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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tav Klimt(구스타브 클림트)-풍경화와 데생 본문
말년의 그는
일년을 둘로 나누어 살았다.
저 유명한 아프리카 풍의 긴 장옷을 걸치고 일년의 반은
비엔나의 작업실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작업에
몰두하고,
나머지 반은 그와는 사돈지간인 의상 디자이너
에밀리에 플뢰게
와 함께 아터 호반에서 고요한 휴식과 명상을 즐기곤 했다.
[자작나무가 있는 농가] [언덕 위의 정원]
[스클로스 캄머 정원의 길] [아터 호수 근처의 운터아크 교회] 같은
그의 대부분의 풍경화들은 바로 아터 호수 주위의 풍광을 대상으로 한 것들이었다.
고흐와 모네, 일본 판화의 영향을 부분적으로 받은 그의 아름다
운 풍경화들을 '채색된 슈베르트의 선율'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초상화 또한 그가 풍경화와 더불어 말년에 즐겨한 작업이었다[프리차리들러 부인의 초상] [아델 블로흐 부인의 초상] [마르가레트 스톤브로우 비트겐슈타인 부인의 초상] [요한나슈타우데 부인의 초상]등 그는 화려하고 현란한 장식과 색채로비엔나의 부녀자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그에게서 초상화를 그려 받는 것은
비엔나 상류층 부인들의 긍지이자 영광이었다.
자신의 삶과 그림을 둘러싼 그 모든 소음에서 벗어나,가슴을 벌레처럼 파먹어 대는 그
집요한 금전적 번민에서도 벗어나 자연 속에 파묻혀 관조와 명상의 나날을 보내며......
1918년은 마치 흑사병과도 같은 맹위를 떨치며 전 유럽을 강타해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이 비엔나를 기습해 분리파
예술가들을 몰살시킨 해였다.
채 투병하다 결국 스페인 독감에 걸려 2월 6일 평생의 연인 에밀리
에 플뢰게가 지켜보는 가운데 56세의 나이로 영면한다.
의 창설자인 디자이너 콜로만 모저도,임종의 클림트를 스케
치했던 28세의 청년 에곤 쉴레도 갔다.
클림트의 삶과 그림을 관류했던 것은 사랑이라는 고전적인, 그리고
언제나 현재적인 테마였다.
그가 과연 자신의 화두를 풀었는지 못 풀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풍경화에 몰두한 그의 말년의 모습에서 그저 어렴풋이 헤아려 볼
뿐이다.
완전한 사랑이란 영원히 인간의 손에 쥐어지지 않으며,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건
낡고 남루한 집 같은 사랑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흠 없는 거쳐가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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