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Now On...
Pilgrim at Tinker Creek / Annie Dillard 본문
That it's rough out there and chancy is no surprise.
그곳은 거친 세상이며 위험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Every live thing is a survivor on a kind of extended evergency bivouac.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쭉 펼쳐진 일종의 비상 야영지에서 살아남은 것들이다.
But at the same time we are also created.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또한 창조된 존재이기도 하다.
In the Koran, Allah asks, "The heaven and the earth and all in between, thinkest thou I made them in jest?" It's a good question.
코란에서 알라는 "천상과 지상,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들을 내가 그저 장난으로 빚어냈다고 너는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좋은 질문이다.
What do we think of the created universe, spanning an unthinkable void with an unthinkable profusion of forms?
가늠할 수 없는 무를 가늠할 수 없는 무수한 형태로 가로지르는, 이 창조된 우주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Or what do we think of nothingness, those sickening reaches of time in either direction?
혹은 어느 방향으로 가든 그 지긋지긋한 시간이 도달하고야마는 것에 대해, 무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If the giant water bug was not made in jest, was it then made in earnest?
만약 물장군이 장난으로 빚어진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진심 속에서 창조된 것일까?
Pascal uses a nice term to describe the notion of the creator's, once having called forth the universe, turning his back to it:Deus Absconditus.
창조주는 일단 우주를 불러들인 뒤에 우주에 대해 등을 돌린다는 관념을 파스칼은 "숨은 신(Deus Absconditus)'이라는 근사한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Is this what we think happened?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사태의 본말인가?
Was the sense of it there, and God absconded with it, ate it, like a wolf who disappears round the edge of the house with the Thanksgiving turkey?
늑대가 추수감사절에 먹는 칠면조 고기를 가지고 집 모퉁이 근처에서 사라져 버리듯이, 신도 우주를 가지고 도망쳐서 그것을 먹어 버린 것인가?
"God is subtle," Einstein said, "but not malicious."
"신은 불가사의하지만, 악의는 없다"라고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Again, Einstein said that "nature conceals her mystery by means of her essential grandeur, not by her cunning."
아인슈타인은 또 말하기를, "자연이 자신의 신비를 숨기는 방식은 근본적인 장엄함을 통해서이지 속임수를 통해서가 아니다."라고 했다.
It could be that God has not absconded but spread, as our vision and understanding of the universe have spread, to a fabric of spirit and sense so grand and subtle, so powerful in a new way, that we can only feel blindly of it hem.
아마도 신은 도망간 것이 아니라, 우주에 대한 우리의 비전과 이해가 펼쳐지듯이 정신과 지각이라는 직물에 펼쳐져 있는 것이리라. 너무나 장엄하고 불가사의한 그 직물에 너무도 강력하게 새로운 방식으로 펼쳐져 있어 우리는 그저 맹목적으로 그 천의 가장자리나 간신히 만질 수 있을 따름인지도 모른다
In making the thick darkness a swaddling band for the sea, God "set bars and doors" and said, "Hitherto shalt thou come, but no further."
하나님은 짙은 어둠의 띠로 바다를 둘둘 말고는 "문에 빗장을 내려놓은" 뒤 "여기까지는 와도 좋지만 그 이상은 넘어오지 마라."라고 말했다.
But have we come even that far? 하지만 우리는 거기라도 도달했는가?
Have we rowed out to the thick darkness, or are we all playing pinochle in the bottom of the boat?
그 짙은 어둠을 향해 노를 젓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보트 바닥에서 카드놀이나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Cruelty is a mystery, and the waste of pain. 잔혹함은 수수께끼이고 고통의 낭비다.
But if we describe a world to compass these things, a world that is a long, brute game, then we bump against another mystery: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감싸고 있는 세계, 오래 지속되는 잔혹한 게임인 이 세계를 묘사할 때 우리는 또 다른 수수께까에 부딪히게 된다.
the inrush of power and light, the canary that sings on the skull.
