깨어져서 괴상한 모음과 자음의 조합이 이루어지면 어린 딸은 아주 즐거워했지만 시인은 몹시 낭패한 기색이었다. 언젠가는 초록 앵무새를 다른 것으로 바꾸어 와야 겠다고 들고 나선 적도 있었다. 다른 앵무새도 모두 이런 식이라면 앵무새를 만든 공장을 찾아가 항의하고야 말겠다는 것이었다.
「사랑해」를 말할 줄 모르는 앵무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시인의 분노는 딸의 반대로 행동에까지 옮겨지지는 못했다. 잠을 잘 때도 초록 앵무새를 껴안고 자는 딸애는 한사코 그것과 헤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아이에게는 아직 얼레리 꼴레리로 능멸당해 본 슬픈 기억이 없었던 탓이었다. 깨진 언어에 대한 시인의 절망을 아이가 어떻게 이해하리.
「사랑해」를 말할 줄 모르는 새는 새가 아니다. ‘사랑’한테 얼레리 꼴레리 혀를 내미는 앵무새는 앵무새가 아니다. 나는 그가 천상 시인임을 그 작은 일에서 확인했다.
나는 시인이 아니어서 앵무새를 다른 것으로 바꾸거나 만든 이한테 항의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앵무새의 배에 달린 작크를 열면 어린아이의 손에도 쥐어질 만한 작은 녹음기가 있었다. 작크를 열고 기계에 건전지를 갈아 넣기도 한 나는 기계의 용량에 대해 주로 생각하였다. 작은 기계와 작은 음절밖에 녹음할 수 없는 성능. 「나는 너를 사랑해」가 안되면 그냥 「사랑해」로 가는 것이다. 「나를 너를」이 없이는 「사랑해」를 온전히 말할 수 없는 시인의 상처를 소설가는 이렇게 산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인이 지난해 서울을 떠났다. 글자를 짜 맞추고 짜 맞춘 글자들은 행으로 모아 다시 한 권의 책으로 만들던 일을 하다 말고 어느 날 문득 시인은 직장을 버렸다.
그사이 서로 간에 격조해 있었던 탓에 나는 그가 왜 그렇게 했는지 전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덧없는 삶과 창백한 시에 눌려 도시를 떠나고 싶었으려니 짐작만 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시인이 경기도 어디에서 새를 기르며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뜸부기, 이것이 시인이 기르고 있는 새의 이름 이었다. 여름철에 냇가나 연못, 풀밭 등에 살고 날개 길이는 10센티미터, 부리와 다리가 길며, 잘 날지 못하고 아침저녁으로 뜸북뜸북 하고 우는 새. 뜸부기. 앵무새는 아니고 뜸부기였지만, 나는 맞다고 생각했다. 뜸부기 때문이라면 서울을 떠날 만도 했다. 서울에서는 뜸부기를 울게 할 수 없으니까.
시인이 할 수 있는 일로 그보다 더 맞는 일은 없다고 무릎을 치며 탄복했었다. 그 탄복은, 시인의 뜸부기가 애완용으로 팔려 나가 이 집 저 집의 조롱에서 아침저녁으로 뜸북뜸북 노래를 한다는 혼자만의 상상이 어긋나고 말았을 때 참혹하게 거두어졌다. 나는 얼마나 순한가.
시인이 알에서 부화시키고 조석으로 모이를 주어 기른 뜸부기는 살이 통통하게 올랐을 때 식용으로 팔려 간다. 시인의 뜸부기는 최고급 요리로 둔갑하여 호텔 식당의 우아한 바로크식 식탁에 진열된다. 성장을 한 여자와 남자가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시인의 뜸부기를 먹어 치울 때 시인은 홀로, 아무도 없이 그저 자기 홀로, 뜸북뜸북 뜸부기의 노래를 듣는다.
시인의 뜸부기는, 아니 뜸부기 시인은 아침저녁으로 뜸북뜸북 노래를 한다. 나는 너를 사랑해…….
새의 노래, 새를 먹어 치우는 사람들, 돈이 되는 뜸부기, 새를 팔아 사는 시인. 시인의 삶을 떠올릴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이런 잡한 소제목들이 나열된다. 그리고 나는 전율한다. 그러나 이 전율은 시인을 향한 절망에서 발생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는 이 거대한 모순의 슬프고도 기묘한 조화가 주는 경이 때문에 전율하는 것이다.
시인은 자신의 시 한가운데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나는 늘 소스라치며 마음으로 시인에게 묻는다. 뚜벅뚜벅? 어떻게? 무슨 나침반으로? 분해되거나 실종되지는 않았어?
기차는 나침반이 없이도 제 길을 달려 나를 목적지까지 실어다 놓았다. 다음 정착역이 김제임을 예고해 주는 열차 방송을 듣다가 나는 문득 바로 얼마 전에야 그 초록 앵무새를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의 손에서 진작에 떠나 버린 앵무새 인형을 나는 몇 년씩이나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었다.
새의 부리와 배가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세탁이 불가능했던 그것은 보기에도 흉칙스러울 만큼 실컷 더러웠는데도 그랬다. 건전지를 갈아 끼우지 않아서 단 한음절도 따라하지 못하는 누추한 앵무새는 올 겨울을 지낸 뒤에야 대청소라는 이름으로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단 한 번도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해 보지 못한 채.
「나는 너를」이거나「사랑해」로 나누어서 말할 수밖에 없었던 기계를 뱃속에 간직한 채 앵무새는 떠났다. 그리고 시인은 지금 뜸부기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먹히고, 아침저녁으로 노래하는 뜸부기를.
잊으신 물건이 없는지 살펴보고 내려 달라는 안내 방송이 무색하게도 내게는 하차의 준비랄 것이 전혀 없었다. 손가방만 하나 달랑 들고 동행도 없이 터덜터덜 플랫폼을 걸어가다 말고 나는 갑자기 주머니와 가방을 뒤져 차표를 찾기 시작했다. 내리기 전에 차표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깨달음은 곧바로 내 좌석 어디에 차표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깨달음은 곧바로 내 좌석 어디에 차표를 흘리고 왔음이 틀림없다는 결론으로 치달았다.
나는 언제나 그랬다. 나는 나를 믿을 수가 없었다. 하나에 정신이 팔리면 다른 하나는 까마득하게 잊고 마는 정신의 불균형에 대해 얼마나 많이 절망했던가.
기차는 이미 떠났고, 두고 온 기차표를 어디에서 찾으랴 하는 마음 때문에 가방과 주머니를 뒤지는 손길에는 믿음이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았다. 나는 결국 무임승차의 혐의를 받게 될 것이고 혐의를 벗어나가기 위해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이 뜸부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역무원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가 뜸부기를 알고 있기나 할까. 그러나 나는 내 손에 끌려 나온 기차표를 발견했다. 그것은 손가방 속 깊숙이에 접혀진 채로 보관되어 있었다. 열차의 좌석 어딘가에 기차표를 흘리고 내렸다는 내 결론은 틀린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오랫동안 빗나간 결론을, 어긋난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은 기차표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였다.
2
김제에서 금산사로 들어가는 국도의 가로수는 수령이 녹녹잖은 단풍나무들이다. 지난 가을의 이 길은 하늘에 붉은 융단이 깔린 듯했다. 가을 하늘의 푸른 빛깔과 화염 같은 붉은 이파리들, 그 사이사이 번쩍이며 내비치던 금빛 햇살의 광휘는 겨울이 다 지나도록 내 기억의 창을 물들이고 있었다.
가을에는 거칠 것 없이 붉었던 이 길이 지금은 푸르고 싱싱한 녹색의 물결을 이루고 있다. 주조를 이루는 색깔이 바뀐 탓이겠지만, 스치는 바깥 풍경은 지난겨울 동안 간직하고 있었던 기억 속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래서 나는 택시 기사에게 두 번쯤 이 길이 맞는지 확인을 하였다. 한 번은 정식으로, 그리고 또 한 번은 앞좌석의 기사에게는 들리지도 않을 만큼 우물거리는 형식으로 내 의혹을 표시하곤 이내 포기하였다. 기억에 대한 배신이 어디 이번뿐이던가.
추억의 영상은 한번 저장되었다고 해서 움직임을 멈추고 각인되어지지 않는다. 저장된 그 순간부터 기억은 저 혼자의 힘으로 운동을 시작한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처음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영상으로 바뀌어 버리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때로는 기억과 현실을 맞추려는 덧없는 노력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사람들은 가끔씩 지금 보고 있는 것보다 이전에 보았던 기억을 더 신뢰하고, 그것에 더 많은 의미를 두고자 하는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머리를 흔들어 그 속에 담긴 붉은 단풍나무의 환영을 털어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더욱 세게 머리를 흔들어서 톱밥이 가득 찬 것 같은 이 무딘 머리를 말끔하게 털어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지난 가을, 나는 친구들 몇 명과 이곳을 찾은 적이 있었다. 지금은 전주로 옮겨 앉았지만 금산사 입구에 한 친구가 살고 있었던 탓이었다. 서울을 떠나 바람도 쐴 겸 시골 살림에 재미가 붙은 친구를 찾아보자는 그 여행은 의도가 그랬던 만큼 머리 아픈 일 조금도 없이 온전히 휴식으로만 채워졌었다. 늦가을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고 있던 시월 하순이어서 끄트머리 단풍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도 알맞게 북적거려 축제의 분위기까지 풍겨주던 여행이었다.
그때도 서울역에서 같은 시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탔었고 거의 같은 시간에 김제역에 도착해 택시를 대절했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거의 여섯 달의 시차를 두고 똑같은 여로에 서 있는 것이었다. 그때는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들과 함께다소 들떠 있는 상태로 이 길을 밟았다면 지금은 혼자서, 물밑으로 가라앉는 듯 한 마음을 추스르면서 가고 있는 중이었다.어쩌면 그때의 거리낄 것 없는 휴식이 그리워 이곳으로 가보자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기계 앞에 앉아 끊임없이 모음과 자음을 찍어 내다 보면, 그런 어느 순간 삭제키를 눌러 흔적 없이 글자들을 없애버리고 다시 빈 화면에 자음 하나를 찍어 넣다 보면, 그 자음을 받쳐 줄 모음을 찾아 자판 위를 헤매다 보면, 그러다 보면 내가 지금 망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쩔쩔매게 되는 것이다. 망가진 것들을 위한 복원, 또는 휴식. 나는 좌석의 등받이에 몸을 묻고서 겨울을 지낸 나무들의 싱싱한 새 잎을 바라본다. 똑같은 식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별수가 없다.
나는 지난 가을에도 그랬던 것처럼 삼거리의 느티나무 아래서 택시를 내렸다. 그때는 여기에서 마중 나온 친구를 만났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다.
커다란 모과나무 두 그루, 가지가 찢어질 듯이 자잘한 감들이 매달려 있던 먹감나무가 세 그루, 단감나무와 굵은 가지의 벚나무도 한 그루씩 마당을 채우고 있던 친구의 옛집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친구는 과실수들이 많던 양지 바른 그 집을 팔아 버리고 전주에서 피자 가게를 열었다. 향기로운 모과와 신선하고 달콤한 먹감들 대신 친구는 밤낮없이 치즈와 양송이 냄새를 맡으며 남의 월세를 산다. 팔아 버린그 집이 눈에 밟혀 금산사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산다던 그 친구는 내가 지금 이 언저리에서 서성이는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어차피 이대로 되짚어 서울로 가는 마지막 기차를 타지는 않을 것이므로 나는 지난번 묵었던 바로 그 여관에 방부터 하나 잡았다. 아니, 이 표현에는 상당한 왜곡이 있다. 방부터 잡아 누군가에게 오늘 밤 묵고 갈 것이라는 약속을 하지 않으면 이대로 되짚어 서울로 가는 마지막 기차를 타고 말 것 같아서 나는 여관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일단 방을 하나 달라는 말을 던져 버리고 나자 조용한 평화가 찾아왔다.
방을 달라는 내 말에 한 점의 의혹도 없이 앞장을 서는 여관 아주머니의 뒷모습이 마치 운명의 신호 같았다.
나는 물릴 수 없는 패를 던져 버리고 말았다. 이것으로 나는 이 여행에 대한 끝없는 망설임에 자진하여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묵묵히 아주머니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하나의 숙제를 겨우 끝내 놓고 다음 숙제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방은 의외로 밝고 깨끗했다. 창은 뒤뜰을 내다보고 있었고 그 창에 활짝 피어난 벚꽃이 그림처럼 아른아른 내비쳤다. 지난번에는 길가에 면한 방에서 묵었기 때문에 상당한 소음을 감수해야 했었다. 물론 그때는 그런 것이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이 여관을 찾으면서 그 이상의 기대도 품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깨끗하고 조용한 방을 하룻밤 거처로 삼을 수 있게 되자 기분도 훨씬 맑아졌다. 다음에 할 일은 방을 나가서 때늦은 점심을 사먹어야 한다는 것도 확실하게 결정이 되었다. 이만큼의 확실함도 얼마 만에 가져 보는 것인가. 나는 가방에서 손지갑만 꺼내 들고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여관을 나왔다. 나오면서 보니 여관의 뜰에도 무너질 듯 가득 꽃 더미를 이고 있는 벚나무가 어려 그루 서 있었다. 낙화를 밟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날개를 달기 전에는 발밑에서 으스러지는 여린 꽃의 비명을 도저히 피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밥집들은 모두 상가에 모여 있었다. 식당과 기념품 가게, 춤을 출 수 있는 술집이 상가에 있는 업종의 전부였다. 단풍놀이 철도 아닌데 주차장에는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식당 여주인한테 물어 보니 단풍보다는 일제 때 심어 놓은 벚꽃나무가 더 장관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덧붙이는 말이, 요즘 사람 놀러 다니는데 계절이 어디 있느냐는 반문이어서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나 또한 그녀가 보기에는 계절에 구애 없이 놀러 다니는 사람일 것이고, 나 스스로도 소설 쓰기의 연장으로 여기에 왔으니 이것도 노동의 하나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은 탓이었다.
소설이 창작 노동이라는 개념을 마음의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데 아직까지 서투른 사람이 나였다. 어깨가 뻐근하거나, 약국에 달려가 파스 따위를 사다 등에 붙이고 뒤척이는 날이나 되어야 저작 노동의 고단함을 얼굴의 화끈거림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문학의 절대화나 신비화를 편들고 있지는 않으면서도 이 노동이 목숨 걸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제대로 ‘일용할 양식’이 되어본 적이 있었던가 하는 경계심 때문에 나는 이 뼛골이 빠지는 노동을 감히 노동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다.
소설 쓰기가 노동의 한 양상으로 분류되는 것의 미덕은 문학의 폐쇄화를 막아 준다는 데 있을 것이다. 기꺼이 열어 놓으며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 이 말은 곧 문학이 어떻게 하면 한 시대의 진정한 동반자가 될 수 있는지를 일러주고 있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또한 이 말은 기꺼이 열고자 하면서도 전부를 열어 보이려고 하지 않는 작가의 속성에 대한 질타처럼 내게 들린다. 내 마음의 저항은 이 열림과 닫힘의 반동에서 야기된다.
닫혀 있었기에 글쓰기의 품성을 배웠고, 열어야만 했기에 끝없이 회의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얼굴을 화끈거리지 않고 나의 일을 노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난 시대의 부채를 바라보면서 다른 이들은 또 어떻게 계급성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떤 것이든, 그 일이 무언가를 창조하는 행위라면, 그 노동에 의미를 두는 순간부터 오류가 시작된다. 문학은, 그것의 무게를 강조하면 할수록 떨어지기 쉬운 무엇이다. 강조할 대목은 삶이지 문학이 아니다.
