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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0일 수요일 마태복음 18 장 11 절 ~ 20 절 <하나라도 잃지 않기 위해> 본문
<묵상>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 18 : 14)
이 말씀 안에서 작은 자란 아마도 참 보잘 것 없는,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를 말함이 아닐까요?
아니면 죄를 지어서 사회적으로 지탄 받고 있어서 자존감이 떨어질대로 떨어져버린 어떤 못난 사람이 바로 작은 자가 아닐까요?
눈도 어둡고, 고집도 세서 목자가 부르는데도 못 듣고 다니다가 벼랑으로 떨어져서 버둥거리며 죽을동살동 매달려 있는 못생긴 양 한 마리도 작은 자일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구원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비록 보잘 것 없는 존재라서 아주 어리거나 아니면 병들고, 무기력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에게는 소중한 존재이고 귀한 생명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리고 힘 없는 아이들을 폭행하고, 죽이는 일은 더 죄가 큰 것 같습니다.
뱃속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생명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일 것입니다.
우리가 무시해도 좋을만큼 작은 자는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등산을 간다면 다들 힘을 합해 정상까지 오르는 것이 목표이지만 몇몇 사람은 체력이 약해서 중도 포기자가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약한 사람은 버리고 정상까지 빨리 올라가는 사람은 등산의 진정한 목적을 모르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함께 친목과 건강을 다지기 위해 등산을 하는 것이 목표라면 함께 가다가 낙오한 사람은 기다려주고 짐을 덜어주는 것이 등산의 목적이 되는 것이지 남을 짓밟고라도 홀로 정상에 올라가는 사람을 칭송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목적이 바로 이런 것이지요.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한 영혼이라도 하나님 앞에 함께 나아가게 하려면 가다가 넘어지는 자는 일으켜주고, 그의 짐을 대신 짊어지고 가주기도 해야 함께 걸어가는 인생이 되는 것이지 늦게 걷는 사람은 내버리고, 딴 짓하면서 걷는 사람은 옆으로 밀쳐버리고 혼자서 걷는 길은 결코 아름다운 길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라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자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으며 나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옆의 동료가 넘어졌는데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동물이지요. 동물도 자식은 건사할 줄 알고, 동료를 기다려주기도 한다지요.
용서하고 화해하며 함께 걸어가는 인생을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18 장 11 절 ~ 20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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