급작스럽게 쏟아져 내리는 권능과 빛, 그리고 해골 위에서 노래하는 카나리아의 수수께끼 말이다.
Unless all ages and races of men have been deluded by the same mass hypnotist(who?), there seems to be such a thing as beauty, a grace wholly gratuitous.
만약 모든 세대를 망라해 온갖 인종의 인간들이 동일한 대중 최면술사(누구란 말인가?)에게 미혹되지 않았더라면, 값없이 온전히 주어지는 은총이라든가 아름다움 같은 것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About five years ago I saw a mockingbird make a straingt vertical descent from the roof gutter of a four-story building.
한 5년 전쯤 나는 앵무새 한 마리가 4층 건물의 지붕 홈통에서 곧장 수직선을 그으며 하강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It was an act as careless and spontaneous as the curl of a stem or the kindling of a star.
그것은 마치 수증기가 그리는 곡선처럼, 혹은 별의 반짝임처럼 태평스럽고 자연스러웠다.
The mockingbird took a single step into the air and dropped.
그 앵무새는 허공에 한 발을 내딛고는 떨어졌다.
His wings were still folded against his sides as though he were singing from a limb and not falling, accelerating thirty-two feet per second per second, through empty air.
그 앵무새는 나뭇가지에서 노래라도 부르고 있는 양 날개를 접은 채로 초당 960미터의 속도를 더하면서 허공 속으로 추락했다.
Just a breath before he would have been dashed to the ground, he unfurled his wings with exact, deliberate care, revealing the broad bars of white, spread his elegant, white-banded tail, and so floated onto the grass.
땅으로 곤두박질치기 바로 직전에 그 앵무새는 찬찬하면서도 주의 깊게 날개를 펼쳐, 하얀 띠가 둘러진 우아한 꼬리 부분에 있는 하얗고 넓은 부챗살 모양을 드러내 보여 주었다. 그러고는 풀밭으로 미끄러졌다.
I had just rounded a corner when his insouciant step caught my eye; there was no one else in sight.
그 앵무새의 평온한 발걸음이 내 눈길을 끌었을 때, 나는 막 길모퉁이를 돌아 나온 터였다. 시야에는 그 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The fact of his free fall was like the old philosophical conundrum about the tree that falls in the forest.
앵무새의 자유로운 추락은 숲 속에 쓰러진 나무에 대한 옛 철학의 문답과 유사했다.
The answer must be, I think, that beauty and grace are performed whether or not we will or sense them.
내 생각에 답변은 이러했던 것 같다. 우리가 감지하든 않는 간에, 혹은 우리가 감지하려고 하든 않든 간에 아름다움과 은총은 작용한다고.
The least we can do is try to be there.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거기에 닿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Another time I saw another wonder: sharks off the Atlantic coast of Florida.
한번은 또 다른 경이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플로리다의 대서양 해안에 출몰한 상어를 보았던 것이다.
There is a way a wave rises above the ocean horizon, a triangular wedge against the sky.
바다 수평선 위로 저 멀리 파도가 솟아오르고 하늘을 배경으로 삼각형의 쐐기 모양이 나타났다.
If you stand where the ocean breaks on a shallow beach, you see the raised water in a wave is translucent, shot with lights.
바닷물이 얕은 해안으로 몰려오는 곳에 서 있으면, 파도 속에서 솟아오른 바닷물이 햇살을 받아 반투명 상태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One late afernoon at low tide a hundred big sharks passed the beach near the mouth of a tidal river in a feeding frenzy.
파도가 낮게 일던 어느 늦은 오후, 파도치는 강어귀 근처 해안을 백 마리가량의 큰 상어들이 즐거운 흥분 상태에서 헤엄쳐갔다.
As each green wave rose from the churning water, it illuminated within itself the six - or eight - foot - long bodies of twisting sharks.
파도가 밀려와 부딪히는 물가로부터 푸른빛 파도가 높이 일 때, 2미터 안팎 길이의 상어들이 몸을 뒤트는 모습을 파도가 비춰주었다.
