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5일 금요일 마태복음 23 장 29 절 ~ 39 절 <죄를 계승한 자들>
<묵상>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마 23:37)
예수님이 살아계신 시대에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과 악함이 특별히 기승을 부리며 예수님께 대적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현존하는 시대였으니 사탄의 발악은 예수님을 공격할 수 있는 대적자들을 찾아서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을 죽이려했을 것입니다.
이들은 세례 요한에게 저주를 받을만큼 사악했습니다. (마 3:7)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는 것으로 끝난 줄 알았지만 부활하심으로 사탄의 뒤통수를 치신 예수님은 결국 승리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조상들이 수많은 선지자들을 죽인 죄를 자신들도 똑같이 하면서 조상들의 죄를 소리내어 비판하는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에게 호된 일침을 가하십니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는 말씀은 너희도 똑같은 일을 하므로 저주가 기다리고 있음을 선고하십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을 예언하시는 예수님의 말대로 예루살렘은 A.D. 70년에 로마의 디도에 의해 멸망 당하고 후에 1948년 5월에 회복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멸망당할 이스라엘을 암탉이 병아리들을 날개 아래에 감싸고 있는 것 같이 품고 있는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데 참으로 슬픈 느낌입니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 병아리들을 놔두고 예수님은 죽임을 당할테니 병아리들의 앞 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슬프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여러 번 방문하였는데 이 모습은 마치 암탉이 병아리를 모아서 날개 아래에 두는 것 같이 예수님께서 그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던 상황들을 표현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와 비슷한 모습이 연상되는 성경에서의 사건은 예레미야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그 당시에 이스라엘이 당할 운명을 비탄조로 읊조렸던 상황과 비슷하게 비장하고 슬픈 예수님의 선고는 비록 완전한 멸망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아직도 그들을 사랑하고 계시고, 아직 시간이 있을 때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죄를 계승한 자들에게 닥친 죄의 댓가였습니다.
예루살렘을 버리신 예수님에게 '나의 집'이었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너희 집'으로 표현되니 슬프고 먹먹한 느낌이 듭니다.(마 23:38)
'나를 보지 못하리라'는 이별을 고하는 예수님이 어떤 심정으로 이 말씀을 하셨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영문도 모르고, 무지하고, 가난한 백성들은 종교 지도자들의 말만 믿다가 멸망에 동참하게 되니 예수님의 속은 무척 상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끝까지 책임지지도 않을거면서 정죄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던 무리들은 지도자계층이었고,학식이 높았고, 잘 먹고 잘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떠난 예수님은 재림을 앞두고 계십니다.
그때는 성경에서 말씀하신 대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부르며 눈물로 맞이할 것입니다.
저도 예수님의 재림을 가슴 떨리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끝없이 외치며 눈물 흘릴날이 제 생전에 왔으면 좋겠습니다.
<마태복음 23 장 29 절 ~ 39 절>
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