점심때가 지난 시간이어서인지 식당 안에는 나밖에 없다. 주인아줌마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의 숙제를 봐준다고 언성을 높이며 열을 내고 있었다. 맨날 오락실이나 기웃거리니 이 모양이지, 하는 말이라든가 배달되어 오는 학습지는 한 번도 제 날짜에 푸는 꼴을 못 보았다는 푸념 따위는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익히 듣는 내용들이다. 늘어뜨린 발을 대롱대롱 흔들면서 마지못해 공부를 하고 있는 사내아이는 이제 국민학교 2학년이나 될까, 제 어머니의 꾸중을 건성으로 들어 넘기며 자주 바깥을 내다본다.
“장사한다고 놀자판 동네에서 애를 키우니 되는 게 없이 엉망이라요.”
컵에 물을 채워 주며 아주머니가 하는 말이다. 이 땅에는 이처럼 맹모삼천지교를 현모의 비결로 삼는 어머니가 많다. 강남의 8학군에 들어가 산들, 아니 이 땅의 어디에 터를 잡은들 맹모의 한숨이 사그라질 것인가. 밥값을 치르며 모자가 하고 있는 숙제를 들여다보니 문제집을 복사해서 나누어 준 듯한 시험지 풀기다. 아이는 봄에 피는 꽃, 여름에 피는 꽃을 가려내는 문제 앞에서 제 어머니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꼭 보도 못한 꽃들만 맞춰 내라고 하니, 지천으로 흔하게 널린 꽃 이름이나 제대로 배워 주면 그만이지, 무슨 수수께끼도 아니고.”
말하다 말고 푸, 웃어 버리는 여자 앞에서 나도 그만 싱긋이 웃고 만다. 공부도, 사는 것도 모두 수수께끼 같다고 생각하면 성마른 심정이 다소 누그러든다. 수수께끼 앞에서 무작정 화를 낼 수는 없다.
오늘 처음으로 밥다운 밥을 먹어서인지 식당에 들어오기 전보다 한결 안정이 된 상태다. 누군가 그랬다. 배가 고프면 우울증에 빠지니까 자꾸 먹어서 위를 빈 상태로 방치해 놓지 말라고. 그 말도 일리가 있다. 기분 전환에도 에너지가 필요한데 에너지를 채워 주지 않으면 우울에서 빠져 나오기가 힘이 들 것이다. 우울, 혹은 우물.
이제는 산보삼아 귀신사에 갔다 오면 해가 질 것이었다. 자동차를 이용하면 십여 분 만에, 걸으면 삼십 분 정도의 거리에 귀신사가 있었다.
귀신사는 내일 아침에 들러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새로 단청을 입혀서 울긋불긋하기가 새색시 색동저고리 같은 금산사는 지난번 둘러본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당장 가볼 만한 곳이 없었다. 아니, 이 말도 보다 정확한 진술로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사실을 말하면, 이곳에 오면 제일 먼저 귀신사의 텅 빈 적요 속에서 두어 시간쯤 앉아 있고 싶었다. 무작정 떠남에 있어 가장 많은 유혹을 던졌던 곳도 귀신사였다.
귀신사, 거기에는 무언가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계획 속에서 자꾸 귀신사 행을 뒤로 미루기만 하였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먼저 부닥쳐서 먼저 실망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 머릿속에 저장된 귀신사의 풍경 또한 어떤 모습으로 나를 배신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기대가 무너질 때에 대비해서 나는 스스로를 단련시킬 셈인지도 몰랐다. 김제역에서 곧장 귀신사로 가지 않은 것도, 그러면 방을 구한 뒤라도 바로 귀신사를 찾지 않은 것도, 그곳에 가도 점심 요기쯤은 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이곳에서 허기를 때운 것도 나름대로는 아끼고 감춰 둘 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지난 가을에 귀신사는 우선 이름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영원을 돌아다니다 지친 신이 쉬러 돌아오는 자리. 이름에 비하면 너무 보잘 것 없는 절이지만 조용하고 아늑해서 친구는 아들을 데리고 종종 그 절을 찾는다고 했다. 단지 서울에서 멀리 왔다는 것만도 흔감해서 애써 명승지를 찾아다닐 마음이 없던 일행은 여행의 구색을 맞춘다는 의미로 흔쾌히 귀신사를 찾았다. 확실히 그곳은 멀리서 일부러 들른 사람들에게 구경시켜 줄 만한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절임에는 분명했다.
본당의 문을 열어 빛이 사그라들기 시작한 금동불상을 보기 전에는 여느 여염집으로 여기고 지나치기 십상인 외양이어서 그때도 그 흔한 관광객 한 사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면 상당히 많은 말을 하고 있는 절이 귀신사였다. 드러나는 아무것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낡고 허름한 귀신사의 풍경은 여행 중의 온갖 화사한 기억을 다 물리치고 가장 오래도록 내 마음에 머물러 있었다.
경내도 좁고 볼 만한 석탑 하나 갖고 있지 않은 이유도 오랜 시간 마음으로 보고 마음을 채워 가라는 속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었다. 한 바퀴 휘 둘러보고 나와 버리려는 자는 사절, 이라는 팻말을 어디선가 본 듯싶다는 황당한 착각도 얼마든지 품게 만드는 그런 절이었다.아마도 나는 착각 속의 팻말에 충실하기 위해 여기에 다시 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 단지 스쳐 지났을 뿐이었다. 마음에 담을 것을 제대로 주워 담지 못하고 왔다는 생각은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점점 기억의 세부적인 영상들이 뭉그러지기 시작하자, 나중에는 아주 중요한 무엇을 거기에 놓아두고 와버렸다는 식으로 느낌이 굳어졌다.
빨리 가서 찾지 않으면 영영 사라져 버릴 무엇, 시효가 지난 뒤에 가면 버려지고 말 무엇. 거기까지 생각하자 갑자기 서둘러야겠다는 다급함이 솟았다.
나는 삼거리를 돌아 좌회전하려는 택시 하나를 붙잡았다. 그때 절 마당에 피어 있던 이름 모를 가을꽃은 지금 뿌리로만 견디겠지. 위태위태한 아름다움 대신 넉넉하고 다정한 꽃송이가 참 푸근했었는데. 가을의 그 마지막까지도 꽃잎 한 점 뭉개지지 않고 송이송이 많이도 피어 있었지. 지금도 처마끝 에서 풍경이 바람 소리를 내며 흔들거리고 있을까. 너무 낡아 단청 빛깔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 그저 세월에 바랜 나무의 단아한 갈색만이 흔들리는 풍경과 그 위의 푸른 하늘을 받아 내고 있었지. 절 뒤의 작은 동산에서 홀로 열매를 맺고 있던 오래된 감나무들은 이 봄에도 새 잎을 틔우며 하늘향한 해바라기에 골몰하고 있을 텐데. 꼭대기 가지에 열린 감들은 수십 년을 두고 산새들이나 입을 댈까, 사람의 손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을 걸, 그 때 우리는 바닥에 버려진 대나무 막대기를 휘둘러 터질 듯이 익어버린 달디단 감을 땅에 떨구곤 했었지. 그 맛은 얼마나 달콤했던가. 도시로 돌아와 며칠을 찾았어도 그런 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반 년 전의 감맛을 떠올리고 있는데 벌써 절 입구였다. 택시 기사는 휭하니 차를 돌려 오던 길로 달아나 버리고 나는 인기척 없는 동네를 기웃거리며 절로 가는 길을 밟았다.
인기척은 없었지만 발걸음소리에 내다보는 개들은 많았다. 사립문에 기대어 커다란 눈으로 낯선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개들은 내가 가까이 가면 슬그머니 꼬리를 사리고 뒤로 물러선다.
길의 왼쪽은 단감나무 과수원이고 오른편으로 대여섯 채의 집을 지나 모퉁이를 돌면 절이 보일 것이다. 길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다. 길의 끝까지 가서 몸을 돌려야 비로소 절의 옆구리가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흙에서 풍기는 향내를 맡으며 천천히 길을 올라갔다.
바로 그때였다. 곧 보게 될 귀신사의 모습에만 몰두라고 있던 내 귀에 찢어질 듯한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그리고 이내 귀신사 쪽에서 죽어라고 달려오는 여자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택시에서 내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하고 개들의 마중만 받았던 나는 눈앞에 나타난 여인이 실제인지 환상인지 구분을 못할 만큼 깜짝 놀랐다. 그럴 만도 했다. 여자는 맨발에다가 목단꽃 무늬가 화사한 긴 치마를 펄럭거리면서 달음박질을 치고 있었는데 쇳소리로 질러댄 비명의 주인공답지 않게 얼굴에도 환한 목단꽃 웃음을 그려 놓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는 잽싸기도 흡사 산토끼 같아서 단숨에 내 곁을 스쳐 바람같이 어느 집으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여자가 내 옆을 지날 때 나는 한 번 더 온통 흰 이빨이 드러난 팽팽한 웃음을 확인하였다.
소름이 돋던 그 비명은 그럼 환청이었던가, 하는 의혹을 품을 사이도 없이 이번에는 또 한 남자가 여자가 왔던 길로 구르듯이 내달려 오는 모습이 보였다.
남자한테선 비명은 없었지만, 딱 벌어진 어깨와 흰 런닝 셔츠 밑으로 뚜렷이 드러나는 늑골의 오르내림이 비명 이상의 거친 호흡을 선명하게 전달해 주었으므로 나는 다시 긴장하여 옆으로 비껴 섰다. 남자는 여자와 달리 내 곁을 바람처럼 씽하니 지나치지 않았다. 두어 걸음 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고 선 남자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훑어보았다.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주의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의 새된 외침이 들려 왔다.
“뭐하는 거야! 빨랑빨랑 들어오지 않고 뭘 우물거려?”
여자는 내 뒤쪽의 어느 집 담장에 기대어 서 있었다. 치마에 새겨진 굵은 목단꽃이 어지러울 만큼 붉었다.
“이런, 썅, 너 거기 가만있어!”
남자는 이내 활처럼 휜 늑골을 내보이며 덮칠 듯이 여자에게로 가버렸다. 남자가 여자의 어디를 어떻게 했는지 금방 여자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리고 그 위에 다시 숨넘어가는 여자의 깔깔거림이 겹쳐졌다. 나는 그때까지도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멍한 시선으로 그들 남녀가 사라진 대문 없는 집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 작은 소동 덕분에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빨리하여 귀신사를 향했다. 이제는 귀신사가 예전의 분위기와 같은가 다른가를 따져 볼 기분도 아니었다.
회상 속으로 들이밀었던 내 발은 아까의 남녀에 의해 호되게 짓밟히고 말았다. 진실로, 메마른 황토를 걷고 있는 오른발의 발가락 어디가 한순간 끓어질 듯이 아픈 듯도 싶었다. 따지고 보면 바로 그 남자와 여자가 나타난 순간부터가 이 여행의 첫 시작이었다. 이제까지는 반 년 전에 있었던 가을 여행의 연장이거나 그것의 반추에 불과했지 한 번도 새 경험에 마음을 후르르 떨어 본적이 없었다. 발가락 어디가 아팠다면, 그것은 꿈속인 줄 알고 여지없이 꼬집어 봤다가 느닷없이 껴안게 된 생살의 아픔일 터였다.
기억을 부숴 버리는 또 다른 경험은 마음을 다스릴 새도 없이 연이어졌다.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한 번 더 발가락을 꼬집어 봐야 믿을 수 있거나 말거나 할 상황이었다.
귀신사는 거기 없었다. 절은 뼈대만 남아 목하 보수 공사 중이었다. 적요 속에 잠겨 있으리라던 경내는 허리춤에 더러운 수건을 찼거나 귀 뒤에 피우다 만 담배를 찔러 둔 대여섯 명의 인부들로 온통 수선스러웠다. 작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마주 보고 있던, 위패를 봉헌해 둔 사당과 불상을 모신 본당은 커다란 기둥 몇 개만 남은 채 홀랑 껍데기를 벗어던진 모습으로 나를 맞았다. 게다가 드러난 안의 모습조차 내용물을 보호하기 위해 뒤집어씌운 거대한 너비의 누런 광목에 힘입어 불길한 느낌을 자아내기에 출분할 만큼 섬뜩했다.
아마도 볕에 바래지 않은 누런 광목이 주는 상갓집 분위기 탓이겠지만, 거기는 신이 지친 몸을 쉬기 위해 돌아오는 자리가 아니라 이제는 병들어 옴짝달싹도 못 하는 신이 마지막 숨을 거두기 위해 돌아오는 음산한 자리라고나 해야 맞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은 두 채의 건물을 돌아가며 세워 놓은 여러 개의 사다리들과도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신의 영혼들, 사다리를 타고 아득바득 하늘로 오르는 귀신들의 도포 자락이 보였던가.
그제야 바라본 지붕은, 절망의 빛깔 같은 기와를 이고 기와 틈 사이로 가늘가늘한 풀포기도 숱하게 살려 내고 있던 그 지붕은, 남김없이 벗겨져 흉측한 속살을 부끄럼도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지붕을 보고 완전히 정이 떨어져 경내에 들여놓았던 서너 걸음을 뒤로 물렸다.
말했듯이 서너 걸음만 절 안으로 들이밀었어도 볼 것은 다 볼 수 있을 만큼 귀신사는 작은 절이었다. 그렇게 좁은 공간 속으로 낯선 방문객이 들어왔건만 시멘트를 이기거나 널빤지에 대패질을 하고 있거나 한 인부들은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왜 왔느냐고 물어 주기나 했으면. 나는 돌아서지도 못한 채 어쩔 줄 몰라 서성거렸다.
모래를 걸러 내는 체가 걸려 있고, 그 밑으로 수북하게 모래무덤이 솟은 자리가 큰누이의 얼굴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꽃송이가 뿌리를 내리고 있던, 바로 그 자리였다는 생각은 분해된 귀신사에 실컷 실망을 하고 난 다음이었다.
실컷 기억에 배신을 당해 놓고도 그때까지 나는 귀신사를 벗어날 마지막 한 걸음을 떼어 놓지 않고 있었다. 아직 뒤 안의 감나무 동산과 그 누이 같던 정다운 꽃송이를 기억과 비교하지 못한 탓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마도 나는 뒤 안의 감나무를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만년과(萬年果)쯤으로 마음에 잡아 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얼마든지 배불리 따먹어도 따낸 흔적도 없이 언제나 가지가 휘도록 달디단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는 그 만년과. 그렇게 비유하자면 마당에 소복이 피어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던 그 누이 같던 이름 모를 가을꽃은 우담바라화(優曇鉢羅花)였다.
3천 년에 한 번씩 꽃을 피운다는 그것, 단 한 번만 그 향기를 맡아도
온갖 시름과 눈물이 다 사라진다는 우담바라꽃을 귀신사에서 보게 되리라고 기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담바라는 흔적도 없었고 대신 그 자리에 모래무덤만 솟아 있는 것이었다.
나는 차마 눈을 돌리지 못하고 곱게 걸러져 나온 봉긋한 모랫더미를, 그 속을, 한 치 아래의 땅속까지도 들여다보겠다는 듯이 서 있었다. 만년과를 보려면 인부들 사이를 뚫고 본당을 거쳐 둔덕을 올라야만 했다.
거기에 주홍의 열매가 있지 않다는 것은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봄에 열매를 맺는 감나무는 없으니까. 그러므로 뒷동산에 올라야 할 이유는 만년과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기어이 거기에 가야 할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자 또렷하게 절을 떠받들고 있던 예전의 적요가 떠올랐다. 그랬다. 나는 아직 적요를 만나지 못했다. 나는 교교한 고요 속에 온몸을 담그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목 밑까지 흠뻑, 몸속의 모든 것을 다 증발시켜 버리고 남을 만큼 오래.
마당을 가로지르는 나를 가로막는 사람은 없었다. 절 옆 어느 집의 낮은 담장 너머로 웬 백발의 할머니만 나를 예의 주시하고 있을 뿐 인부들은 갖가지 연장을 뛰어넘고 비껴가며 통과하는 나를 여전히 본 척도 하직 않았다.
