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골 4:6)
말을 할 때 은혜로 가득차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칭찬하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사랑으로 감싸는 것이겠지요.
그러한 은혜로 가득한 표현 가운데 너무 심심해서 소금으로 간을 내려면....
아마도 소금이란 정확한 현실을 직시해서 따끔한 충고의 말씀이겠지요.
아주 약간의 소금이 음식의 맛을 내듯이 은혜로 가득찬 접시 안에 약간의 소금만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저는 너무 짠 맛을 많이 내는 음식을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저는 태생이 경상도라 워낙 짠 음식도 좋아하지만....소금을 너무 많이 뿌리는 습성이 있나 봅니다. ㅎㅎ
소금을 너무 많이 뿌리면 짜고, 소금이 살에 닿으면 따갑고, 소금이 많이 뿌려지면 먹기 싫지요.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골 4:2)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는 말씀에서 은혜를 많이 받는 아침입니다.
감사함으로 아뢸 것이 요즘은 많아집니다.
한 해가 이렇게 마무리 되는 것이 감사합니다.
감사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감사할 거리를 찾아서 주변을 둘러보아야 감사가 보입니다.
감사가 사방에서 반 쯤은 몸을 감추고 있어서 눈을 씻고 둘러보아야 합니다.
오늘 만나가 참으로 감사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6-17)
오늘은 휴거 현상에 대해서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휴거 부분을 읽을 때에는 성경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려고 해서인지 그 의미가 잘 다가오지 않아서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구석구석 읽고 묵상하면서 몇 번 반복해서 읽다보니 휴거가 반드시 그렇게 될 일로 생각되어집니다.
휴거는 영어로는 'Rapture', 한문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携擧'입니다.
'붙잡다'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라피오(Rapio)'에서 유래한 말로 '들림을 받는자'는 뜻인데
정의를 내리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미 죽은 성도들과 살아 있는 성도들이 모두 지상으로부터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에스겔에서 마른뼈가 살아나서 살과 피가 입혀지는 장면이 떠오르는데 실제로 사람이 살아있는 채로 하늘로 들려올라간 경우가 에녹과 엘리야의 승천을 볼 수 있습니다.
전도자 빌립은 사도행전 8장 39절과 40절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 1-4절에서 이와 유사한 체험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완벽한 휴거의 형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사건이지요.
휴거의 시기는 직접적으로 성경에서 알려주는 구절은 없지만 학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혹은 7년 대환난을 기점으로 발생하는 현상일 것이라고 합니다.
학자별로 환난 전 휴거설이 있고, 환난 중 휴거설이 있고, 환난 후 휴거설이 있지만 그 시기는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부활과 재림이 반드시 있을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성도들이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 그곳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이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어린양의 혼인잔치'(계19:9)라는 것이지요.
불교에서는 불교의 세계에 깊이 깊이 들어가도 그 끝엔 아무 것도 없다고 가르치지요.
아무 것도 없는 허무한 세상이니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반드시 재림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끝은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들려올라가기 위한 성도에 대한 권면이 기독교에서는 중요합니다.
항상 깨어서 근신하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무장하고, 기쁨과 감사와 기도를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여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택하신 성도에게는 악에 치우치거나 실족을 하려는 상황을 만나면 깨달음과 가책을 주셔서 바른 자리로 돌아오도록 붙잡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붙잡아 주신다는 사실에 큰 위안을 받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