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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실은 잠자리 - 정채봉
연못에는 많은 물 식구들이 살고 있습니다. 개구리와 물매암이와 소금쟁이와 물장군, 그리고 물방개들.그뿐만이 아닙니다. 물 속에는 붕어와 보리피리와 미꾸지가 살고 있습니다.그중에는 못난이 애벌레도 있습니다.
그러나 못난이 애벌레는 고기들처럼 멋지게 헤엄을 치는 것도 아니고, 물매암이나 물방개처럼 번들거리는 갑옷을 입은 것도 아닙니다. 마른 잎보다도 거친 피부에 험상궂은 머리를 지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누구도 못난이 애벌레하고 놀아주지 않았습니다. 간혹 못난이 애벌레가 묻는 말에 대답을 주는 것은 소금쟁이 아저씨가 고작이었습니다.
“아저씨는 우리 엄마를 보셨어요?”
“글쎄, 본 것 같기는 한데 확실치 않아.”
“왜요, 아저씨?”
“작년 늦가을 어느 날에 하늘에서 날아왔던 것 같거든.”
“우리 엄마가 물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날아왔다구요?”
“그렇지, 그 우아한 부인이 네 엄마가 틀림없다면 말이야.”
“그런데 어디로 가시던가요?”
“물 위에 뜬 갈대잎에 알을 슬고는 노을이 붉게 물든 서쪽으로 날아가던걸.”
그 뒤부터 못난이 애벌레는 노을이 뜨는 저녁 무렵이면 서족 하늘을 우러러보곤 하였습니다. 그럴 땐 언못 건너편의 논 가운데 사는 뜸부기가 뜸북뜸북 울음을 보내 오곤 하였었지요.
그날도 못난이 애벌레가 서녘 노을을 바라보며 눈물짓고 있었는데 꼬마 물방개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못난아, 무엇을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 엄마가 가신 나라를 생각하고 있어.”
“너희 엄마가 어디로 가셨는데?”
“저녁 노을이 아름다운 하늘 나라로 가셨댔어.”
“이 바보야! 날개도 없는 너희가 어떻게 하늘을 난다는 말이니?”
“아니야. 나한테는 꿈이 있어. 물을 자유로이 헤엄쳐 다니는 고기들처럼 나는 저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며 살고 싶어.”
“꿈 깨어라. 이 못난아! 물에서도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주제에 하늘을 헤엄쳐 다니며 살고 싶다고, 흥!”
그러나 못난이 애벌레는 어머니의 꿈, 하늘을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못난이 애벌레는 어머니께서 날아가셨다는 서쪽 나라를 향해 연못을 떠났습니다.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산 그림자가 내리는 해질무렵에 못난이 애벌레는 피투성이가 되어 연못에 나타났습니다.소금쟁이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이녀석아, 어디 가서 무엇을 하였길래 이런 모습으로 돌아왔니?”
그러나 못난이 애벌레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귀를 기울이고서 뜸부기가 보내오는 울음 소리만을 뜸북뜸북 듣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꼬마 물방개가 말을 걸었습니다.
“넌 엉뚱한 꿈을 가지고 살더니 결국 이렇게 처참히 죽는구나.”
그러자 못난이 애벌레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였습니다.
“나의 꿈은 빈것이 아닌 알맹이야. 죽는 것은 이 껍질만이고 알맹이는 저 푸른 하늘을 날며 살게 될거야.”
“어떻게 내가 그것을 믿니?”
“정의는 결국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나는 의로움을 위해 피가 나게 싸웠는걸.”
꼬마 물방개는 별 허튼소리도 다 듣는다며 자리를 떴습니다.
이튿날이었습니다.
소금쟁이 아저씨는 연못 가운데서 흰구름을 따라 맴을 돌다 말고 보았습니다. 두 날개를 찬란히 펴며 하늘로 올라가는 빨간 고추잠자리를.
`작년 늦가을 노을이 핀 서쪽 하늘로 사라진 그 우아한 부인 잠자리를 꼭 닮았구나.`
소금쟁이 아저씨가 서둘러서 못난이 애벌레가 묵고 있던 물옥잠화 그루터기로 가 보니 거기에는 못난이 애벌레의 빈 껍질만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양 가죽 위에 이 얼굴을 그려 지니고서 집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어디 사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막연한 초상화 하나만을 가지고서 사람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방방곡곡 동네마다 일찍이 예언자들이 일러준 마을을 찾아다니며 노인들이나 아이들 앞에 양 가죽을 펴 보이고 물었습니다.
“혹시 이런 이마에, 광대뼈가 이렇게 불거진 사람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아이들아, 이런 눈과 이런 길다란 목을 가진 아저씨를 본 적이 없니?”