불사(佛師)인 탓인가, 인부들은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한다. 그 묵묵함조차 저기 벌거벗은 건물 안의 누런 광목의 힘이 그렇게 시키는 듯 하여 나는 광목으로 뒤덮여진 불상이며 죽은 자의 위패 따위를 보지 않으려고 애써 시선을 피했다. 그 다음에 내가 본 것은 가득 쌓여진 새 기왓장과 스티로폴들, 그리고 건물의 잔해로 짐작되는 뜯어낸 나뭇장들이었다. 뒷동상은 창고 역할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나는 고개를 우러러 그래도 청청한 잎을 가지마다 가득 피우고 있는 푸른 잡목들과 잡초 사이에 끼어서도 숱하게 얼굴 내밀고 있는 하얗고 노란 이름 모를 풀꽃들도 바라보았다. 다행히 더 이상의 훼손은 없었다. 건축 자재는 뉘어진 대로 누워 있을 것이다. 움직이는 존재는 나밖에 없으므로 나는 기꺼이 이 푸른 창고에서 적요를 맛볼 것을 작정하였다.
어쨌거나 이제 나는 좀 쉬고 싶었다. 앉고 보니 벌거벗은 귀신사의 지붕이 환히 내다보이는 자리였다.
바람은 훈훈했고 이름 모를 작은 날것들은 분주히 숲 덤불을 오가고 있었다. 나는 이대로 풀밭에 드러누워 한숨 달게 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그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감은 눈 속에서 귀신사의 평화를 회상하기라도 했을 터였다. 그런데 그때 인부 하나가 언덕을 올라와 쌓아 놓은 헌 목재 더미를 뒤적거렸다.
나는 그가 필요한 것을 찾아 이내 내려갈 것이라고 믿었다. 흰 런닝 셔츠는 어쩐지 낯이 익었지만 미처 아까의 그 씩씩거리던 남자를 떠올리지는 못하였다.
길이와 너비가 제각각인 판자들을 뒤적이던 사내가 갑자기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던질 때까지도 나는 그 사내의 말을 받아야 할 사람이 왜 나인지 정녕 알 수가 없었다.
“틀림없네요.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맞지요?”
나는 별수 없이 뒤를 돌아다보았지만 거기 누가 있을 턱이 없었다. 남자는 분명 나한테 말하고 있었으니까.
“오산에서 국어선생 했던 분이 아니냐구요? 오산을 잊었다면 고흥 밑의 거금도, 거금도는 아시겠지요.”
거금도? 나는 중인환시(衆人環視)에 내 일기장을 발각당한 기분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거기 거금도 오산에서 나는 첫 교직의 일 년을 보냈었다. 물론 그가 말한 대로 국어를 가르쳤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누구인가. 나는 그제야 남자가 아까 산발한 머리의 여자를 쫓던 바로 그 사내인 것을 알아챘다. 그렇다 해도 이 남자는 누구인가.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에이, 그만둡시다. 애써 기억할 것도 없는 위인이니까. 뭐, 그냥 오산 사람이었다고나 합시다.”
그래도 사내는 굉장히 반갑다는 표정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내 옆에 풀썩 주저앉아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들었다. 담배를 들고 있는 오른손 엄지 한 마디가 뭉툭하다. 저 뭉툭한 손가락, 거기에 느닷없이 바다가 출렁거린다. 나는 의구심을 가질 새도 없이 그에게 숙자 오빠가 아니냐고 물었다.
“용케 기억을 하십니다, 그려. 하기야 오산 사람치고 이 김종구를 모른다면 거짓말이지요. 그래서 나도 오산을 떠났지만서두.”
사내는 볼이 미어지도록 힘껏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면서 히죽 웃었다.
김종구라, 나는 이 느닷없는 옛 기억과의 조우에 얼떨떨한 채로 남자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선이 뚜렷한 눈썹과 약간 각이 진 듯한 이마, 그리고 굵은 고랑의 긴 인중은 역시 낯이 익었다.
우리 사이에 가로놓인 십오 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금 그의 얼굴에서 출렁이는 바다를 보았다. 십오 년 전의 바다가 거센 파도의 으르렁거림으로 다소 불안한 것이었다면, 지금 그의 얼굴에 새겨진 바다는 거칠기는 해도 폭풍의 징후는 없는 그런 것으로 내게 비쳤다. 그래도, 다시 말하지만, 그를 알아봄과 동시에 나는 그가 여전히 바다의 사람임을 알아보았다. 이 말은 그가 바닷가에서나 살아야 할 존재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군데에 붙잡아 둘 수 없는, 물결에 휩싸여 세상 곳곳을 다 굽이쳐 흘러야 하는 그런 운명의 생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이 바다의 사람일 것이었다.
“제가 어떻게 금방 선생님을 알아보았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사실은 지난번에 선생님 사진을 몇 장 보았거든요. 숙자년이, 내 동생말입니다, 잡지에 난 선생님 사진을 오려서 간직하고 있답니다. 하여간 뭐든 잡동사니 모으기를 좋아하는 그 애 버릇은 여전합니다. 글쎄, 국민학교 시절의 공책까지 싸짊어지고 시집을 갔다면 더 말할 게 없지요”
김숙자. 뒷자리에 앉아서 가는 목을 빼고 나를 쳐다보려고 애쓰던 아이. 조카아이를 업고 삶은 멸치에서 새우며 꼴뚜기 새끼를 골라내다 나를 만나면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고개를 푹 숙이던 숙자는 김종구의 누이동생이었다. 그러자 곧 이어서 그 시절의 김종구를 회상하게 해주는 몇 개의 삽화가 차근차근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넷. 지금 이 자리에서도 꺼내 볼 수 있는 삽화는 모두 네 가지쯤 되었다.
그것들 모두가 하나같이 선명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실마리만 풀어 주면 다시 되찾을 수 있는 기억이 얼마나 많은가.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헝클어지는 것이었다.
김종구에 대한 첫 번째 삽화는 내가 숙자의 담임이었으므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 섬의 중학교가 나에게 첫 발령지였다. 남녀 한 학급씩 전교 여섯 반의 단출한 섬 학교는 운동장 발치에 시퍼런 바다가 누워 있었다. 밤이고 낮이고 불어 대는 바람에 성한 게 하나도 없던 교사(校舍)의 문짝들,폭풍이 불면 바다가 갤 때까지 속수무책으로 갇혀 있어야 했던 우울한 나날들.
단지 바다 때문에 거기까지 갔으면서도 사방이 바다인 그곳의 일 년은 극도의 우울과 조바심뿐이었던 것을 지금도 나는 명료하게 풀어 낼 수가 없다.
젊은 날의 한때를 해석해야 하는 일처럼 난감한 게 어디 또 있을까. 젊음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욱 어긋나는 분석.
그것보다는 숙자의 무단결석을 이야기하는 일이 훨씬 쉬울 것 같다. 삽화는 거기서부터 시작하니까.
그곳에서 나는 전 학년의 국어를 가르쳤고 2학년 여자반의 담임을 맡게 되었다. 제 나이대로 진급을 할 수 없었던 낙도의 사정으로 아이들은 모두 숙성했고 3학년쯤 되면 교사인 나보다 더 어른스럽게 세상을 굽어보는 아이들도 많았다. 실제로 그 애들이 나보다 더 현실적으로 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부인할 수 없다. 교실에 뱀이 들어오면 아이들이 쫓았고, 가정 방문을 하게 되면 노를 저어서 이웃 마을로 나를 데려다 주는 일도 그 애들이 했다.
집에서도 어른 몫을 단단히 하는 아이들이어서 멸치잡이가 한창일 때나 김을 뜨는 겨울이 오면 학과 진도를 나가기 어려울 만큼 교실이 텅 비곤 했다.
숙자의 무단결석도 그 때문이었다. 새 학기를 두 달도 채우지 못하고 그 애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을 시켜 사정을 알아본즉 오빠가 살림을 맡으라고 윽박질러서 학교에 올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숙자 오빠를 ‘징허게 독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이 마을이 고향인 수산 선생도 ‘자칫하면 깡패로 풀렸을 망나니’라고 평했다.
뭍에서만 떠돌다가 숙자 큰오빠가 바다에서 실종된 작년에 어디선가 소식을 듣고 돌아와 늙은 어머니와 여동생을 거두는 시늉은 하고 있으니 그만해도 기특하지 않으냐는 것이 수산 선생의 설명이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 만삭의 여자 하나를 데려왔다는 것, 그 여자는 몸을 풀자 이내 다시 뭍으로 도망을 쳤다는 것, 결국 숙자가 어미 없는 갓난 조카까지 돌봐야 한다는 것 등, 여러 가지 가정 형편들을 수소문한 다음 나는 직접 숙자네 집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번번이 허탕이었다.
세상 가난에 시달려 이미 기력이 다한, 늙고 병든 숙자 엄마는 눈곱이 잔뜩 낀 눈을 껌벅이며
“이 늙은 것이야 자식이 시키는 대로 헐 뿐이지요”라고 말만 되풀이할 뿐이고, 나만 보면 얼굴이 빨개져서 마당에 널린 멸치나 뒤적이며 고개도 못 드는 숙자한테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터였다. 나는 별 수 없이 해변가의 멸치 막으로 직접 숙자 오빠를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바다에서 건져 온 멸치는 멸치 막에서 삶는 과정을 거쳐 햇볕에 말려진다. 마을 동편의 돌밭에는 커다한 가마솥을 걸어 놓은 막이 여러 개 있었다. 데리고 온 숙자는 그중 새로 지은 듯싶은 하나를 가리키며 저기 오빠가 있다고 말했다. 김이 오르는 가마솥과 시뻘겋게 타고 있는 아궁이의 장작불 앞에 웃통을 벗어부친 한 사내가 보였다. 숙자가 먼저 가서 내가 왔음을 알리는 동안 나는 멀찌 감치서 짐짓 바다를 보며 기다렸다.
김종구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하던 일을 다 끝낸 뒤에야 어슬렁어슬렁 돌밭을 가로질러 내게로 왔다. 제 오빠와 서너 걸음을 차이 두고 잔뜩 오그라든 몸으로 뒤를 따르는 숙자를 보면서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귀찮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수다. 이해해요. 선생 경험이 없으니 교과서가 시키는 대로 할밖에.”
수인사 따위는 주고받을 시간도 없었다. 김종구는 다짜고짜 그렇게 말을 꺼냈다. 굵은 눈썹 아래의 부리부리한 두 눈은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으며 내가 무어라 응수를 하기도 전에 돌밭에 침을 찍 뱉고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집에 여자라곤 신경통으로 기어 다니는 늙은 어머니하고 숙자 저년밖에 없어요. 보셨으니 그거야 알고 계실 테고, 또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거요?”
그 다음에 내가 할 말은 없었다. 얼굴에 칼자국이 두 군데나 그러져 있는 사내한테 나의 교사 체면이 어떻게 구겨지고 말 것인지 그것이 약간 불안할 뿐이었다. 이 학부형한테 교사의 학생에 대한 애정, 혹은 학생의 장래 따위를 말할 생각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판이었다. 그리고 김종구 본인이 그런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말라는 듯 단단히 못을 박고 있었다.
“왜들 이 뻔한 사실을 잊고 있는지 모르겠소만, 사는 일이 가장 먼저란 말이오. 사는 일에 비하면 나머지는 다 하찮고 하찮은 것이라 이 말입니다. 먹고 사는 데 질서가 잡히면 선생이 말려도 숙자는 다시 학교에 나가요. 아마도 내년에는 숙자 년이 교실에 앉아 있는 것을 볼 거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 선생이 내년에도 여기에 있기만 한다면.”
그리고 김종구는 괜한 장작불만 타고 있다면서 역시 인사도 없이 멸치 막으로 돌아갔다. 오빠의 무례에 거의 사색이 되다시피 한 숙자는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처음의 초조함에 비하면 김종구가 보여 준 행동은 오히려 예상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말로 자기를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 또한 새겨들을 만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기도 했다.
숙자의 손을 잡고 돌아오면서 잠깐 돌아보니 김종구는 다시 웃통을 벗어부친 채 끓는 가마솥에 멸치를 집어넣는 삽질을 하고 있었다.
두 번째 삽화는 초여름의 햇살이 따가운 바다를 배경으로 한다. 그는 바다에 누워 있었다. 정말이었다.
그는 한 치의 거짓도 없이 현실을 떠나 바다에 누워 있었다.
그때 나는 종선에 옮겨 타기 위해 금어호의 뱃전에서 대기중이었다. 아마도 주말을 맞아 고향의 집에 다녀오던 길이었을 터였다. 뱃길 두 시간에 버스 다섯 시간을 견뎌야 집에 닿았으므로 섬에서의 외출은 한 달에 한 번도 어려웠다. 그랬으므로 돌아오는 길에는 두 손에 다 들 수 없을 만큼 짐이 많았고 멀리 마을의 집들이 보일 무렵에는 차멀미에 반죽음이 되어 있기가 십상이었다.
마을의 선착창은 위치가 썩 좋지 못하여 밀물 때나 겨우 선착장에 금어호를 댈 수 있을 뿐 그다지 크지도 않은 금어호는 대개 바다 한가운데에서 종선을 기다려 손님들을 하선시켜야 했다. 게다가 이 종선 또한 어찌나 칠칠치 못한지 저만큼 중학교 뒤로 금어호가 나타나면 대뜸 출동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배가 바다 복판에서 기관을 끄고 있을 즈음에야 닻을 걷어 올리고 노를 삐거덕거리며, 수없이 옹송그리고 있는 거룻배 사이를 밀고 밀리며 느릿느릿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바로 그러한 때에 나는 김종구를 보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를 싣고 있는 배를 보았다. 양수기를 단 통통배였다. 배는 엔진이 꺼진 채 일엽편주처럼 흔들흔들, 마침 알맞은 물때를 만나 저 멀리에서 우리 배를 향해 흘러오고 있었다. 배가 어느 정도 가까이 와서였다. 쌀가마 위에 올라앉아 늦은 종선을 타박하고 있던 마을 사람 하나가 기가 막히다는 듯 소리쳤다.
“웨따메 저기 종구놈 아녀, 잉?”
“맞네, 종구여. 허어, 하여간 배포 하나는 클씨. 저 자슥 팔자 좋게 처자는 것 좀 보소.”
“자가 해우 말목 빼러 갔다가 정신 빼불고 오네 그랴. 얼메나 처먹었으면 조로콤 시상 모르고 자버린디야. 엥간히 자라고 소리 좀 쳐!”
“냅둬, 머 할라고 깬디야. 지놈 알아서 허겄지. 저러다 북풍이나 불믄 저기 여우섬으로 떠내려갈 거구만.”
그가 타고 있는 배는 마을 사람들의 입방아에도 불구하고 잘도 흘러 금어호를 지척에 두고 스쳐갔다. 출렁이는 나뭇잎 배에 네 활개를 펴고 잠들어 있는 김종구의 모습도 똑똑히 내려다보였다. 시퍼런 바닷물이 밑그림이 되어 그는 영락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누워 있는 듯이 보였다. 등짝 밑으로 험상궂은 파도가 으르렁거리고 있을텐데도 잠들어 있는 그의 얼굴은 낙조에 물들어 그럴 수 없이 평화스럽게 보였다. 그 평화가 부러웠던가. 부럽고 아득해서 뱃전에 달라붙어 그리도 오래 흘러가는 배를 눈을 좇았던가.
지금도 나는 그날 바다에 누워 있던 그의 얼굴과 팔뚝을 물들이던 황금빛 노을을 아주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 물결에 출렁일 때마다 사방으로 부서지던 그 눈부신 빛살. 요람 속의 평화를 가득 싣고 있던 그 통통배.
그러고 보면 지금도 서편 하늘에 투명한 노을이 걸려 있다. 그러나 여기는 바다가 아니다. 산이다. 나는 새삼 김종구의 외양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남자는 지금 마흔을 훨씬 넘었을 것이다.
