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묵상>
"내 양을 먹이라"(요21:17)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에는 뼈아픈 깊이가 있습니다.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에는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고백하지 말고,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자랑하지 말고 가슴 깊숙한 곳에 내가 들어가 있는지 자신의 목숨과 똑같이 여기느냐는 질문입니다.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은 사랑을 이루는 과정입니다.
사랑을 이루는 과정에는 나의 전부를 소모하면서 불태우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을 때에는 '베드로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보다 더 깊은 아픔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 내면 속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주님의 아픔을 느낀 적이 있으십니까?
사탄 마귀도 그 내면 깊숙한 곳까지 아픔을 줄 수는 없는 곳에 주님의 아픔을 간직하고 계십니까?
그곳에는 사람의 애정도 들어갈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도달할 수 있는 깊은 곳입니다.
참된 사랑은 결코 큰 소리 치지 않고 고백을 남발하지 않습니다.
오늘 주님은 베드로의 사랑을 아시고 "내 양을 먹이라"고 세 번 말씀하십니다.
첫번째 양은 어린 양을 의미합니다.
아기 양을 먹이고 키우라는 말씀입니다. 어린 양을 맡기려면 정말로 자신이 믿는 사람에게 신뢰감을 갖고 부탁하는 것이겠지요.
두번째 양은 동사적으로 약간 차이가 있는 지키라, 돌보라는 의미의 약간 성장한 어린 양을 의미합니다.
세번째 양은 성숙한 양에게는 아가파오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목회의 사명을 주시는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전적으로 신뢰감을 보이십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실 때는 상상을 초월하는 아픔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감상도 흥분도 없어서 멋진 말로 대답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고통은 하나님의 실수나 우연도 아니고 위대한 계시의 순간입니다.
오늘은 이런 계시가 저에게도 주어진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아픔과 함께 주님의 질문이 저에게도 주어진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삶에서 새 교회로 변화하는 과정을 알려줍니다.
부활하는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자신이 해야할 일을 깨닫습니다.
사실 부활하시는 예수님을 볼 때 유령을 보았다고 생각해야 아마도 일반적일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제자들도 인간이니까 '우리가 유령을 본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유령을 보았을 때 덜덜 떨리는 입술과 핏기가 가신 얼굴이 되어서 무서웠을텐데 예수님의 부활을 마지막에 확인한 제자들은 세상에 그것을 외치고 싶었고, 공포가 아니라 용기가 가득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