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8일 화요일 열왕기하 23 장 21 절 ~ 30 절 <요시야의 죽음>
요시야의 개혁
<묵상>
"요시야 당시에 애굽의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맞서 나갔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났을 때에 죽인지라"(왕하 23 : 29)
애굽의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전쟁을 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하고 싸울 마음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요시야는 바로 느고와 싸우러 뛰쳐 나갔을까요?
참으로 영문을 모를 죽음을 요시야는 맞이했습니다.
요시야는 판단을 잘못했거나 용기가 넘쳐서 경거망동한 것입니다.
요시야가 일으킨 종교개혁의 혁혁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의 종말은 너무나 허무했습니다.
또한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는 3개월을 통치하고 바로에게 잡혀갔습니다.
여호아하스는 애굽의 이름인 '여호야김'이라는 새이름을 갖게 되면서 애굽에게 세금을 바치며 악을 행했다고 합니다.
여호아하스가 아버지 요아스를 조금이라도 닮았더라면 그의 생애에 있어서 뭔가 뜻 깊은 일을 하거나, 바르게 살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부모가 잘나고, 훌륭하다 할지라도 자식에게 교육과 인품을 고쳐주지 않으면 부모가 쌓은 명성에도 먹칠을 하게 되는 것을 요시야를 통해서 깨닫습니다.
지금의 제 아들들도 부모를 따라서 교회는 다니지만 그들의 믿음을 확실히 심어주지 않으면 교회와 예배는 그저 장식품처럼 여기게 되고, 크리스챤이라는 자부심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편의에 따라 세상의 물질만능주의에 편승하면서 평범함보다도 더 못한 삶을 살게 될 것 같습니다.
부모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 모습에서 자식들이 인생의 깊이를 깨닫고, 자신은 부모보다 더 노력하는 가운데 부모의 신념을 이뤄나가는 교육의 현장이 바로 가정인 것 같습니다.
가정이 그저 먹고, 자고, 화내고, 분풀이하는 생리적인 욕구만이 넘실대는 안식처가 된다면 짐승과 별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자녀교육에 실패한 요시야의 허망한 죽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나보다 더 위대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열왕기하 23 장 21 절 ~ 30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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