그러나 순간적이긴 하지만 쏘는 듯한 시선, 팔뚝에 드러난 굵은 힘줄, 근육으로 뭉쳐진 상체의 단단함은 도저히 마흔을 훨씬 넘긴 그것이 아니다. 하지만 가끔씩은 쉰 살은 예전에 지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가기도 한다. 이마의 잔주름과 눈꼬리에 엉겨 붙은 피곤함이 의심의 근거랄 수 있다.
“그렇게 한심한 눈으로 사람을 뜯어보지 맙시다. 선생님이 무슨 생각하는지 내 다 알지요. 늙어 죽을 때까지 공사판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가련한 인생이구나 여기겠지만, 천만에요. 이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지붕 씌운 곳에서 갇혀 일하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숨이 콱 막히거든요. 마흔 지난 지 몇 해가 되었지만 아직 이 몸뚱어린 쓸 만하죠. 몸뚱어리 하나 믿고 하늘에 구름 가듯 떠도는 게 좋아요 훌쩍 떠날 수 있으면 훌쩍 오는 거예요.”
그랬다. 김종구에게는 예전부터 사람의 마음을 읽어 내는 재주가 있었다. 그의 말에 언제나 가시가 박혀 있는 것처럼 들리는 것도 숨겨진 마음을 환히 보아 버리는 자의 별수 없는 어투일 것이었다. 섬에서의 요란한 싸움들도 대개는 그의 사정 봐주지 않는 야유가 발단인경우가 많았었다.
김종구는, 많이 달라진 것 같으면서도 가끔씩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느낌을 내게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 대한 진전 없는 탐색을 멈추기로 했다. 또한 그는 이제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그러나 김종구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 그는 잠시만 기다리라면서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벌떡 일어나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기다리라는 말이 아니더라도 동산을 내려갈 생각은 없었지만, 기다리라는 말 때문에 동산에 더 남아 있으려던 원래의 마음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간으로 봐서 김종구의 하루 일도 다 끝나 갈 때였다. 일을 마감하고 돌아온 그와 마주 앉아 특별히 더 할 이야기가 있던가. 김종구의 생에 대한 관심이야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시간을 연장해 가면서까지 캐낼 만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의심스러웠다. 설령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하더라도 십오 년 전에 잠깐 알았던 사람과 이 이상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이 내게는 못내 불편한 일이었다. 길어지면 외로움이 덤벼서 그렇지, 혼자의 시간이 편한 법이었다.
어쨌거나 그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는 기다려야 할 일이었다. 그저 바람이나 쐬려고 나선 여행이라는 말을 이미 해버린 터에 급작한 볼일이라도 있는 듯이 사라져 버릴 수 는 없었다.
나에게는 그래도 섬 생활 일 년의 의미가 묻어 있는 해후일 수 있지만 그한테는 거의 아무 의미도 없을 이 만남이 내가 원하지 않는 한 길어질 턱은 없을 것이었다. 십오 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도 김종구한테 그런 곰살맞음이 있었던 것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그러기는커녕 내가 간직한 그에 관한 세 번째 삽화는 상당히 진저리쳐지는 구석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 삽화는 소재부터가 섬?하다. 날이 새파란 손도끼, 염소의 골통, 그리고 이중(二重)의 죽음과 구역질. 그 속에 김종구가 있었다. 섬에서는 특별한 날이 돌아오면 곧 잘 풀어 놓고 먹이던 검정 염소를 잡곤 했다.
학교에서 자취방으로 가는 길의 야산이 검정 염소들의 방목장이었다. 육고기에 주려 있게 마련인 섬사람들한테는 염소가 잡아야 푸짐하게 고기 맛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잔치에는 열 명도 못되는 중학교 선생들이 총동원되어 잔치의 상석을 차지하고 앉는 것도 관례였다.
염소를 식용으로 생각해 보기는커녕 되레 그 짐승에게 강한 친밀감을 느끼고 있는 염소띠 인간인 나로서는 마지못해 가는 자리였지만, 다른 남자 교사들은 섬생활 서너 달이면 염소고기에 맛을 들이고 절대 사양을 하지 않았다. 마음 사람 거의가 고기 맛을 봤던 육성회장 집 잔칫날, 그날 김종구도 거기에 있었다.
염소를 잡게 되면 죽인 직후의 생피를 마시는 것과 삶은 골통을 쪼개 골을 꺼내 먹는 것이 제일 알짜라는 이야기는 누누이 들은 바가 있었다. 그러나 자리에 앉자마자 쟁반 세 개가 동원되어 각각에 염소 머리 하나씩이 담겨져 나오는 광경은 너무 끔찍하고도 갑작스러웠다.
대개는 손님을 청한 쪽이 부엌에서 적당히 처리해 내오게 마련인데 머리가 세 개나 되다 보니 곧바로 쪼개 먹는 쪽이 편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던 모양이었다.
마루 한가운데 염소머리 세 개가 놓이자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김종구를 쳐다보았다. 마치 너 말고 누가 이짓을 하겠느냐는 듯이. 그러고 누군가 그에게 날이 새파랗게 선 손도끼를 건네 주었다.
김종구는 사람들을 휘둘러 본 다음 말없이 손도끼를 받았다. 그의 입가에 맴도는 냉소를 본 것이 나뿐이었을까. 그는 잔인함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하게 읽어 낸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새삼스럽게 숫돌에 도끼를 날을 벼리는 일부터 시작할 이유가 없었다.
쓱싹쓱싹. 음산한 숫돌의 마찰음을 들으며 사람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과 공포의 순간에도 사람들은 침을 삼킨다. 마치 기름진 음식을 상상하듯.
이윽고 숫돌작업이 끝나자 그는 마술사들이 흔히 시도하는 시선 끄는 도입부도 실천해 보였다. 손바닥으로 슬슬 손도끼의 날을 쓸어 보는 그 유혹의 순간들이 흐르는 동안 김종구 주위의 몇몇이 슬쩍 뒤로 물러섰다. 사람들은 김종구의 눈에서 살기를 읽었고, 나는 경멸을 읽었다.
마침내 털 뽑힌 염소의 둥근 두상 하나가 통나무를 큼직하게 반 잘라 만든 도마 위에 얹혀졌다. 반쯤 눈이 감겨진 염소의 머리는 시장바닥의 좌판에서 흔히 보는 돼지머리와 사뭇 달랐다.
삶은 돼지머리가 감은 눈과 위로 치솟은 콧구멍, 그리고 투정하듯 내밀어진 입으로 인해 희화된 모습이라면, 염소의 그것에는 비애가 서려있다. 죽음 앞에서 깜짝 놀란 모습이 어김없이 담겨 있기로는 염소를 따를 짐승이 없다. 염소는 유독 겁이 많은 짐승이니까.
김종구는 염소머리를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며 도끼의 날이 박힐 자리를 신중하게 모색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부러 그러는 게 분명한 , 과장된 몸짓을 보여 주며 잔뜩 시간을 끌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걸 원할 때까지는 얼마든지 보여 줄 수 있다는 자세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손도끼가 번쩍 허공을 가르며 솟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김종구의 입에서 야릇한 기압 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합과 함께 땅, 하는 암팡진 소리가 울렸고 벌어진 골통 속으로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하얀 골이 드러났다. 젓가락을 들고 그 순간을 기다리던 남자들은 너나 할 것 업이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골통 속으로 젓가락을 들이밀었다. 천 번째 염소머리가 상으로 올라간 지 몇 분, 눈 깜짝할 사이에 머리는 두개골로 변해 쓰레기통으로 던져졌다.
사람들 뒤에서 담배 한 대를 피고 난 김종구는 묵묵히 도마위에 두 번째의 염소머리를 얹었다. 이번에는 시선끌기 같은 광대짓은 없었다. 두 번째, 세 번째의 골통 또한 단 한 번의 도끼질에 어김없이 두 쪽으로 갈라졌지만 첫 번째 이후로는 사람들의 탄성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들 뜨끈뜨끈한 골이 식을까 봐 정신없이 젓가락질에만 매달렸다.
그러나 내가 지켜본 바로는 그 손길 속에 김종구의 젓가락은 없었다. 내가 본 것은 세 개 의 염소머리를 해치운 뒤 황급히 소주 한잔으로 목을 적신 다음 말없이 육성회장 집을 빠져나가는 그 뒷모습이 전부였다. 둘러앉아 허겁지겁 염소의 골통을 파먹고 있던 사람들은 김종구가 사라지는 줄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세 번째 삽화는 진저리쳐지는 느낌말고도 묘하게 비애를 깔고 있다. 그러고 보면 김종구는 그때 이미 위선과 타협할 수 없는 국외자로서의 비애를 깨닫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뒤 십오 년의 세월이 그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공사판을 떠도는 김종구의 지금 삶은 필연적인 것이리라. 삶의 비밀을 엿본 자에게 붙박이 삶이 가능하기나 할 것인가.
나는 조금씩 이 예기치 않은 조우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십오 년은? 그리고 나의 십오 년은? 마침 그때 김종구가 말끔한 모습으로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옷도 갈아입었고 세수도 한 모양이었다.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머리칼에는 눈에 보이게 먼지가 끼어 있었지만 귀가하는 가장으로는 손색이 없는 차림새였다.
“갑시다.”
그는 마치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던 일이라는 듯 단호하게 나를 재촉했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났다.
“우리집으로 가자는 겁니다. 아까 보신 팔팔 뛰는 잉어 같은 그 계집이 내 마누라예요. 일이 끝난 뒤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황녀한테 먼저 문안을 드려야 한답니다. 갑시다, 황녀한테.”
나중에야 눈치를 알아차린 사실이지만, 성이 황(黃)가인 마누라를 그는 마치 황녀(皇女)인 듯이 호명했다.
“갑시다. 벌써 기가막힌 찌개를 끊여 놓고 담장에 매달려 나 오기만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황녀는 낮잠 자다가도 이 김종구 생각나면 맨발로 뛰어서 달려온답니다. 아주 화끈한 여자지요. 황녀는 손님 오는 것을 아주 좋아해요. 그래야 지가 왕년에 뽐냈던 솜씨를 보 여 줄 수 있거든요. 솜씨요? 아, 그거 별거 아녜요 고게 단소를 좀 불어요. 단소 , 아시지요? 화녀의 단소 가락, 그거 사람 죽여요.”
자신의 말이 좀 많다 싶었는지 김종구는 거기서 자르듯이 말을 끊고 가만히 내 반응을 기다렸다. 나는 역시 의례적인 말로 그의 초대를 사양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관심이야 있었지만 관심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래도 관습이었다. 이제 와서 십오 년 전의 학부형을 만났다고, 그것도 서로간에 깜짝 놀랄 만큼 반가운 사이도 아닌 약간의 인연을 빌미로 남의 거처에 불쑥 뛰어들어 저녁을 얻어먹는 일은 관습적으로 영 어긋나는 것 같다는 것이 여태도 내 판단이었다.
김종구는 나의 사양에 굉장히 실망스럽다는 얼굴이었다. 그는 자신의 머리 한 뼘 위에서 차랑거리는 감나무 줄기 하나를 확 나꾸어챘다. 그리곤 가지 끝을 입에다 쑤셔 넣고 그것을 잘근잘근 씹으며 아주 잠깐 숨이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이, 아직도 이조시대 말을 사용하고 있어요?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하는 식의 원님 동헌 마루에서나 굴러다니는 말본새라면 이가 갈리는 놈이 난데, 제길, 작가 선생까지 그러시깁니까? 제발 덕분에 그런 허깨비 같은 말씀일랑 고만두시고, 우리 집에 갑시다. 밥 한 끼는 대접해야지요.우리 황녀 좋아하는 얼굴도 좀 보시고. 그거, 아주 괜찮은 계집입니다.”
그리곤 두말도 없이 앞장서서 휘적휘적 걸어갔다. 나는 별수없이 김종구의 뒤를 따라 언덕을 내려왔다.
가족이나 허물없는 친구가 아니라면, 남하고 같은 상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일이 나는 여태도 불편하기가 짝이 없다. 다른 일이라면 적잖이 누그러진 구석도 없지 않으면서 밥은, 삼키고 씹어야 하는 식사는 잘 안 된다. 한 상에서 같이 밥을 먹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는 사이가 되기까지는 얼마나 같이 밥을 먹어야 할 것인가, 나는 그게 아득하다. 너무 아득해서 시작조차 하고 싶지 않다.
귀신사 뜨락은 그새 아무도 업이 텅 비어 있다. 인부들은 절담 너머, 아까 나를 주시하던 할머니 집에 다 모여 있었고 김종구는 절 앞에 이르자 또 한번 나를 기다리게 하고 그 집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마당에 피어오른 연기, 불꽃 위에 얹혀진 슬레이트 조각으로 미루어 인부들은 거기서 돼지고기를 구워 먹을 모양이었다. 철판보다는 요철이 있는 슬레이트가 기름도 잘 빠지고 돌구이 맛을 낼 수 있어 공사장 같은 데서 곧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김종구는 주머니에 무언가를 쑤셔 넣으며 곧장 돌아왔다.
“오늘이 간조날이거든요. 비 땜에 이번 간조는 형편없어요. 초파일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끝내기야 하겠지만, 인부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김종구는 품삯이 들어 있는 바지 주머니를 보란 듯이 두들기다 말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웃기는 일입니다. 대체 뭐 하러 이 짓을 합니까? 목수하고 이 절에 처음 온 날이 마침 비 오는 날이었어요. 첫눈에 야, 이건 굉장한 절이다, 라는 느낌이 확 들었지요. 전국의 이름난 절들 나도 숱하게 봤지만 이런 절은 처음이었거든요. 작가 앞에서 문자 쓰기 거북하지만, 뭐 생사를 초월한, 그런 인생무상 같은 게 가슴을 찍어 누르대요. 그런 절을 싹 뜯어서 울긋불긋하게 만들겠다니 얼마나 웃기는 짓이에요. 말도 안 되는 짓을 한다길래 첨에 이 일에 손뗄라고 그랬지요. 그런데 왜 마음을 바꾸었는지 아십니까. 조금이라도 덜 웃기게 만들기 위해선 내가 있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지요. 이건 정말이지 순순한 내 충정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짓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구요.”
나는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김종구도 그렇게 느꼈던가. 귀신사에 대해 그도 남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던가. 그래서 기꺼이 제동장치의 역할을 맡아 보수 공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그의 말은 단숨에 나를 그에게로 끌어당겼다. 그 말은 김종구라는 인간을 재고 있던 나의 잣대를 사라지게 하였다. 그에게 잣대를 들이밀다니, 나는 얼마나 교활 인간인가. 십오 년 전의 그와 지금의 그를 수시로 비교하며 인간을 저울질하는 나는 얼마나 편협한가. 다소 무참해진 나는 귀를 열어, 소위 청취의 자세로 돌입하였다. 그리고 이 자세는 그와 헤어질 때까지 여일하였다.
“참 한 가지 당부가 있는데 이건 꼭 유념을 하셔야합니다. 우리 황녀의 단소 가락을 듣게 되면 무조건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세요 나야 황녀가 부는 단소 외엔 들어 본 적이 없어 갈등 없이 마구 추켜세울 수 있지만 선생님은 혹시 아니올시다일지도 모를 일이잖습니까. 그러니 눈 딱 감고,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황녀 입이 찢어지게 띄워 버리세요. 황녀 고게 또 청중은 어지간히 가리는 못된 버릇이 있어서 아무한테나 단소 가락을 맛뵈 주지도 않아요. 황녀가 제일 기뻐하는 일이 뭔 줄 아십니까? 내가 지 단소 소리를 헤아려 들을만한 고급 청중을 데불고 집에 가면 그저 팔팔 뛰도록 기뻐하지요. 선생님을 데려가면 아마 까무라칠 것입니다.”
