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Now On...

2023년 12월 13일 수요일 매일 성경 욥기 36:1-25 <욥에게 회개를 강요하는 엘리후> 본문

매일성경

2023년 12월 13일 수요일 매일 성경 욥기 36:1-25 <욥에게 회개를 강요하는 엘리후>

오렌지 향기 2023. 12. 13. 06:00

<묵상>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시나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 이제는 악인의 받을 벌이 그대에게 가득하였고 심판과 정의가 그대를 잡았나니 그대는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많은 뇌물이 그대를 그릇된 길로 가게 할까 조심하라"(욥 36:15-18)

엘리후는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합니다.

엘리후는 고난애 대한 신앙적인 의미와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까지 잘 알고 있으며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 것 처럼 고난이 하나님의 훈련도구인데, 욥은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반항만 한다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아픈 곳을 또 때리는 엘리후의 말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는 보이지만 욥을 위로하는 동정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욥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고난을 주었으므로 감사하며 하나님 은혜를 찬양하라는 엘리후는 신앙적으로 모범적인 답안을 말한 것 같습니다.

욥이 더 이상 고난을 받지 않기 위하여 재물 욕심도 버리고, 고난을 회피하는 악을 저지르지 말라고 충고까지 하는 엘리후의 말 속에서 욥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욥은 도대체 왜 이런 고난을 당하는걸까요?

욥이 받는 고난은 결국은 욥과 하나님만 아는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욥은 고난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엘리후 말처럼 하나님께 고난에 대한 찬양이 나오지 않는 욥은 억울하기 때문이지요.

고난은 하나님의 징계일뿐이라는 단순한 논리로 믿음이 좋은 욥같은 사람을 정죄하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 욥기 36 : 1 - 25 >

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나를 잠깐 용납하라 내가 그대에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아직도 할 말이 있음이라
내가 먼 데서 지식을 얻고 나를 지으신 이에게 의를 돌려보내리라
진실로 내 말은 거짓이 아니라 온전한 지식을 가진 이가 그대와 함께 있느니라
하나님은 능하시나 아무도 멸시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사


악인을 살려두지 아니하시며 고난 받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며
그의 눈을 의인에게서 떼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들과 함께 왕좌에 앉히사 영원토록 존귀하게 하시며
혹시 그들이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그들의 소행과 악행과 자신들의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나니


만일 그들이 순종하여 섬기면 형통한 을 보내며 즐거운 해를 지낼 것이요
만일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
마음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이 속박할지라도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그들의 몸은 젊어서 죽으며 그들의 생명은 남창과 함께 있도다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시나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
이제는 악인의 받을 벌이 그대에게 가득하였고 심판과 정의가 그대를 잡았나니
그대는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많은 뇌물이 그대를 그릇된 로 가게 할까 조심하라
그대의 부르짖음이나 그대의 능력이 어찌 능히 그대가 곤고한 가운데에서 그대를 유익하게 하겠느냐
그대는 밤을 사모하지 말라 인생들이 밤에 그들이 있는 곳에서 끌려 가리라


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 그대가 환난보다 이것을 택하였느니라
하나님은 그의 권능으로 높이 계시나니 누가 그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누가 그를 위하여 그의 을 정하였느냐 누가 말하기를 주께서 불의를 행하셨나이다 할 수 있으랴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
그의 일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나니 먼 데서도 보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