The sharks disappeared as each wave rolled toward me; then a new wave would swell above the horizon, containing in it, like scorpions in amber, sharks that roiled and heaved.
그랬다가 새 파도 물결이 닥칠 때면 그 파도는 호박이 전갈을 품은 듯, 몸을 휘저으며 솟구치는 상어를 속에 품고 수평선 위로 부풀어 오르곤 했다.
The sight held awesone wonders: power and beauty, grace tangled in a rapture with violence.
그 광경은 잠엄한 경이를 담고 있었다. 권능과 아름다움과 은총이 폭력과 더불어 황홀하게 뒤엉켜 있었다.
We don't know what's going on here.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일이 진행된 것인지 알지 못한다.
If these tremendous events are rancom combinations of matter run amok, the yield of millions of monkeys at millions of typewriters, then what is it in us, hammered out of those same typewiters, that they ignite?
만약 이 끔찍한 일들이 미친 듯이 날뛰는 물질들이 제멋대로 결합한 결과라면, 또 그것들이 수백만 대의 타자기가 찍어 낸 수백만 마리의 원숭이라면, 그렇다면 똑같은 타자기가 두들겨서 만든 우리 인간 속에서 그 결합이 점화는 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We don't konw. Our life is a faint tracing on the surface of mystery, like the idle, curved tunnels of leaf miners on the face of a leaf.
알 도리가 없다. 나방 애벌레가 잎사귀 표면 위에 무의미한 둥근 터널을 만들 듯, 우리의 인생은 신비의 표면을 희미하게 더듬어 가는 것이다. 마치 나방 애벌레가 느긋하고 완만하게 파 나가는 터널이 어렴풋이 잎사귀 표면을 향하는 것처럼 말이다.
We must somehow take a wider view, look at the whole landscape, really see ith, and describe what's going on here.
어쨌든 우리는 시야를 좀 더 넓히고 풍경 전체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것을 진정으로 바라보고 여기서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 묘사해야 한다.
Then we can at least wail the right question into the swaddling band of darkness, or, if it comes to that, choir the proper praise.
적어도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둘둘 휘감은 어둠의 띠에 대한 올바른 물음을 토해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At the time of Lewis and Clark, setting the prairies on fire was a well-known signal tha meant, "Come down to the water."
루이스와 클라크(1804녀 루이스 대위와 클라크 중위가 이끈 탐험대가 미국 최초로 태평양 연안을 육로로 탐사하여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흥미로운 모험담을 남겼다)가 살던 시대에 대초원에 불을 지르는 것은 잘 알려진 신호였는데 그것은 "물가로 내려오라."뜻이었다.
It was an extravagant gesture, but we can't do less.
그것은 지나치게 과장된 몸짓이었지만 그렇게 안 할 수도 없었다.
If the landscape reveals one certainty, it is that the extravagant gesture of creation in the first place, the universe has continued to deal exclusively in extravagances, flinging intricacies and colossi down aeons of emptiness, heaping profusions on profligacies with ever-fresh vigor.
그 풍경이 보여주는 하나의 확실성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지나치게 과장된 몸짓이야말로 바로 창조라는 점이다. 과장된 창조의 몸짓이 먼저 일어난 후, 우주는 전적으로 계속 과장된 일들을 행해 왔다. 우주는 복잡성과 거대함을 영겁의 허공 밑으로 집어던진 뒤 헛되이 사용된 것들 위에 풍부함을 쌓았다. 영원히 솟구치는 활력으로써 말이다.
The whole show has been on fire from the word go.
사라지라는 말과 함께 눈앞의 모든 것이 불타올랐다.
I come down to the water to cool my eyes. 나는 눈을 식히기 위해 물가로 내려왔다.
But everywhere I look I see fire; that which isn't flint is tinder, and the whole whorld sparks and flames.
모든 것은 부싯돌 아니면 불에 잘 타는 것들이었다. 전 세계가 점화되어 불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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