자신의 집에 들어가기 전에 김종구가 내게 한 당부 또한 은근히 내 마음을 찌르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자기의 마누라한테까지 세상의 잣대를 들이미는 허튼짓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만나자마자 부득불 자기 집에 가자고 우기던 것이나,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나를 만나고 그토록 반가워했던 것도 모두 그의 황녀를 위한 헌신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 서먹한 초대를 물리칠 어떤 방법이 없을까 거듭하던 궁리 따위 홀가분하게 물리쳐도 무방한 일이었다. 그의 황녀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일이 몇 마디의 격찬과 감동의 시늉으로 가능하다면 못 할 것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이제는 나의 이 여행이 예상치 못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기대도 적잖아 생겨 있는 판이었다. 그 기대가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로, 삭막한 공사현장으로 둔갑한 귀신사를 마지막으로 이 여행에 은근히 기댔던 모든 것이 다 사라진 뒤에도, 나는 전혀 헝클어진 사념에 발목을 묶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새도 없이 김종구가 나타났고 그 다음부터는 완전히 김종구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뿐이었다.
그는 여전히 예측불허의 인간이었고 이 예측불허가 나를 생각의 진흙탕에서 구해 주었다. 이 진흙 뻘밭에서 기어나올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김종구와의 만남은 수확이었다. 그러니 이제부터 또 뭔가를 그가 보여 준다면 그것이야 말로, 천박한 표현이긴 하지만, 보너스에 다름없는 것이었다.
미리 말한다면 그는 그 이후에 더 많은 것을 내게 보여 주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리고 같은 사람이라도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보여지는 것에의 느낌이 다르겠지만 그때의 나한테는 그의 말 한마디도 새롭고 새로웠다. 설령 나의 막막한 상황이 새롭고 새롭기를 희구해서 자기 최면으로 그렇게 받아들인 것이라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아니, 진실을 말하자면 오히려 그쪽에 가깝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와 아주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는 그 욕망말고 다른 것으로 해명할 수 있는 진실이 세상에 어디 있던가.
3
김종구는 나와 황녀의 대면에 약간의 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를 집으로 데려간 뒤 그는 곧바로 여자를 부르지 않았다. 대신 마당에 나를 세워 놓고 자기가 먼저 부엌으로 들어갔다.
여자가 부엌에 있다는 것은 새어나오는 불빛으로 금방 알 수 있었다. 바깥이야 아직 잔광으로 견딜 만하지만 안에서는 불을 밝혀야 할 시작이었는데 그 집에서 불빛이 있는 장소는 부엌뿐이었다. 나는 인기척이라곤 없는 그 집의 다른 문들을 살펴보면서 그녀와 정식으로 인사를 나눌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 시간 전에 우연히 마주쳤던 황녀의 맨발과 흐트러진 머리칼, 번쩍거리던 눈 빛 따위를 떠올리면 그 기다림에 약간의 불안이 섞여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녀는 내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 나를 맞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그게 어떤 것일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내 예상은 들어맞았다. 먼저 부엌으로 들어간 김종구가 어디를 어떻게 했는지 여자의 자지러지는 웃음 소리가 들리더니 곧 이어 반쯤 열려 있던 부엌문이 뒤로 발랑 나자빠지도록 거세게 열렸다. 그리고 내가 물러설 새로 없이 확 구정물이 뿌려졌다.
다행히 나한테까지 구정물이 튀긴 것은 아니지만 그제서야 나를 발견한 여자의 놀라는 시선을 받아 내는 일은 좀 괴로웠다. 여자도 조금 전에 나를 본 걸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이런 시골에서 낯선 사람을 구별해 내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닐 것이다.
“이런, 누굴 데려왔잖아! 왜 말을 안했어? 이 쓰레기 같은 인간. 언제나 날 속이기만 하고.”
여자는 남자를 돌아보면 냅다 소리를 지르더니 얼른 부엌문을 닫아 버리고 만다. 물론 나한테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였다. 황당한 일이었지만 예상은 한 것이라서 견디기 어려울 만큼은 아니었다. 이윽고 들려오는 김종구의 퉁명스런 목소리.
“야, 싫으면 그만둬. 네 생각하고 일부러 귀한 손님을 모셔 왔는데 싫으면 집어치라고. 제길, 괜한 수고를 했잖아.”
“누가 싫댔어? 근데, 누구야?”
그 다음부터는 목소리가 낮추어져서 바깥에서는 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누구일까. 김종구는 나를 어떻게 설명할까. 간간히 들려오는 여자의 “정말? 진짜야?” 하는 확인을 말은 왜 필요한 것일까. 초조하게 황녀(皇女)의 알현을 기다리는 신하처럼 나는 그들이 나누는 모든 말이 다 궁금하기만 했다.
황녀의 닦달이 어지간히 끝난 뒤에야 부엌문은 다시 열렸다. 치마는 여전히 큼직한 목단꽃 무늬의 그 치마였지만 맨발은 아니었다. 머리도 적당히는 간추려서 아까의 탱탱한 긴장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새롭게 등장한 여자는 완연히 수줍음을 타고 있었다. 마치 아까 보여 준 모습은 다 잊은 것으로 믿겠다는 태도였다. 수줍어하면서 나를 방으로 안내하는 황녀의 뒤에서 김종구는 그것 보란 듯이 매우 당당했다.
그렇다고 황녀의 수줍음이 길게 가지는 않았다. 김종구가 그녀를 수줍어하게 내버려두지도 않았다. 황녀는 황녀다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고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조신함을 걷어치운 채 거들먹거리기 시작했다.
선술집에서 만나 그 밤으로 만리장성을 쌓고 단소 가락에 혼까지 앗기운 채 다음날로 데리고 나와 같은 이불 속에서 자기 시작했다는 황녀와의 인연에 대해서 김종구가 하는 말은 이런 것이었다.
“난 저것의 야비함에 반했어요. 우리 황녀의 매력은 야만스럽고 교활하다는 것이지요. 그게 편해요. 난 베일로 얼굴을 가린 성처녀한테는 아무런 흥미도 없어요. 그짓 할 때 베일을 벗기는 수고나 한 가지 더해질 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김종구는 황녀가 자기의 여자인 것을 단숨에 알아보았다고 했다.
“정말 굉장한 여자였어요. 나는 저 여자를 보자마자 저 불룩한 가슴 밑에 내 갈빗대 한 짝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챘지요. 이건 행운이에요. 마침내 잃어버린 갈빗대를 찾은 거라구요. 말도 마세요. 그거 찾겠다고 밤마다 계집들 눕혀놓고 맞춰 보느라 힘깨나 뺐지요. 당분간은 힘 좀 아껴도 되겠으니 행운이 아니고 뭐겠어요. 아, 왜 당분간이냐구요? 글쎄, 그놈의 갈빗대가 계속해서 맞으라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뼈다귀도 자꾸 자랄 텐데. 그럼 다른 것을 찾아야지요. 얼마든지 또 다른 행운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이거, 선생님 앞에서 별말을 다 하는군요.”
김종구는 그러나, 조금도 별말을 다 했다는 표정이 아니다. 그의 말은 고해투의 어조나 자기 변론의 투와는 정반대의 느낌을 준다. 그는 어떤 일이든 다 자신이 개입했고 통합했으며 조종하고 있다는 어투로 말하고 있다.
그런 자한테 해서는 안 될 별말이 있을 리가 없다. 별말을 하더라도 이미 조절이 끝난 뒤다. 그래서 나는 그가 만난 지 두 달 만에 황녀를 버리고 훌훌 떠나 버렸다는 말을 할 때도 의아해하지 않았다.
“문제는 바로 이 김종구한테 있었지만 다른 갈빗대를 찾아가느라 저걸 버렸던 것은 아니었어요. 계집 데리고 세 끼 밥을 꼬박꼬박 찾아 먹고 살자니 숨통이 확확 막히고 가슴에선 열불이 치솟는 걸 어떡합니까. 황녀도 그런 날 잘 알지요. 저건 또 보통 계집입니까? 갈 테면 가라, 이런다구요. 그러다 몇 년 뒤에 술청마루에서 저걸 다시 만났지요. 그래 또 서너 달 같이 살다 보니 이번엔 저게 먼저 튀는 거예요. 이젠 끝이다, 하고선 미련도 없었는데 작년에 저걸 또 만났지 뭡니까. 세 번째라구요. 이게 사람 힘으로 되는 겁니까. 도망갈 일도 아니구요. 그래서 요즘엔 아예 데리고 다닙니다.”
황녀가 부엌에서 밥상을 차리는 사이 김종구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한 곳에 일 년 이상 머무르지 않는다고 했다. 한 고장의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을 보고 나면 미련 없이 짐을 챙겨서 다른 일거리를 찾아 나서곤 했다.
그가 거금도를 떠난 것은 고흥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아우가 돌아와 멸치어장과 해우 농사를 떠넘기고 난 뒤였다. 그렇다면 내가 일 년간의 섬 생활을 청산하고 그곳을 떠난 다음해였다. 그는 다시 돌아와서도 고작 삼 년을 다 채우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섬을 떠난 뒤에 그는 주로 산간지방으로 맴돌았다고 말했다. 그래야 바다가 보고 싶어지고, 바다에 갈증이 나면 고향으로 갔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영영 늙은 어머니와의 만남을 미루기만 할 것 같아서 그렇게 일부러 갯가는 피해 다녔다고 했다.
일 년 혹은 이 년에 한 번씩 집에 들러 보게 되는 어머니는 언제나 그만큼만 늙은 채 그대로더란 말도 그는 했다. 젊어서의 풍상으로 앞당겨 미리 늙어 버린 어머니한테는 남은 세월은 모두 덤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어머니는 방안을 기어다니며 살아 있다고 했다.
산간지방을 떠돌며 그는 많은 일을 했다. 지리산 노고단까지의 관광도로도 그가 참여한 공사 중의 하나였고 댐공사에도 여러 번 끼여들었다. 세상에 삽질이나 지게질이 필요치 않은 공사는 없었고, 따라서 그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는 공사장도 없었다.
원하는 대로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직업의 재미라고 그는 말했다. 세 끼의 밥과 누워서 잠잘 자리만 해결되면 어디라도 관계가 없는 것이다. 꼬박꼬박 부어야 할 월부금이나 은행통장 같은 것은 한번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연락이 닿을 수 있는 주소나 전화번호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주민등록등본이나 신원증명을 요구하는 직장은 애시당초 흥미도 관심도 없었다. 그는 자신을 얽어매려는 어떤 수작도 모두 거부했다. 그는 말했다.
“그렇게 살아서 벌써 내일 모레 오십인데 새삼스레 무얼 바꾸겠어요. 나는 이대로가 편해요. 난 계속 김종구로 지지고 볶고 할 테니까.”
그 말 끝에 그는 갑자기 눈을 빛내며 내게 말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어디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왜냐구요? 거기서 내가 이 년 가까이 살았거든요. 말씀드렸지요? 어디라고 일 년 이상은 머무르지 않았다고. 근데 그곳은 도저히 일 년 갖고는 모자랐어요. 그래서 이 년이나 썩었어요. 뭐, 짐작하시는 것 같은데, 그래요. 거기에 또 내 갈빗대가 하나 있었다구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지요. 그 여자는 자기가 내 갈빗대로 만들어진 여자라는 것을 도저히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자기의 갈빗대는 도시에서 넥타이 매고 커피나 홀짝거리며 종이를 만지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여자가 그렇게 나오면 할 수 없는 거예요. 그걸 패겠어요, 업고 야반도주를 하겠어요? 난 절대 그런 짓은 안 해요. 그런데 하루는 한밤중에 그 여자가 내 숙소에 찾아와 훌쩍훌쩍 구슬피 우는 게 아니겠어요?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이건 참, 기가 막혀서. 지금 저 윗마을에 자기가 좋아하는 총각이 와 있는데 제발 좀 어떻게 해달라는 거예요. 서울로 유학 가서 거기에 유망한 직장까지 잡아 놓은 남잔데 한때는 그 치도 자길 좋아하는 눈치를 보였다는 거죠. 그런데 이 친구가 서울 처녀 하나를 데리고 와서 부모님께 결혼할 사이라고 그런다는 겁니다. 시골에 형제가 득시글거리고 장남인데 부모님도 모셔야 할 형편에 그 여우같은 서울 처녀하고 결혼하면 집안이 편할 리가 있겠느냐고 여자가 울면서 쫑알거리데요. 그래서 내가 그랬죠. 알았다, 그 친구가 너하고 결혼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마. 여기서 기다려라, 이랬답니다.”
그런 뒤 김종구는 밤중에 풀숲의 이슬을 헤치고 윗마을로 올라갔다. 그리고 친구라고 속인 뒤 남자를 마을 뒷산으로 불러내 늘씬하게 두들겨패 줬다. 그는 그 처녀의 사촌오빠 되는 사람인데 알고 보니 너, 내 동생 책임져야겠더라, 안 그러면 오늘 밤 내 손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줄 알아라, 그렇게 겁을 줬다. 그런데 남자는 몇 대 맞지도 않고 쓰러져서 정신을 잃어버렸다. 아무리 흔들어도 정신을 못 차리길래 김종구는 그 길로 자기 숙소에도 들르지 않고 그 마을을 떠났다.
얼마 후에 그 친구가 죽었으면 죄값이나 받아야겠다고 어슬렁어슬렁 그 마을로 돌아가 보니 한 집에 잔치가 벌어져 있는데, 알고 본즉 자기가 좋아했던 그 처녀와 죽은 줄 알았던 남자가 그날 결혼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또 뒤도 안 돌아보고 그 마을을 빠져나왔죠. 그런데, 한번 물어나 봅시다. 그거, 내가 잘한 일이오, 못한 일이오? 암만해도 그것을 잘 모르겠단 말이오.”
그게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인지 내가 어떻게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꿈에서조차 삶의 다른 방식을 생각해 보지 못하는 나 같은 위인한테 그 물음에 대한 답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그때 다행히도 황녀가 밥상을 들여왔고 그와 나는 시침을 떼고 밥상 앞에 둘러앉았다. 황녀가 나타남과 동시에 김종구는 다시 황홀한 시선으로 황녀를 더듬고, 나는 김종구가 보여주는 수천 개의 얼굴에 거의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가 사실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는 나의 해석은 그러나, 어떤 망설임도 없이 그를 휘어잡는 황녀 앞에서 또 다른 해석을 새끼 친다. 여자는 남자를 단숨에 제압하고 남자는 투덜거리면서도 기꺼이 여자에 복종한다. 때로는 여자가 끊임없이 그를 짓밟도록 은근히 유도하는 경향까지 있다. 김종구는 그렇게 결코 간단히 해석되어지지 않는다.
“당신은 두부를 먹어야해. 한 조각이라도 남겼단 봐라. 잘 때 입에 쑤셔 넣을 테니까.”
밥상을 가운데 두고 여자가 잔뜩 무례하게 명령하면 그는 꾸역꾸역 두부를 해치웠다.
“얼마나 처먹어야 이놈의 세상에서 두부가 사라지려나.”
김종구의 탄식에도 아랑곳없이 두부접시가 비워지자 여자는 잽싸게 또 한 접시의 두부부침을 내왔다. 그의 고역은 다시 시작되고 황녀의 채찍질은 한치의 동정도 용납되지 않았다.
“이 사람은 고기를 입에도 안 대요. 이이가 하는 일이 얼마나 고된 것이지 알면 선생님도 제 심정을 이해하실걸요. 글쎄, 콩으로 만드는 것까지 다 싫대요. 뭐래나 식물성 고기라는 그 말이 구역질난대나, 그런 시시한 소리나 지껄이고.”
“그 말은 정말 구역질나요. 어떻게 식물과 동물을 생피 붙게 만드는 그런 말을 만들어 내는지, 하여간 뭐 좀 배웠다는 사람들 잔인한 것은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그 말 때문에 세상 모든 풀이 다 더렵혀지는 것 같잖아요. 제길, 먹고 싶은 놈은 동물성 고기나 실컷 먹으래지.”
저녁상을 물리고 난 뒤에 황녀는 술상을 보겠다고 했다. 손님이 여자인 만큼 과일이나 차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은 그들에게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술상은 그만두고 단소 소리나 한 가락 듣고 가겠다고 했지만 두 사람 모두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가로막았다.
