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말 4:5-6)
구약성경이 마감되는 말라기로 부터 400년간의 긴 침묵의 기간이 다가옵니다.
포로생활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말라기는 엘리야의 권능과 심령으로 나타날 약속된 선구자 세례 요한을 위해 쓰여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만나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스라엘에 축복이 없는 것에 대해 호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사장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믿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점점 부패해졌고 , 십일조와 헌물에 대한 무관심과 무성의,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에 대해서 진노하셨습니다.
그런데 100년 전에 학개와 스가랴가 똑같은 죄를 회개하기를 촉구했었습니다.
그러니까 100년 동안 똑같은 죄를 범하면서도 제사장들과 백성들은 그것을 모르고 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지 모르겠다고 그야말로 오리발을 내밀고 있습니다.
타락한 사람을 향한 호소가 과연 효과가 있을까요?
지금 시대의 형제나 친한 사람의 타락한 생활을 지적하면 아마도 '너나 잘해!', '남의 일에 참견 마!'라는 소리를 듣겠지요.
같이 죄를 짓고 사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효과가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에는 그 말 속에서 주는 울림이 아주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도 복음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누군가를 가르치면 생각보다 많이 누그러집니다.
하지만 마지못해서 하는 예배나 회개는 안하느니만 못합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율법을 지키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을 돌려드리는 일이 중요합니다.
신약시대에 들어서서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합니다.
지금도 논란이 있긴 하지만 마리아는 아마도 몸과 마음이 깨끗했기 때문에 그리고도 믿음이 정결하고 곧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았겠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집안에 예수님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그 윗대 조상으로부터 피와 믿음을 깨끗하게 준비시켜 놓으신 것 같습니다.
정말 말 안듣고 말썽만 피우는 아들의 나쁜 버릇을 고쳐주기 위하여 아버지가 대신 죄 값을 지고 감옥에 가는 경우가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보다보다 못해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지요.
가장 무서운 징벌은 용서라는 것을 인생을 살다보면 깨닫듯이 가장 무서운 복수는 사랑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희생하시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던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과 가슴 아픔이 동시에 밀려오는 아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