대개는 고개를 저었지만 더러 비슷한 사람을 보았다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막상 찾아가 보면 전혀 자기 집 후원의 연못 속에 나타나 있는 얼굴하고는 다른 사람들뿐이었습니다. 그는 차츰 지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머니 속의 돈도 달랑 떨어져서 걸인 생활을 하여야 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그의 가슴 한편에서 물음표들이 나타났습니다.
`형의 말이 맞는 거 아냐? 환영을 본 것이라고.`
`그래서 어쩌겠다는거야? 그를 왜 만나려고 하는거야?`
`그를 만나면 무엇을 준대? 원하는 것을 정말 줄 수 있대?`
굶주리고 남의 처마 밑에서 자는 날이 많아져 갔습니다. 이번에는 물음표들이 모여서 보다 강렬한 또 하나의 그를 만들어 냈습니다.
`너 정신이 있는거니? 없는거니? 왜 이렇게 고생을 시켜? 지금 며칠째야. 물밖에 먹지 않은 것이. 왜 이렇게 고생을 사서 해? 집이 없어? 배운 것이 엇어? 나도 너라고. 이젠 더 못 움직이겠어.`
그는 결국 나무 그늘 아래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땐 뜻밖에도 여인숙의 따뜻한 아랫목이었습니다. 머리맡에는 먹음직스러운 죽 그릇도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문에 스며드는 노오란 햇살을 보고 와락 눈물을 흘렸습니다. 멀리 달아나는 바람소리에서 평화로움을 느꼈스니다. 알을 낳았는지 `꼬꼬대에 꼬꼬`하고 우는 닭 울음 소리에서 비로서 살아 있음의 맛을 보았습니다.
이때 밖에서 인기척이 났습니다.
“크음.”
기침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각종 표지물들을 주렁주렁 단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제 정신이 드셨나 보군요. 괜찮소. 그대로 누워 있어요.”
그러나 그는 일어났습니다. 목숨을 건져준 사람에게 큰절을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아랫목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물었습니다.
“젊은 분이 어찌해서 그런 몰골로 헤매고 있소?”
“구원의 선생님을 만나고자 하여...”
“구원의 선생님이라, 그러니까 이 땅에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줄 의인을 찾아 다니고 있었다는 말이구려.”
“네, 그렇습니다.”
“갸륵한 젊은이로군.”
그러나 입 밖에서 나온 말과는 달리 그 사람의 얼굴에는 싸늘한 웃음이 흐르고 있었지요. 그는 일어나서 떠나려고 하는 그 사람의 비단 옷자락을 붙들고 사정하였습니다.
“그냥 가지 마시고 한 말씀만 들려 주십시오. 은인의 말씀을 언제까지고 마음에 새겨 두겠습니다.”
그 사람이 측은하다는 얼굴빛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젊은이. 물론 영혼을 구원해 줄 선생님도 찾아야지요. 그러나 땅에서의 삶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에요. 그러려면 돈의 힘을 알아야 하오. 돈이 있으면 못 이룰 게 없는 것이 이 세상의 일이거든.”
그 사람은 깊이 생각해 보라는 듯 금화 두 닢을 `쨍그랑` 소리가 나게 그의 앞에 던져 주고 사라졌습니다.
그는 몸을 회복하여 여인숙에서 나왔습니다.
이제는 고향으로 바로 떠나려고 하는데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노파가 다가와 그에게 일러 주었습니다. 여기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목수 집이 있는데 그 양 가죽의 얼굴이 그 집 아들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행여나 해서 목수네 집을 찾아갔습니다.
마침 그 집 아들은 작업장의 대팻밥에 묻혀서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가슴속에서 양 가죽을 꺼내어 그림의 얼굴하고 맞춰 보았습니다.
`오, 이럴수가!`
그의 집 뒤꼍 연못 속에 비쳐 든 얼굴은 바로 이 목수네집 아들임이 틀림없었습니다.
어깨가 덮일 정도로 긴 머리칼, 불거져 있는 광대뼈, 그리고 넓은 이마와 길다란 목 하며.
그러나 그는 얼른 믿어지지가 앉았습니다. 이런 가난한 집에 살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이렇게 낮잠이나 자는 젊은이라는 것도 자기가 생각했던 것하고는 영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문득 표시를 해두고 확인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목수 아들의 잠을 깨우지 않고 표시해 둘 거리가 없을까 궁리하다가 주머니 속의 금화를 생각해 냈습니다. 그는 금화를 꺼내서 목수 아들의 머리맡에 살며시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서둘러서 고향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짐도 부리지 않고 급히 뒤꼍으로 돌아갔습니다. 연못가에 서서 연못 속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머리맡에 놓인 금화 빛을 받아서 번쩍번쩍 황금빛이 나고 있는 연못 속의 얼굴.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소리질렀습니다.
“내가 너를 팔아 가지겠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연못 속의 얼굴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은 무심히 흰구름 한 조각만이 연못에 떠서 물방개를 따라 맴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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