“선생님, 무슨 답답한 말씀을 하십니까. 우리 모두가 이렇게 즐거운데. 하긴 선생님 같은 분이 이런 기분을 알긴 뭘 알겠습니까. 우리 황녀라면 모를까. 머릿속에 생각이 많으면 행동이 굼뜨고, 그러기 시작하면 인생은 망하는 겁니다. 그럼요, 자신할 수 있어요. 뭐든 너무 많이 가지면 걸그적거린다, 이 말입니다. 따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죽을 수도 없다니까요.”
그사이 황녀는 잽싸게 술상을 들여왔다. 따로 차리고 말 것도 없이 먹던 반찬 몇 가지에 됫병으로 파는 막소주가 병째로 따라 들어왔다.
“평생 내가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는 신조가 하나 있다면 그게 뭔 줄 아세요? 머릿속에 먹물 담아 놓고 주위에 검정물 뿌려 대는 인간하고는 길게 상종하지 말 것, 바로 그겁니다. 잠깐은 되지요. 하지만 길게는 안 돼요. 이거 선생님 듣기에 섭섭해도 할 수 없어요.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다는 것은 욕이에요. 그건 모두 쓰레기거든요. 머리는 즉시즉시 청소를 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알맹이를 발견했을 때 얼른 쓸어 담지요. 곰팡이가 가득 차기 시작하면 정말 끝장이에요.”
그의 격렬한 말에 나는 웃었지만, 그러나 속으로는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김종구 앞에서 그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할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나는 곰팡이 핀 머리를 가리고 싶었다.
“난,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때려쳤어요. 도대체 뭘 배우라는 건지 답답하기만 하더라구요. 보세요, 그따위 자잘한 셈본이나 배우고 현미경으로 눈에 뵈지도 않는 벌레나 쳐다본다고 세상 사는 이치를 터득할 수 있겠어요? 아주 꽉꽉 막혔어요. 어떻게 해볼 수도 없을 만큼. 이러다 영 바보 되겠다 싶어서 그 당장 집어쳤지요. 그 뒤로 충고하기 좋아하는 사람마다 그러는 거예요. 검정고시라나, 뭐 그런 것도 있다구요. 젠장, 새삼스럽게 허접 쓰레기를 채워 죽도 밥도 안 되면 그 사람들이 내 인생 책임집니까. 지금 생각해도 아주 잘한 짓이에요. 넓은 세상 어디든 뛰어들어 북대기치다 보면 막힌 머리도 확 뚫리게 돼 있다구요. 그게 진짜예요. 살아 있는 거지요. 팔십을 산다 해도 못 해 보고 죽을 일이 수두룩한데 끝도 안 보이는 그 짓을 왜 하겠어요. 그거, 중독되는 거 아닙니까?”
그의 말은 당당하다. 조금도 야비하지 않다. 음해(陰害)의 의도도 없고 방약무인한 자의 무례나 열등감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의 얼굴을 보면 그걸 알 수 있다. 그의 말은, 그가 마시는 소주가 그렇듯 맑다.
김종구는 얼굴을 찡그리며 소주잔을 비웠다. 나야 술을 전혀 못하는 형편이었지만 다행히 황녀의 주량이 대단했다. 황녀는 남자의 얼굴을 홀린 듯이 바라보다가 한번씩 자랑스럽게 나를 돌아보았다.
“그거 중독되면 평생 돌다리 두들기다가 인생 재미 하나 못 누리고 황천 가는 거예요. 거기 가면 염라대왕이 뭐랠 줄 아십니까. 너 이놈들. 한평생 기회를 주었는데도 고작 그것만 맛보고 들어와? 에이, 뜨거운 맛 좀 봐라! 이러면서 화탕 지옥을 빠뜨리는 겁니다. 펄펄 끓는 물에 집어넣는다 이 말이지요.”
흡사 끓는 물에 손이라도 닿은 것처럼 흠칫 놀라면서 김종구는 또 한 잔을 성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빈 잔에 철철 넘치도록 술을 채우면서 황녀는 말했다. 역시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않고.
“이까짓 한 되들이 가지고는 우리 두 사람, 입이나 겨우 축인답니다.”
세상에 쉬운 것이 술에 맛들이는 것인데 그것도 못 하냐는 듯이 나를 가엾게 쳐다보는 황녀의 얼굴은 그제서야 발그레하게 물들어 한층 싱싱하게 보였다. 밝은 불빛 아래 드러나는 황녀의 얼굴은 결코 미인은 아니었다. 눈은 가늘게 찢어졌고, 휘어진 매부리코는 여자의 인상을 몹시 강퍅하게 만들고 있기는 하나 오히려 그런 약점들 때문에라도 황녀는 황녀답게 보였다.
나는 이제까지 연루된 모든 것들, 한마디로 뭉뚱그려 놓은 도덕과 긴 역사의 문화라고 하는 것들이 이들 앞에서 얼마나 하찮게 무너지는가를 절감했다. 내가 영향받고 그에 의해 단련되던 것들이 사실은 아주 작은 세계에 불과하다는 것, 나는 평생 이 작은 세계 밖으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은 절망이었다.
나는 비어 있는 황녀의 잔에 술을 채운 다음 이제는 단소의 가락을 들어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넌지시 일깨웠다. 나 같은 위인한테는 궁지에 물렸을 때 어떻게 장면 전환을 해야 하는지 정도는 저절로 떠오르는 법이니까.
“가만, 악기를 꺼내오는 수고를 저한테 맡겨 주시면 영광이겠나이다.”
김종구는 그 큰 덩치를 흔들며 방의 윗목으로 갔다. 그들이 기거하는 이 방에 유일하게 가구가 있다면 그것은 낡은 텔레비전을 받쳐 놓은 허름한 서랍장이었다. 그것 외에는 몇 개의 종이상자와 벽을 따라 외엔 볼 만한 세간이라곤 없었다.
단소는 서랍장의 맨 위칸 깊숙이에 소중하게 간수되고 있었다. 김종구는 서랍을 빼는 동작부터 이미 잔뜩 과장을 하고 있었다. 황녀는 남자의 흔들거리는 몸짓에 무릎 장단을 맞추었다. 그리고 나는? 나는 아직도 그들과는 겉도는 기름으로 거기에 있었다. 그런 스스로가 너무나 한심스러웠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용해될 수 없는 것도 할 말은 있는 법이니까.
“이 여자를 처음 만난 데가 어딘 줄 아세요? 아니, 언제, 어디서, 라고 말해야 선생님 같은 분은 금방 알아듣겠군요. 그해, 오월에, 나도 광주에 있었어요. 더럽게 걸린 거지요. 동생놈한테 멸치어장이랑 노모와 여동생까지 쓸어 넘기고 갑갑한 세상 네 활개치고 살아 볼까 나온 것이 우선 광주였던 거지요. 그런데 재수 옴 붙게도 거기가 전쟁터였다구요. 거기서, 이 여자가, 술청에 턱 퍼질러 앉아 단소를 불고 있지 뭡니까. 그 난장판 속에서, 단소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요·····.”
김종구는 비단주머니에서 조심스럽게 단소를 꺼내며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여전히 정중하고도 엄숙한 자세로 황녀에게 그것을 바쳤다. 반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황녀는 오만하게 단소를 받았다. 단소를 진상한 남자는 뒷걸음으로 물러나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죽여주지. 암, 죽여줄 거야” 하고 말했다.
나는 김종구의 신호를 알아들었다. 지금처럼 허튼 잣대를 대지 말 것. 무조건 죽어 줄 것. 나는 입속에 몇 개의 칭송 어구들을 굴리며 소리가 울리기를 기다렸다.
황녀는 구멍에 입술을 대고 숨을 불어넣으며 한참 동안 소리를 골랐다. 저 여자가 아까 맨발로 동네 고샅을 헤매며 비명 같은 웃음을 흩뿌리던 여자였던가. 심심하면 남자가 일하는 곳에 찾아와 돌멩이를 던지며 같이 놀자고 유혹하는 여자였던가. 나는 황녀의 단아한 자세와 지그시 감은 눈의 위엄에 미리 마음을 빼앗겼다.
피리가 남자의 성대를 닮았다면, 단소는 여자의 가늘고 맑은 음성에 더 가깝다. 그래서 때로는 요요(寥寥)하고 때론 청청(淸淸)하다. 단소 연주에 대해 내가 알고 있거나 느낀 바가 있다면 이것이 전부였다.
김종구가 걱정할 것도 없는 것이, 이만큼 알아 가지고는 그저 찬사나 바치는 외에 논평은 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황녀의 소리 한 가락이 끝났을 때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어휘를 다 동원해서 표현한 찬사까지 의심할 수는 없다. 적어도 나는 이미 한 경지를 더듬은 여자의 소리를 느꼈던 것은 사실이니까.
“이건 <천년만세>라는 곡이었구요, 이제는 <청성곡> 가락을 불 겁니다. 나도 우리 황녀 덕분에 단소 가락에도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저 내키는 대로 불어 젖히려니 했지 저것에도 정해진 음계가 있다는 것을 어찌 알았겠어요.”
김종구가 내 청취 태도에 만족했다는 것은 그의 벌어진 입으로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비록 황녀에게 앙코르를 청하는 예의를 깜박 잊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천년만세>라는 가락의 흥겹고 빠른 장단은 진실로 유쾌하고 화사했다.
“<청성곡>은 저 사람이 매일 밤 불어 달라고 조르는 곡이랍니다. 소리가 잘 안 되는 날도 있는 법인데 그저 막무가내라구요.”
“잔말 말고 빨리 불기나 하라고. 대가는 사설이 없는 법여. 구멍으로 말해야지.”
“아이구, 언제 적부텀.”
여자는 눈을 흘겼고 남자는 비스듬히 누워 눈을 감았다. 그것이 <청성곡>을 듣는 그의 고정적인 자세인 모양이었다. 황녀는 남자가 들을 준비가 다 되었다는 신호로 눈을 감자 고요히 구멍에 입술을 댔다. 닐닐리 삘릴리, 나니르 나니르. 음공(陰功)을 누르는 황녀의 손가락이 점차 춤을 추듯 빨라지고 그런가 하면 어느 순간 벼랑에 밀리듯 소리가 천길 나락으로 툭 떨어지고 만다. 마치 격랑에 휩쓸리는 듯하다가 때로 깊은 바닥으로 잠수하는 그 거침없는 소리들, 나는 김종구가 이곡에 빠져 버리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도 그렇다. 감은 눈꺼플이 파르르 떨리도록 그는 소리에 온몸을 싣고 소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는 지금 바다에 있다. 바다는 김종구에게 있다. 밀리고 밀려서 부숴지는 바다. 퍼내도 퍼내도 줄어들지 않는 바다, 멍들고 멍들어서 퍼렇기만 한 바다.
닐니리 삘릴리,. 나니르르 리르르르…….
마침내 긴 가락이 끝났을 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단소에서 고요히 입술을 떼던 황녀의 손짓이 나를 그렇게 하도록 했다. 여자는 대나무 악기로 막았던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아무 소리도 하지 말라는 주의를 주었다.
그제서야 나는 남자의 볼에 흐르는 한 줄기 눈물을 보았다. 눈물은 볼을 타고 흘러 이미 희끗희끗 흰머리가 터전을 이루고 있는 귀밑머리를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나는 아득했다. 지금 김종구가 소리에 실려 떠내려와 배를 댄 기슭은 어디일까. 아무도, 지금, 바로 이 순간,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단소를 내려놓고 황녀는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남자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는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밤, 나는 몇 번인가 내 손으로 내 잔을 채웠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씩 서로의 비어 있는 술잔을 채워 주기도 했다.
4
처음에는 시야를 부옇게 가리고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었다.
눈을 뜨고 나서 한참 동안은 내가 누워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어 멍한 상태였으므로 그것이 만개한 벚꽃이었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창을 온통 가리다시피 한 벚꽃 무더기와 한 짝짜리 이불장, 손잡이가 고장난 텔레비전들을 하나하나 확인해 나가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늦잠을 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머리의 무게가 천근만근인 양 고개를 들어올리기가 몹시 힘이 들었다. 어젯밤 김종구의 집에서 돌아온 시간이 몇 시였던가. 아무래도 자정은 넘지 않았을 것이란 추측만 있을 뿐 정확한 시간은 알 수가 없다.
김종구는 나를 경운기로 여관까지 데려다 주었다. 물론 황녀도 함께였다. 우리는 경운기가 낼 수 있는 가장 최대의 속력으로 유쾌하게 시골길을 달렸었다. 깊이 잠든 산과 들이 경운기의 털털거리는 엔진 소리에 화들짝 잠을 깨어 미풍에 가지와 잎사귀를 흔들던 모습이 생각난다. 공기는 달콤했고 구름에 숨었다 나타나는 달은 신비로웠다.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지만 달빛만이 따르는 적막한 시골길을 경운기로 달리던 어젯밤을 생각하면 저절로 미소가 번져 온다. 황녀는 흥에 겨워 시종 노래를 불렀었다. 공동묘지 앞을 지날 때는 귀신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며 김종구까지 흘러간 유행가들을 합창했었다. 그들과 함께 바라보는 공동묘지는 전혀 음산하지 않았다. 그것은 잘 다듬어진 둥근 나무들로 가득 찬 아름다운 정원처럼 보였다.
삼거리의 느티나무 아래 나를 내려놓고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도 선연히 떠오른다. 어둠 속으로 경운기가 사라진 뒤에도 얼마 동안 엔진 소리와 황녀의 흥얼거리는 노랫가락이 들려왔었다. 방에 들어와서도 나는 멀어지는 노랫가락을 들었다. 내 마음의 귀는 그들이 다시 공동묘지 앞을 지나 귀신사 근처의 자기 집에 다다를 때까지의 시간 동안 내내 그 소리들을 듣고 있었다.
소리가 스러질 무렵, 아마도 나는 불편한 베개에 얼굴을 묻고 뒤척이다 잠이 들었을 것이었다. 아니, 잠들기 전에 나는 하나의 옛 기억을 떠올렸었다. 십오 년 전의 김종구를 말해 주는 네 번째의 삽화. 이 삽화에는 온통 안개만 자욱하게 묻어 있었다.
그날은 가을 들어 가장 짙은 안개가 몰려온 날이었다. 밤물을 보러나간 십여 척의 배가 채 들어오기도 전에 이미 안개는 욱욱거리며 삽시간에 연안을 휩싸고 말았다. 그 섬에 살면서 나는 기척도 없이 숨어 들어오는 안개의 너울을 여러 번 보았었다. 비릿한 안개 냄새, 거대한 동굴에 갇힌 듯한 그 막막한 느낌. 바다의 안개는 육지의 안개와는 달리 또 얼마나 두텁고 깊던가.
잠깐 사이에 시야는 차단되고 눈감고도 다니던 뱃길을 삼십 센티미터 앞조차 내다볼 수 없는 위험한 길로 만드는 것이 바다의 안개였다. 바로 코앞에 선착장을 두고도 배 댈 곳을 못 찾아 빙빙 돌며 쩔쩔매는 것도 군데군데 자리잡은 자그만 돌섬들에 부딪혀 배가 전복되고 마는 사고도 모도 안개바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밤에 안개를 만나면 마을에서는 안개 길잡이를 벌였다. 길을 잃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배들을 불과 소리로 인도하는 길잡이판은 주로 마을 청년들에 의해 주도되곤 했다.
그날도 안개가 심하다는 이장의 방송이 있었고 마을 청년들은 모두 선착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이내 한쪽에서는 석유를 먹인 솜뭉치에 불을 댕겨 흔들어 대고, 한켠에서는 징이며 꽹과리를 동원해 두드릴 수 있는 한 힘껏 두들겨 대는 길잡이 잔치가 벌어졌다.
