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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은 무죄 / 문정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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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은 무죄 / 문정희

오렌지 향기 2012. 11. 28. 17:04

 

 

              

 

 

 

 

아이오와 대학 메이플라워 기숙사에서 한 계절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 아침이었다.

내 방문 안으로 활엽수처럼 산뜻한 종이 한 장이 들이밀어져 있었다.

"사랑은 이다지도 짧고, 망각은 그렇게도 길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구였다.

문득 날카로운 면도날이 영혼 깊숙한 곳을 스친 듯, 아릿한 소름이 돋았다.

옆방 장애인 시인이 보낸 것 같았다.  아니 세계에서 온 작가들은 모두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사랑했었다.

 

 

       그러니까 그 나이었어......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파블로 네루다, <시>중

 

 

열아홉 살에 유명한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펴낸 파블로 네루다는

칠레의 시인으로 만년에 노벨상을 받은 세계적인 시의 거장이다.

칠레는 우리나라만큼이나 정치적 격변이 심했던 나라이다.  그는 망명과 외교관 등으로 세계 곳

곳을 떠돌며 격랑의 생을 살았다.

친구인 시인 로르카가 스페인 내란 때 피살당하는 것을 목격한 후, 사회문제에 눈을 뜨고 민중과

함께 고통을 겪었지만 그의 시는 언제나 아름다운 서정과 눈부신 관능으로 꿈틀거렸다.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 속에 망명지의 시인으로 살아나 더욱 친근해진 시인이다.  인간의 따스함

이 살갗에 닿을 듯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그의 시집 속의 오묘한 고통들, 뻐근한 절망과 절절한 사랑을 읽으면 핏속에 숨은 열정과 사랑이

봄날의 버들잎처럼 파들파들 일어선다.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구절을/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때때로 그녀도

나를 사랑했다....."

네루다의 시구를 제목으로 나도 시 한 편을 썼다.

 

 

              사랑, 오늘 밤 나는 쓸 수 있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구절을

              이 나이에 무슨 사랑?

              이 나이에 아직도 사랑?

              하지만 사랑이 나이를 못 알아보는구나

              사랑이 아무것도 못 보는구나

              겁도 없이 나를 물어뜯는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열 손가락에 불붙여

              사랑의 눈과 코를 더듬는다

              모든 사랑에는 미래가 없다

              그래서 숨막히고

              그래서 아름답고 슬픈

              사랑, 오늘밤 나는 쓸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사랑은 무죄!

 

 

                               졸시, <오늘 밤 나는 쓸 수 있다 - 네루다 풍으로> 전문 / 문학의 도끼로 내 삶을 깨워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