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자들이 부르짖는 소리와 양 떼의 인도자들이 애곡하는 소리여 여호와가 그들의 초장을 황폐하게 함이로다
- 평화로운 목장들이 여호와의 진노하시는 열기 앞에서 적막하게 되리라
- 그가 젊은 사자 같이 그 굴에서 나오셨으니 그 호통치시는 분의 분노와 그의 극렬한 진노로 말미암아 그들의 땅이 폐허가 되리로다 하시니라
<묵상>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 너는 이 백성에게 전하라 하셨느니라 "(렘 21:8)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삶과 죽음이 갈라지는 것만큼 절박하고 긴박한 게 있을까요?
아이에게 장기를 떼어주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게 되므로 부모들은 될수만 있으면 장기를 떼어줍니다.
아무리 엄한 부모라도 죽음이 아이에게 닥치면 자신의 무엇이라도 주어서 아이를 살리고 싶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좀 더 편하게 생명의 길과 사람의 길을 보여주시면서 택하라고 말씀 하시는 것 같습니다.
머리가 둔한 사람도 2지선다형 문제는 확률이 50% 이므로 맞추기 쉽지요.
오늘 결정해야 할 일 그리고 오늘 만나야할 사람을 생명을 주는 것인지 아니면 사망에 이르는 것인지를 안다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누구든지 생명의 길을 가고 싶지만 간혹 자신의 아집 때문에 사망의 길을 택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혹시 자신은 사망의 길인줄 알고 택했는데 다른 다수의 사람들이 택한 길을 가지 않아서 불안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자신만 살아남았고 다른 다수의 사람들이 택한 길이 사망의 길이었던 경험이 있나요?
저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을 택한 제 경우가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어찌 생각해보면 절벽에서 제가 눈감고 뛰어내릴만큼 용기있었던 행동이었습니다.
뛰어내렸더니 안락한 장소에서 살아 남았습니다.
지금은 너무나 감사하며 아침 묵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렘 24:7)
썩은 무화과와 좋은 무화과의 비유를 통하여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는 예레미야를 오늘 만나에서는 만납니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강조하시면서 자신들의 백성을 보호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은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왔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에는 바벨론에 완전히 포위되어서 파멸될 것 처럼 보였고 실제로 바벨론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바벨론이 있던 자리에는 모래만 뒤덮고 있을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놀랍게도 살아남아서 오늘도 그 위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사탄의 파괴적인 공격과 박해는 지구상에 어느 민족이 당한 것보다 무섭습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의 언어까지 살아남았고, 그들은 건재하고, 번영하고 있습니다.
2,500년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씌운 구약성경은 지금도 베스트셀러입니다.
예레미야는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 당시에 이스라엘을 장악하고 있는 권력있는 사람이나 지도자계층은 자꾸 자신들의 잘못을 들먹이며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말하는 예레미야가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을겁니다.
오늘 날의 우리 사회에 이러한 예레미야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군대가 이렇게 썩었고, 사법부의 부패와 성적인 타락이 이렇게 심하고, 국민들은 뉴스거리에 호들갑을 떠는 우리 사회는 망할 것이라고 말하는 예레미야의 역할을 하는 진중하고, 정결하고, 바른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북한이 금방이라도 쳐들어올 기세로 노려보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너무나 한심하기 짝이 없이 부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신다면 냄새나고 더러운 우리 사회에 대하여 뭐라고 하실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과연 어떻게 심판하실지를 가늠해보는 아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