거기다 돌아오지 않은 배의 가족들이 총출동하여 식구의 이름을 부르거나 문자로 기록해 낼 수 없는 괴성들을 질러 대기 시작하면 좁은 선착장은 잠깐 사이에 용광로처럼 들끓게 마련이었다.
타오르는 횃불과 징, 꽹과리의 요란한 소리에 못지않게 가족들이 있는 힘을 다해 내지르는 육성 또한 안개를 뚫고 먼 바다까지 도달하는 힘이 있다고 했다. 안개 속에 길을 잃고 헤매는 배들은 어디선가 들려 오는 아내와 자식의 목소리만은 반드시 가려 듣게 돼 있다는 것이었다.
저녁밥을 먹고 난 뒤 나는 자취집 마당에서 소란스런 선착장을 내려다보았다. 꽤 높은 지대에 있었던 자취집에서는 선착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당에 나오기 전에는 틀림없이 동네 어느 집에 왁자한 놀이판이 벌어진 줄 알았다. 그만큼 안개는 갑작스러웠고 생명을 구하는 횃불의 난무와 소리의 혼란은 축제일의 그것과 너무 흡사했다.
아른아른 흔들리는 수많은 횃불들과 목청이 터져라 불러 대는 절박한 외침이 안개바다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안 나는 겉옷을 찾아 입고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겠지만 배들이 무사히 포구에 닻을 내리는 순간에 나도 거기 함께 있고 싶었다.
선착장에 가까이 갈수록 소리의 혼란은 더욱 극심해져서 무슨 소리들이 한데 섞이어 들려 오는지 전혀 구별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마을의 스피커까지 합세해서 바다 쪽을향해 최대한 볼륨으로 조미미의 노래를 퍼부어 대고 있었기 때문에 징소리, 꽹과리 소리, 울부짖음 같은 고함 소리, 그리고 천연덕스럽게 불러 제끼는 스피커 유행가 가락의 합성음은 귀를 막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냥 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꿈 많은 내 가슴에 봄은 왔는데, 봄은 왔는데...... 애절한 호소 속에 시들어지던 그 구성진 노래는 지금도 내 귓전에 가늘게 들려 온다.
그때도 나는 소리의 숲은 헤치고 간신히 그 가사를 가려 들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득한 안개에 사로잡혀 어디쯤에선가 배의 키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느라 이마에 구슬 같은 땀이 맺혀 있을 어부들은 아스라이 먼 곳에서 들려 오는 ‘봄은 왔는데, 봄은 왔는데’에 온 희망을 걸고 한번 더 힘을 내어 다시 시작해 볼지도 모를 일이라고.
그래서 어느 한순간 모든 소리들을 중단시킨 채 바다 저편에서 행여 구조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들리는지 가늠하는 그 긴장된 시간에는 나 또한 숨도 크게 쉬기 힘들었다.
그날 선착장의 흥분과 열기는 유별났다. 안개가 워낙 짙었고, 배들이 먼바다에 있을 때부터 안개가 포위해 들어온 까닭에 그날의 길잡이는 한층 많은 소리와 불빛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좀처럼 플래시 신호도 보이지 않았고 응답하는 구조의 외침도 들려 오지 않아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애를 태우는 중이었다. 그럴수록 횃불은 거세게 타올랐고 징과 꽹과리는 깨질 듯이 두들겨졌다.
그리고 나는, 그 가운데서도 유독 안간힘을 써가며 징을 두들겨 대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얼굴의 힘줄이 툭툭 불거져 나오도록 신들린 사람처럼 마구 징을 두들기느 남자의 곁으로 다가가던 나는 한순간 멈칫했다. 바로 김종구였다. 굳게 닫힌 입술, 뚫어질 듯 안개바다를 노려보는 두 눈, 제 가족 아무도 바다에 나가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저처럼 전심전력으로 징을 두들기고 있는 이는 김종구였다.
소리의 혼란 속에서 나는 하염없이 그런 김종구를 바라보았다. 이제까지 보아 왔던 그의 얼굴 중에서 그때처럼 진지한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이마를 적시는 땀방울은 횃불에 비쳐 다이아몬드의 광휘를 내고 있었고, 신명 들린 어깻짓은 몰아의 자세가 흔히 그렇듯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그가 내려치는 징소리는 땅 밑에까지 그 울림이 전해질 만큼 폭넓은 진동음을 가지고 있어서 주위의 다른 소리들을 다 제치고 저 멀리 바다로 내달리고 있었다. 김종구는 마치 자신의 징소리가 달려가야 할 길을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어디로 어떻게 소리를 보내야 먼바다의 길 잃은 배들한테 닿을지 그만은 알고 있다고 나는 믿었다.
나는 정말로 그의 징소리가 안개 한 겹을 뚫고 저 멀리 날아가는 것을 본 느낌이기도 했다. 이 느낌은 너무나 생생한 것이어서 그 순간 나는 분명히 두터운 안개 장막이 찢어지는 비명을 들었었다.
그 밤, 김종구는 곁에 있는 나를 보지 못했다. 그는 다른 어떤 것도 보지 않고 있었다. 그는 단지 바다만 보고 있었다. 들어가서 보는 것만큼만 보여 주는 바다, 어느 정도의 깊이를 넘기고 나면 수억만 년 침잠해 있는 심연의 세계도 가지고 있는 바다, 김종구는 오로지 그 바다만 보며 열심히 징을 내려치고 있었다.
그 징소리는, 안개 장막을 찢고 먼바다로 내닫던 그 징소리는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을 때까지도 한결같은 폭으로 울고 있었다. 내가 선착장을 떠날 무렵에는 가족들과 몇 명의 마을 청년만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초저녁부터 시작된 길잡이에 지칠 대로 지쳐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갔다.
안개는 여전히 두텁고 칙칙했지만 배들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말했다. 아마도 배들은 초저녁 일찌감치 근처 무인도로 대피했기가 십상이라고, 그러니 너무 걱정할 것은 없다고 서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김종구는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내 방에 누워 끊임없이 들려 오는 그의 징소리에 잠을 설쳤었다.
모든 소리와 횃불은 새벽이 되어서야 중단되었다. 마침내 배들이 돌아온 것이였다. 나는 징을 내던지고 지친 걸음으로 돌아가는 김종구의 모습을 되찾은 새벽의 정적 속에서 떠올렸다. 그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다음날 아침, 간밤의 지독한 안개를 화제삼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누구는 횃불에 손을 데였고 누구는 완전히 목이 잠겨 숨도 못 쉴 지경이라는 말들은 갖가지로 들려 왔지만 마지막까지 울려 대던 김종구의 징소리에 관한 언급은 스치는 말로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그를 본 사람이 나 혼자이기나 한 것처럼, 그 영혼을 울리는 징소리는 아예 있지도 않았다는 듯이.
그토록이나 집요하고 그토록이나 땅과 바다를 울리던 그 징소리를 정말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것이었을까. 한켠에 우뚝 서서 새벽까지 쉬임 없이 징을 울려대던 그의 모습을 정말 누구도 보지 못했던 것이었을까.
길 잃은 배는 돌아왔지만, 길 잃은 배를 이끌던 김종구와 그의 징소리는 두터운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만 이 일에 대해 나는 오랫동안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대체 그는 어디로 숨어 버렸을까. 아니, 사람들은 대관절 그를 어디에 숨겼을까......
그리고 십오 년 후에, 그는 나한테 나타났다가 내가 잠들 때까지 경운기의 엔진 소리와 풍상에 젖은 노랫가락을 들려주며 사라져 갔다. 하지만 이렇게 잠에서 깨어나 생각해 보면 어제 있었던 일들이 실제로 내게 일어난 일인지 나는 정말 믿을 수가 없다. 황녀의 단소에 젖어 한 줄기 눈물을 흘리던 그 김종구를 실제로 내가 보았던가.
나는 일어날 생각도 없이 자리에 엎드려 눈물 이후의 시간들을 더듬어 본다. 하지만 그 이후의 시간들은 제대로 정리되지 않는다. 그때부터 난 술잔에 입을 대었고, 덕분에 그 뒤론 더 이상 기름으로 맨송맨송 떠 있지는 않았던 까닭이었다. 지금 이렇게 머리는 아프지만 이 두통이야말로 어젯밤에 실재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
나는 여관 앞에 약국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두통을 참고 견디는 일처럼 미련한 짓이 없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우선 약부터 사먹을 일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늘어진 벚나무 가지 사이로 내다보이는 하늘이 충충하다. 비가 올 것 같다. 나는 습기를 머금어 무겁게 축 처진 벚꽃 한 송이를 따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나이가 들면 하늘을 많이 보게 돼요. 젊어선 땅만 쳐다보고 살지요. 이제는 땅을 보더라도 풀이나 나무, 꽃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그런데 더 관심이 간답니다. 어느 땐 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길을 가다가도 우뚝 멈춰 서곤 하지요. 생각해 보세요. 산을 뭉개고 길을 뚫기 위해 산에 갔다가도 행여 풀포기를 밟을까 봐 비칠거리는 이 김종구 꼬락서니를.”
김종구는 풀이나 꽃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꽃송이 하나를 창틀에 얹어 놓고, 약국에 다녀와서 짐을 꾸리고 있을 때도 김종구의 목소리는 들려 왔다.
“내가 사람을 사귀는 방법은 간단해요. 냄새로 구분을 해버리지요. 진짜 인간의 냄새하고 가짜가 풍기는 악취하곤 엄청나게 다르거든요. 난 금방 알 수 있어요. 피해도 소용없어요. 내 코가 더 빠르니까.”
계산을 마치고 여관을 나와 근처의 식당으로 들어가 앉아 있는데도 김종구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소설을 팔아 밥을 먹는다구요? 아니, 아직도 그런 것을 읽는 사람이 있답니까? 대체 무슨 소리를 늘어놓는 것이 소설인가요? 작가 선생님, 이런 말은 어떤지 한번 들어 보세요. 하나님이 인간의 눈을 만들 때 흰자위와 검은자위를 동시에 만들어 놓고도 왜 검은자위로만 세상을 보게 만들었는지, 그거에 대해서 선생님은 혹시 아십니까? 아, 이거야 나도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긴데, 그게 말예요, 어둠을 통해서 세상을 보라는 신의 섭리라는 거예요. 세상을 보는 일이야 우리 같은 떠돌이들말고 선생님 같은 분들한테 떠맡겨진 숙제 아닙니까. 그러니 애시당초 편하게 앉아서 헤드라이트 비춰 놓고 들여다보듯 그렇게 수월한 일은 아닐 거리 이 말씀이죠. 흰자위 놔두고 검은자위로 세상을 보랄 적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삼거리 느티나무 아래서 시내로 나가는 차편을 기다리고 있을 때 마침내 후드득 빗방울이 돋았다. 바람에 밀려가는 구름장들을 올려다보지만 저 구름이 얼마나 많은 비를 숨기고 있는지는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낮은 하늘과 습습한 바람 사이에서 나는 숙자의 등에 매달려 있던 동그란 눈의 어린아이를 본다. 낮선 사람이 말을 걸면 제 고모의 등에 납작 엎드려 한없이 까맣고 맑은 눈만 소리 없이 깜박거리던 김종구의 아들. 그 아들에 대해 왜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가.
참고 참았으니 끝까지 묻지 말았어야 했을 것을. 그러나 어젯밤에 나는 기어이 그의 아들에 대해 묻고 말았었다. 김종구는 한동안 멍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그 애를, 그 애의 모습을 기억하세요?” 하고 되물었다.
“다섯 해를 살고, 그것도 많이 살았다고 하나님이 데려가 버렸어요.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그뿐이에요. 자식 하나 없이 죽어 버린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죠. 그래요. 아직은 그게 끔찍해요. 난 이 세상에 자식 하나는 남겨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가끔씩 하늘에서 굽어보면서, 내 자식아, 뭐가 걱정이냐, 아무 걱정 말고 그런 덜 떨어진 놈들은 좀 패줘라, 이렇게 일러도 주고 그럴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 자식을 데려가 버렸어요. 정말 끔찍한 일이지요......”
버스가 왔다. 가을에는 단풍의 터널을 이루는 국도를 버스는 쉬엄쉬엄 달렸다. 사람들은 우산을 받쳐 들고 아무 데서나 손을 들었다. 지금은 푸른 터널인 이 길, 황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린 다음달에 떠나요. 이어서 김종구의 투덜거림도 들려 온다. 제길, 뻔한 소리를 하고 자빠졌네.
초파일이 지나면 그들은 여길 떠난다. 어디로 갈지는 그들도 모른다. 나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그를 만났다는 사실조차 의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그를 만났음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나는 다시 소인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상행 열차는 한 시간 뒤에 있었다. 그렇게 되면 어두워지기 전에는 집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차표를 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좀 어이가 없기는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즉시로 약국에 들러 두통약을 사먹고 끼니를 애웠을 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시내로 나와 버린 것이었다.
금산사까지 산책삼아 다녀올 수도 있는 일이었고 하다못해 기념품 가게에서 무언가를 사서 딸아이에게 갖다 줄 생각쯤은 했어야 했다. 어두워서 서울에 도착한다 해도 걱정할 일은 없었고 어쨌거나 오늘 밤 안으로 집에 들어갈 수 있기만 하면 되는데도 나는 골똘한 생각에 떠밀려 여기까지 와버린 것이었다.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김종구에 대해서, 나는 이제 그만 머리를 뒤적거리기로 했다.
좌석권도 겨우 얻은 것이어서 불평을 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열차에 올라 확인해 보니 내 자리는 맨 뒤쪽, 끊임없이 사람들이 드나드는 출입문 바로 옆이었다. 그것도 창가 좌석이 아니어서 홍익회 밀차라도 지나가면 옆으로 몸을 비켜 주어야 할 그런 상황이었다.
차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들어간 다방에서 나는 좌석을 구하지 못해 입석표를 끊은 사람을 보았었다. 그들은 말하자면 나보다 일 초 늦게 매표구에 도착한 사람들이었다. 주말도 아니고 평일에, 그것도 일부러 한 시간 전에 나왔는데도 좌석이 없다면 말이 되냐고 다방 아가씨를 상대로 불평을 털어놓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슬그머니 내 좌석표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히 내 것에는 좌석번호가 또렷이 찍혀 있었다. 그들과 나는 거의 엇비슷하게 다방에 들어왔는데도 그랬다. 매표구에서의 찰나가 그렇게 매정한 선을 그어 버렸음을 깨달은 뒤에도 나는 행운보다 기묘한 두려움을 느꼈었다.
언제 어느 순간 내 앞에 선이 그어져 버릴지 아무도 모른다. 우연히 행운이 왔다면 불행도 똑같은 모습으로 올 것이다. 우리는 선택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우리는 거부할 수도 없다. 어떤 것도 불확실하며 어떤 것도 전혀 보장받을 수 없다. 어떤 것도 불확실하며 어떤 것도 전혀 보장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은 행운으로 마지막 좌석을 차지하고 나서, 나는 어느새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 나를 발견했다. 나는 아직, 스스로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칼릴 지브란이 떠올랐다. 내가 생각하는 지브란은 1931년 4월에 영원히 잠든, 시인이고 화가였으며 철학자이기도 했던 칼릴 지브란이 아니다. 그는 아직 살아 있고 앞으로도 살 날이 많은 사람이다.
여고 시절 내가 속한 서클에서 나는 그를 처음 만났다. 고향 도시에서는 소위 명문으로 청해지던 남녀 고등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그 서클에서 여학생들은 그를 ‘지브란’이라고 불렀다. 그가 『예언자』를 잘 외우고 다닌 것이 직접적인 빌미는 되었지만 사실은 문학말고도 그림·철학 등에 조예가 깊은 그의 천재성이 칼릴 지브란과 닮았다는 데서 기인한 별명이었다.
