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 여호와여 어찌하여 우리로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원하건대 주의 종들 곧 주의 기업인 지파들을 위하사 돌아오시옵소서
- 주의 거룩한 백성이 땅을 차지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우리의 원수가 주의 성소를 유린하였사오니
- 우리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못하는 자 같이 되었나이다
<묵상>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사 61:10)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다면 인내하는 동안은 고통스럽고 괴롭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몸 안에 있으므로 죽을만큼 괴로운 상태를 참고 견뎌야 합니다.
그러한 견딤을 주님은 동정심을 가지고 보고 계시며 완전한 구원의 약속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참고 인내하는 그동안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겸손하고 경건하게 하나님 안에서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은 마치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처럼 설레고 사랑스럽고, 기분 좋은 두려움까지 은혜롭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 61:1-3)
영화 <부산행>을 보았습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들이 탄 부산행은 죽음으로 가는 열차였습니다.
영화가 무서운 게 아니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미친듯이 달려가는 우리의 운명이 더 무서웠습니다.
제속에 있는 좀비같은 근성도 무서웠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물어뜯고 싶고, 화가 나면 동물처럼 무서워지는 그 근성이 나를 좀비처럼 변하게 할 수 있다는 무서움이 엄습했지요.
그 영화를 통해서 제가 느낀 것은우리는 죽음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바쁘게 살다가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살게된 우리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살아서 죽음으로 달려가고 있으면서 돈과 욕심과 자식을 위한 모든 일에 몸을 내던지고 살면서 죽음은 더 빨리 종착역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이 죽음의 바이러스를 이기는 백신을 맞은 것입니다.
아무리 현실이 무섭다할지라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순간 그 확실한 백신은 우리의 영혼을 바꾸어놓고 우리와 머나먼 단어인 것 같은 영광이라는 단어와 거룩이라는 단어를 하나님을 향해 되뇌이면서 우리는 바뀌게 되고, 육신이 더러운 죽음을 피하지 못할지언정 죽는 순간까지 바라볼 하늘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부산행>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좀비로 변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떠나지 못해서 결국은 좀비로 변하는 사람이 몇몇 나옵니다.
사랑이 깊은 사람들의 눈엔 좀비로 변한 무시무시한 모습도 불쌍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내 몸을 던져서까지 우리를 구하신 예수님처럼 그들을 불쌍하게 생각할 수 있는 동정심이라도 있는건지 의심스러웠습니다.
구원 받지 못하고 죽음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제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