진정으로 그는 내가 만난 가장 뛰어난 천재였다. 학생 잡지의 문예 현상을 휩쓰는 그의 시, 진작에 실력을 인정받고 있던 그림, 막힘이 없고 거침이 없는 지독한 독서편력, 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도 그는 전과목에 늘 우등생이었다. 또 한 그는 진지하고 겸손했다. 타고난 품성조차도 뛰어났던 것이다.
지브란으로 불리던 그는 당연히 수재들이 모인다는 서울의 명문 국립대학에 들어갔다. 내가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이십 년의 세월이 지난 뒤의 일이었지만 그 동안에도 이 천재의 행적에 대해 전혀 몰랐던 바는 아니었다. 나는 주로 신문에서 그의 이름을 보았다.
신문은 그가 어떻게 온몸을 던져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또 신문은 그가 왜 수배되었으며, 어떤 불온조직의 괴수인가도 소상하게 일려주었다.
칠십 년대와 팔십 년대에 걸쳐 얼마나 많은 순결한 정신들이 국가 권력에 유린당했는지, 그것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그의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굳이 지브란이라고 부른다.
그와 함께 학생운동을 시작해서 지금은 두리뭉실하게 물러앉은 한 친구는 대학에서도 그는 천재였다고 전한다. 사태를 파악하는 분별력이 명확하고 빨랐으며 지도력이 뛰어난 그는 늘 운동의 핵심에 있었다.
대학 제적 후 그와 함께 세상의 변혁을 꿈꾸며 일했던 한 인사가 그를 가슴이 따뜻했던 운동가라고 회고하는 글을 읽은 적도 있다. 그는 팔십 년대의 종반까지 재야 조직에 몸담고 있었지만 한 번도 과격한 운동권이란 평을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긴장과 억압의 시대에 누구보다 과격하게 자신을 던져 일해 온 운동가였다.
지금에 와서 나는 그에 대해 누누이 설명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의 진실한 헌신은 개혁의 의지가 급격히 쇠퇴한 90년대 들어서도 전혀 폄하되지 않은 채 순결한 운동의 전범으로 남아 있으니까.
만약 그를 다시 만나지 않았다면, 한 천재가 보여 준 이 격렬한 생이야말로 불행한 시대를 만난 위대한 숙명이 아니었겠는가 정도로 그를 이해하고 말았을 것이었다. 운동에 있어서도 그는 분명 범인과는 달랐으니까.
그가 다시 지브란의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지난 겨울이었다. 나는 그때 무슨 일로 한 화가를 만나고 있었다. 강남 어디에 있는 화가의 작업실에서였다. 화가와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도중에 그가 들어왔다.
나는 그때 끝내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도 갈래머리 여고생 시절의 나를 기억할 리 만무했다. 격식도 없이 불쑥 들어온 이 방문객은 화가가 권하지도 않는데 의자 한쪽에 주저앉아 조용히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집주인인 화가 또한 이 방문객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서로가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투로 행동했다. 아마도 불청객이었을 그 남자는 거기에 있는 동안 두 번 입을 열었다. 두 번 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똑같은 말이었다.
“청와대에서 왜 날 안 부르지?”
청와대 ? 아무 데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지만, 방문객은 옷차림도 그런대로 깔끔했고 나직이 내뱉는 청와대 운운하는 말도 극히 고요한 어투여서 나는 그가 내가 모르는 다른 청와대를 말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 두 번의 나직한 중얼거림을 남기고 방문객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화가의 작업실을 나가 버렸다. 방문객이 사라진 사실을 화가가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그에게 손님이 가버렸음을 일깨워 주었다.
“손님? 아, 그 친구. 괜찮습니다. 사나흘에 한 번씩 와서 저러다 가니까요. 밥이나 한번 사주려 해도 꼭 자기 있고 싶은 만큼만 있다 가는 친구라서 이젠 나도 신경 안 씁니다. 느닷없는 청와대 소리만 빼면 다른 정신은 멀쩡해서 실은 아까운 폐인입니다. 가만있자, 혹시 모르십니까? 저쪽에선 상당히 유명한 인사인데.”
그 다음에 나온 것이 그의 이름이었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았다는 말은 나도 들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 뒤에도 민통련이나 전민련 간부 명단에서 나는 그의 이름을 보았었다. 나는 그가 불사신처럼 다시 일어났다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불사신이 아니었다. 화가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난 이후 나는 그를 알 만한 사람들한테 그의 소식을 물었다. 사실이었다. 아는 사람들은 다 그의 병을 알고 있었고 그가 하필이면 청와대를 들먹이고 있다는 것으로 그는 재기 불능이었다.
사람들은 육체의 병에는 너그럽지만 정신의 병은 이유 없이 혐오한다는 것도 나는 알았다. 그들의 이해가 미치는 범위는 한 순결한 천재의 과대망상이 전부였다. 모두 거기서 멈춘다. 더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정신은 비바람에 뒤집혀지는 종이우산처럼, 그렇게 정반대의 방향으로 뒤집히며 잠재된 무의식을 드러내고 만다는 것이다.
속을 발랑 까보였으므로, 그건 수치다, 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런데, 나는, 지브란의 그 한 말씀이, 청와대에서 왜 날 안 부르지? 하는 그것이, 어떤 은유 혹은 어떤 기호처럼만 여겨진다. 그날 화가의 작업실에서 아무 선입견 없이 그냥 들었을 때도 나는 그것을 하나의 암호로 이해했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나는 뜻을 담은 기호거나 암호를 입 안에 굴려 보고 뒤집어 보고 했지만 그것이 수치스런 뜻을 담은 기호거나 암호는 아니라는 것만 확인했을 뿐 풀어 내지는 못하였다.
지브란의 암호는 일종의 꽃말 같은 것이었다. 세상에 불경스럽고 추악한 꽃말을 담은 꽃은 없다. 꽃말을 모르는 꽃이 있다 해도 우리는 그것에서 당연히 사랑이거나 그리움, 기다림 따위를 유추하지 않던가.
“청와대에서 왜 날 안 부르지......”
지브란은 무슨 말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나는 왜 그 말에 무언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지브란에게서 예언자의 잠언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그의 잠언이 난해하다는 것은 시대가 난해하다는 뜻이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간절히, 그 꽃말이 알고 싶다.
그 꽃말을 알고 싶다. 한 천재가 온 힘을 다해 퍼뜨리고 다니는 꽃말의 비밀을 알고 싶다. 그걸 알 수 있다면 내가 빠져 있는 이 미로에서 헤어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미로는 사실 처음부터 미로였다. 그러나 전에는 출구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었다. 그 믿음은, 지금 생각하면, 작가에게 던져진 구명줄이었다. 차라리 안락의자였다. 거기에 편안히(역시 지금 생각하면 편안히, 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앉아 밤이 새도록 쓰고 또 쓰고 또 쓰면 언젠가는 출구에 닿는다는 가냘픈 희망이 있었다.
상처가 없이 어떻게 사람들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지, 소설은 또한 상처 자국의 조명 없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의자에 앉기만 하면 고인 물이 넘쳐나듯, 먼동이 트는 줄도 모르고 열정을 다해 써나갈 수 있었던 그때가 이토록이나 아득하게 느껴지다니, 믿을 수가 없다.
지금 내 앞에 주어진 미로는 너무 교활하다. 지식과 열정을 지탱해 주던 하나의 대안(代案)이 무너지는 것을 신호로 나의 출구도 봉쇄되었다. 나는 길 찾기를 멈추었다. 길 찾기를 멈추었으므로, 나는 내 소설의 새로운 주인공을 찾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작은 꿈, 작은 눈물, 그런 것들로 무찌르기에 이 세계는 너무나 거대하고 음흉하다. 문학은 곧 폐기 처분될 위기에 몰린 듯하다는 글쟁이들의 엄살은 결코 엄살이 아닌 현실이 되어 버리고 진실이나 희망이란 말은 흙더미에 깔려 안장되었다.
그 순간 나의 출구도 파묻혔다. 나는 두 팔을 묶였다. 지브란 같은 이의 위대한 헌신조차 낭비되고 말았는지 거기에 생각이 이르면 두 다리까지 꽁꽁 묶인 절박감을 느낀다. 기립 박수는 아니더라도 그를 숨게 만드는 세상은 믿을 수 없다. 그토록이나 상처가 많던 시절에도 그들은 우리의 숨통이었고, 짐승으로의 추락을 막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브란이 무슨 꽃말을간직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
기차는 달린다. 비는 그쳤다. 빗물 머금은 라일락이 담장 너머로 뭉게 구름처럼 피어 있는 동네를 지나 기차는 달린다. 라일락 뒤로 굽은 길을 달리는 기차의 꼬리가 보였다.
나는 쏠리는 몸을 바로 추스르기 위해 더욱 꼿꼿하게 앉아 있다. 등산복 차림의 젊은 처녀가 내 옆을 지나다 흔들 하며 잠시 균형을 잃는다. 미리 굽은 길을 알아채고 꼿꼿하게 힘주어 앉은 덕분에 나는 그녀를 받아 낼 수 있었다. 처녀가 말한다. 죄송합니다.
그 말이 예쁘고 살짝 붉어지는 얼굴도 예쁘다. 전에는 스물두어 살의 그 또래 처녀들을 보면 지나간 나의 젊음을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 딸이 자라면 저런 모습이 될지 그런 것을 생각한다.
나는 이제 나를 포기했다. 나는 과거의 사람이라는 것을 수긍한다. 그래도 미래가 이토록 중요한 것은 자식이 있기 때문이다. 자식은 희망의 담보물이다. 희망이 경매 처분되는 것을 한사코 막아야 하는 것은 자식을 맡겨 놓은 인간의 업보다.
내가 <희망>이란 제목의 장편을 펴냈을 때 사람들은 제목의 미미함을 지적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희망이, 자식이, 그런 것이 미미하다면 대체 무엇이 강렬한 것인가. 끓기도 전에 퍼져 버려 설익은 밥처럼, 이해되기도 전에 진실은 쓰레기통으로 처박힌다.
등산복 차림의 처녀는 내 자리에서 대각선으로 건너다 보이는 곳에 앉아 있다. 일행은 서너 사람, 그들은 북쪽의 산을, 어쩌면 설악 쯤을 목표로 하는 듯했다. 선반 위에 얹혀진 팽팽한 배낭과 진흙 한점 묻지 않은 깨끗한 등산화가 그런 짐작을 하게 해준다.
스스로를 산에 미쳤다고 평하는 한 의사가 있다. 그는 신경외과 의사고 동시에 소설가인 사람이다. 의학이란 학문이 결코 수월한 연구가 아님을 감안하면 그가 의사면서 소설가고 또한 전문 산악인에 겨룰 만한 산행 경력을 지녔다는 것은 나 같은 위인한테는 늘 놀라운 경이로 다가온다.
내 삶은 그에 비하면 삼분지 일이다. 나는 요즘 분수의 분자로 삶을 계산하는 버릇이 생겼다. 모두 초조함 때문이다. 나는 늘 셋이나 다섯의 분모를 두고 하나로 쪼개진다. 나는 누군가의 몇 분지 일이다. 나는 전생애를 소설에 투자했다. 문학 증발의 시기에 초조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산에 푹 빠진 의사 소설가는, 아니 소설가 의사는, 틈만 나면 산에 가지 못해 애를 태운다. 그 애태움은 소설을 향해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그에게 산과 소설은 같은 말의 다른 표현이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가도 플래시 하나 없이 그대로 산으로 달려간다. 힘든 수술을 끝낸 날에도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산에 오른다. 가다 날이 저물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는 환부의 실핏줄이 어디로 뻗어 있는지 상세히 알 듯이 산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환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부천에서 그가 살고 있는 북한산 가까이로 이사 오면서 나도 그와 함께 근처의 산을 오를 기회가 몇 번 생겼다. 그는 산에서 절대로 서두르지 않는다. 계곡의 물소리나 이름 모를 꽃들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무턱대고 급하게 산을 타는 사람을 그는 가장 경멸한다. 산중턱의 소나무 가지가 오른 쪽으로 뻗었는지 왼쪽으로 뻗었는지까지 다 외우고 있는 그는 마치 산의 비밀을 송두리째 알아내려고 작정을 한 사람처럼 내게 보인다.
그는 의사면서 부자도 아니다. 의사라고 다 부자라는 법은 없지만 적어도 마음만 먹으면 부자일 수 있는 것이 이 땅의 현실이다. 보자이기를 한사코 피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것이 가난한 의사의 모습인 것이다.
그는 늘 산에 대해 이야기한다. 산이 그에게 준 위안들, 산으로 갈 수밖에 없는 허기진 정신, 이런 것들을 나는 그의 말로, 그의 소설로 끊임없이 듣고 읽는다.
그에겐 산만이 대답해 줄 수 있는 해묵은 숙제가 있다. 대답해 줄 수 있는 무엇을 하나 꽉 붙들고 있는 그가 때로는 행복하게 보이기도 한다. 내 해답지는 아직 인쇄되지 않고 있으니까.
그가 한 말 중에서 내게 가장 오래, 가장 깊게 남아 있는 것은 그러나 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의사였기 때문에 경험한 이야기다. 아직 산 어귀의 사람 사는 마을에서 발을 빼내지 못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이야기는 수술에 관한 여러 불가사의를 주제로 한다. 흰 가운을 입고 수술실에 들어가 환부를 열면 의사로서 오는 직감이 있다. 이 수술은 성공이다, 혹은 무의미하다. 직감에 관계없이 어떤 수술이든 최선을 다하고 나서 운명에 맡기는 것이 의사의 진심이지만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수술 마지막의 환부 봉합에 이르기까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성이 들어간다. 회복 후의 삶을 생각해서 촘촘히, 가능한 자국이 작게 남도록, 치밀하게 바늘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환자를 영안실에서 만날 때 그는 절망한다고 했다. 예쁘게 꿰맨 수술 자리를 보면 더욱 할말이 없어진다고 했다.
반대로, 도저히 살아날 것 같지 않은, 사망 진단 직전의 형식상의 수술을 받은 환자가 며칠 후 눈부시게 회복해서 침상에 앉아 웃고 있을 때도 그는 말을 잃는다고 했다. 거의 시체나 다름없는 환자의 환부에 무슨 흥으로 봉합 바느질이 세심했겠는가.
삐뚤삐뚤 듬성듬성 지나가 버린, 자신이 남긴 환부의 실 자국을 보면 등에 식은땀이 난다고 했다. 드러나지 않는 이 힘, 그러나 분명히 작용하고 있는 이 힘이 보여주고자 하는 뜻은 무엇인가. 그런 날에는 산에 가지 않고는 도저히 배길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었다.
촘촘한, 혹은 삐뚤삐뚤 봉합 바느질의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 서울을 향하는 기차 안에서 떠올려도 큰 떨림을 안겨 준다. 이 떨림을 나는 설명할 수 없다. 설명되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뚫고 나가라고만 말한다. 단지 그렇게만 말한다.
어떻게?
미로에서 출구를 잃은 나, 아침 저녁으로 먹히고 아침 저녁으로 우는 시인의 뜸부기, 안개 속으로 사라진 김종구, 자신의 꽃말을 암호로 만든 지브란, 그리고 의사의 바느질, 설명되어지지 않는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뚫으라는 것인가.
어디서부터 어디를. 나는 짓밟힌 귀신사에서 본, 모래 더미에 파묻힌 이름 모를 꽃을 생각한다. 그 숨어 버린 꽃 속으로 삼투해 들어간다.…….
기차는 자꾸 달린다. 아직 부옇기는 하지만, 서울에 닿으면 그래도 나는 기계 앞에 앉기는 할 것이다. 나는 아마도 한 거인을 그리려고 덤빌지도 모르겠다. 와해된 세계의 폐허 어딘가에 숨어 사는 거인, 결코 세상에 출몰하지 않는 거인의 초상, 그리고 숨어 있는 꽃들의 꽃말 찾기.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이 세상살이가 돌아가는 이치의 끝자락이나마 만져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영원히 설명되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을 나는 안다. 하지만 그것은 거인의 초상을 그린 후, 그때 생각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사상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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